회화·판화 대표작 37점 한자리
작가의 독창적 작품세계 조명
600호 대작 '바람과 물의 역사'
초기 대표작·'풍수' 연작 등 눈길
국립기관 첫 회고전…의미 더해

오방색 풍수화를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탐구해온 오승윤 화백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첫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전당장 김상욱)은 한국 구상 회화를 대표하는 고(故) 오승윤(1939~2006) 화백의 대규모 회고전 '오승윤: 풍수의 색, 생명의 선율'을 오는 1월 18일까지 복합전시 6관에서 연다.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 최초의 인상주의 화가 오지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오 화백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한 자리다. 한국적 정서와 색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의 독창성을 국립기관에서 재평가하는 첫 회고전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전시는 평생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탐구해 온 오 화백의 사유를 따라가는 구성으로 마련됐다. 회화 30점과 판화 7점을 포함한 총 37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으며, 그가 집중적으로 탐구한 풍수, 오방색, 민속적 조형미를 통해 한국 회화의 색채 미학과 정체성을 세계적 언어로 확장해 나간 과정을 면밀히 보여준다.

전시장 입구에 배치된 초기 대표작 '대한(大寒)'(1973)은 노인의 얼음낚시 장면을 중심으로 겨울의 차가운 기운을 대담한 색채 대비로 포착한 작품이다. 눈 덮인 빙판, 붉은 목도리, 푸른 그림자가 이뤄내는 감성적 조형이 사실적 묘사와 색채 감각을 극대화한다.
이어지는 작품에서는 프랑스 유학 이후 1980년대부터 한국적 정서를 다시 찾기 위해 10년간 전국을 답사했던 시기의 성과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회상(回想)'(1995)은 연꽃 위 여성을 중심으로 물고기, 학, 오리, 거북, 해, 산 등 한국적 상징들을 화면 전면에 배치해 한국 미감의 보편성을 우아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1996년 몬테카를로 국제현대미술전 특별상을 통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상징적 회화의 전환점이 됐다.

상징적 회화의 정점은 '풍수' 연작에서 나타난다. '풍수 무등산'(1996)은 그에게 일상의 산이었던 무등산을 단순화된 형태와 오방색의 조화로 표현하며 순수함과 평온함이 깃든 이상적 자연을 구현했다. 새·사슴·물고기·꽃 같은 생명 요소와 산·하늘·물·초가 등 자연의 구성 요소가 하나의 질서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자연의 근원적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또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흑백 판화 연작 7점은 금강산, 초가, 꽃 등의 모티프를 흑백의 대칭미로 담아낸 작품으로 그의 색채 중심 회화와는 또 다른 조형 감각을 보여준다.

