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서 길어올린 빛

입력 2026.07.02. 16:06 김혜진 기자
제29회 허백련미술상 수상작가전 '장진원-Glory'
내달 16일까지 광주미술관서
뉴욕 이주 후 창작한 작품부터
올해 광주서 작업한 신작까지
"상처 영원히 사라지지 않지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날 것"
제29회 의재미술상 수상자 전 ‘장진원-글로리’가 지난달 26일 오픈, 내달 16일까지 광주미술관에서 펼쳐진다.
제29회 의재미술상 수상자 전 ‘장진원-글로리’가 지난달 26일 오픈, 내달 16일까지 광주미술관에서 펼쳐진다.

“한국을 떠난 지 24년 만에 고향에서 전시를 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의 전시 제안은 있었지만 오늘을 위해서였나 봅니다. 그것도 허백련미술상을 받아 고향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는 점에서 정말 귀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잘하고 싶어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지난 1일 만난 장진원 작가는 지난달 26일부터 열리고 있는 제29회 허백련미술상 수상작가전 ‘글로리(Glory)’에 대한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장 작가의 허백련미술상 수상은 한국화의 현대적 변용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이뤄졌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뉴욕에서 어려운 시간을 버텨내며 자신만의 세계를 한국화를 바탕으로 확립,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 온 그이다.

이번 전시는 그가 뉴욕으로 이주한 이후 치열하게 고민해 온 그의 작품 세계를 펼쳐놓는다. 전시는 크게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뉴욕 생활 초기부터 2020년까지의 작품은 고립된 생활 속 그의 처절한 세계 탐구가 담겨 있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사고를 거치며 내면에 깊게 남겨진 외상을 바탕으로 한 뉴욕 초기작부터, 한국화가로서 자신의 정신성의 바탕을 불교와 도교에 두었던 작가가 기독교로 개종하며 작업에 깊은 고민 후 시작하게 된 작업 등이 여기 포함된다. 또 코로나 팬데믹으로 도시가 봉쇄되자 작업실에 갇혀 있던 시기 작업한 ‘사이’ 또한 여기 속한다.

장진원 작 ‘글로리 D11’, 2025, 175.4×181㎝, 한지에 먹,메탈릭 페인트, 아크릴, 펜, 연필

특히 개종 후 시작한 작업은 그의 큰 전환점 중 하나이다.

“그동안 한국화를 하며 불교 철학적인 삶을 살았고, 또 작업관을 가졌는데 이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많이 고민했던 시기인데 이 고민을 바탕으로 제 작업이 영원성에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두번째 섹션은 그가 미시간 호수 인근의 투센 탁 재단 레지던스에서 작업하던 때의 작품들로 채워졌다. 팬데믹으로 지쳐있던 때에 찾아온 기회였다. 작은 스튜디오에 갇혀 작업하던 그에게 탁 트인 자연은 새로운 활기와 영감을 선사했다. 이 때의 작업에 많이 쓰인 블루 터쿼이즈(Blue Turquoise) 색상은 오대호 중 하나인 미시간 호의 인상을 녹여낸 색상이다. 작가는 이 시기를 ‘카이로스(Kairos)’라 느꼈고 이 때의 작업에 ‘카이로스’라는 작업명을 붙였다. 그리스어로 ‘결정적 순간’ ‘의미 있는 때’를 뜻하는 말로 자연 속에서 신의 임재(臨在)를 체감하고 새로운 영감을 만난 시간이다.

장진원 작 ‘영원한 아름다움 (1)’, 2016, 124.5×124.5㎝, 한지에 먹, 메탈릭 페인트, 아크릴, 펜, 연필

이어지는 세 번째 섹션은 2022년부터 현재 작업 중인 ‘글로리(Glory)’ 연작이다. 현실 세계와 영적 세계를 잇는 문이자 평안을 상징하는 빛이다. 이 중 가로, 세로 5.8m, 5.9m에 달하는 대작은 그에게는 도전이었다.

“10개월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에요. 저에겐 도전이었고, ‘한지가 버틸 수 있을까’ 걱정도 됐던 작업이에요.큰 작업을 통해 작품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 이 세상으로 초대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배경에 원을 그리고 수없는 줄을 그었는데 이것만해서 4개월이 걸렸죠. 그 후엔 이 원들을 다 색으로 덮었어요. 그 위엔 금색으로 영광의 모습을 담았죠. 깊은 상처를 뿌리로 박아두고 싶었어요. 우리가 갖고 있는 상처는 없어지진 않지만 이것을 뿌리로 영광스러운 순간이 나올 수 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또 이 섹션에는 허백련미술