오 화백의 예술관을 집약한 대표작 '바람과 물의 역사'(2004·전남도립미술관 소장)는 600호에 이르는 대작이다. 오방색을 토대로 우주의 원리와 만물의 생성·순환 구조를 그려 인간, 동식물, 대지, 하늘이 하나의 질서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생명의 환희가 화면 전체에 흐른다. 그는 이 시기 작가 노트에 "해와 바람, 흙과 물, 나무와 풀, 그리고 우리 자신이 하나가 되는 것이 곧 선(禪)"이라 적어 자연과 인간의 본래적 조화를 예술을 통해 회복하고자 하는 철학을 밝혔다. 작품 속 대례복을 입은 여인 역시 '가장 한국적인 것'에 대한 고심 끝에 도달한 인간 존엄의 상징으로 자리하며, 양옆의 연잎 위 누드 여성들은 불교적 상징성뿐 아니라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여성을 순수하게 형상화한다.
이 외에도 '선녀도(仙女圖)'(1999)에서는 인체가 지닌 본질적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를 사실적 묘사로 풀어내고, 점묘법으로 완성된 '수련'에서는 노란색과 오방색의 섬세한 조화를 통해 색채 대비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오승윤 화백의 손녀 박지윤 씨는 "할아버지께서는 살아계실 때 작품으로서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믿으셨는데 20년 만에 할아버지께서 사랑하던 광주 시민들에게 작품이 돌아오게 돼 기쁘다"며 "특히 작품 전반에 흐르는 불교 미술적 특징을 주목해서 봐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
응원봉 들던 작가들, 민주주의 위한 ‘생카’ 열다
강수지·이하영 작가의 ‘민주주의 덕질하기’
지난 2024년 겨울, 어둠 속에서 반짝이던 각양각색의 응원봉들은 2030 여성들이 광장으로 들고 나온 새로운 ‘저항의 도구’였다. ‘덕질’의 아이콘이었던 콘서트용 응원봉의 등장은 ‘비폭력’과 ‘연대’를 상징하는 강력한 메신저로서 빠르게 자리매김됐다.누군가를 뜨겁게 좋아하는 마음, 즉 ‘덕질’의 에너지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키는 연대의 동력으로 변모했는지를 주목한 전시가 광주에서 열린다.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전당장 김상욱)이 내달 29일까지 복합전시5관에서 선보이는 ‘ACC NEXT 아시아 신진 작가전’은 아시아 예술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작가들의 날카로운 시선과 실험적인 감각을 한데 모았다.강수지·이하영 작가의 ‘민주주의 덕질하기’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은 광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강수지·이하영 작가의 ‘민주주의 덕질하기’다. 이들은 12·3 불법계엄 당시 광장에서 목격한 독특한 풍경에 주목해 흔히 ‘팬덤 문화’로 치부되던 덕질의 행위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사회 참여의 에너지로 전환되었는지를 역설적으로 풀어낸다.작가는 전시장 내부에 가상의 아이돌 그룹 ‘키세스’의 멤버 ‘민주’와 ‘주의’를 위한 ‘생일 카페(생카)’를 차렸다.민주주의를 주제로 꾸려진 이 ‘생카’ 현장에는 팬덤 활동에서 빠질 수 없는 창작 소설(팬픽)과 컵홀더, 포카홀더 등 다양한 굿즈들이 관객을 맞이한다. 특히 아이돌 그룹명인 ‘키세스’는 실제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집회를 열었던 이른바 ‘키세스 시위대’의 명칭을 가져와 의미를 더했다.이하영 작가는 “광장에 응원봉을 들고 나온 또래 여성들을 보며, 이들이 어떻게 연대의 감각을 익혔을까 고민했다”며 “덕질은 흔히 평가절하 당하는 행위지만, 사실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기 위한 일념으로 광장으로 향했던 응원봉 세대의 마음이 이 가상의 공간을 통해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으로 치환되는 셈이다.강수지·이하영 작가의 ‘독버섯’ 전시 일부이들의 또 다른 작품 ‘독버섯’은 저항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작가들은 제주 4·3, 여순 10·19, 5·18 민주화운동의 기억을 사회 위협 요소인 ‘독버섯’으로 규정하며 침묵을 강요해온 지배 이데올로기에 주목했다. 오히려 독버섯을 망각에 맞서는 저항의 도구로 재정의하고, 이를 배양하는 공간으로 패스트푸드점을 설정했다. 과거 민주화 운동가들의 책장에 꽂혀 있던 ‘불온 서적’을 매개로 버섯을 키워내고, 현대 사회의 가장 빠른 확산 매체인 ‘배달’ 시스템을 통해 저항의 메시지를 사회 곳곳으로 유통하겠다는 의도다.이주연 작가는 다큐멘터리적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소외된 노동과 신체의 흔적을 추적한다. 비디오 작품 ‘언더 그라운드’는 실제 터널 현장에서 지질 기사로 일하는 작가의 아버지를 통해 난청이라는 감각의 상실을 탐구한다. 관람객은 오디오 믹싱을 통해 보청기를 꼈을 때의 불편함이나 난청인의 청각 환경을 직접 경험하며 보이지 않는 노동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또한 ‘헤비 웨더’에서는 한강 변의 낚시꾼들과 사라진 반도체 공장 여공들의 흔적을 공포 영화적 문법으로 엮어내며 기록되지 못한 존재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한다.중국의 유얀 왕 작가 ‘웨더’ 전시 전경중국 출신의 유얀 왕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디지털 환경을 날씨에 비유한다. SNS에서 무작위로 수집한 이미지들을 수직으로 분절하고 재조립한 영상 작품 ‘웨더’는 더 이상 우리가 정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우리의 감각을 지배하는 환경 속에 살고 있음을 직감하게 한다. 몰입감을 주는 주황빛 공간은 데이터가 개인의 감정과 인식에 미치는 거대한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이시마 작가의 ‘dir’ 스틸컷. ACC 제공이시마 작가는 전통 서사와 무속적 상상력을 빌려 퀴어 담론과 소외된 개인의 삶을 이야기한다. 작품 중 한강 위에 떠 있는 부표에 올라타려 애쓰는 퍼포먼스 영상 ‘dir’은 사회적 ‘정상성’이라는 기준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소수자들의 처절한 생존 노력을 상징한다. 특히 실제 정신과 처방을 받은 약봉지들을 작품의 소재로 사용해 생존의 무게를 사실적으로 전달한다.대만의 치우 즈 옌 작가 ‘더 레일카’ 이전 전시 설치 전경. ACC 제공마지막으로 대만의 치우 즈 옌은 국가적 트라우마인 2·28 사건의 기억을 다룬다. 작품 ‘만델라 메모리’는 집단적 기억의 오류를 뜻하는 ‘만델라 효과’에서 착안해 공식 기록이 부재한 역사적 공백을 개인의 증언과 허구적 서사로 재구성한다. 관람객이 거울로 된 건물을 통해 좌우가 반전된 자막을 읽어야 하는 구조는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개인이 얼마나 능동적으로 개입해야 하는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김상욱 ACC 전당장은 “이번 전시는 새로운 세대의 미학적 실천이 아시아를 넘어 어떤 궤적을 그릴지 가늠하는 출발점”이라며 “신진 작가들의 실험과 교류를 통해 아시아 예술의 미래를 함께 상상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 · 피지컬 AI·XR로 여는 亞 예술의 미래
- · "광주는 정체성 자체···작품 대하면 아버지 말 거는 듯"
- · 영하권 추위에도 첫 주말 ACC는 '북적'
- · 호기심·상상력 자극...어린이 놀이터 '눈에 띄네'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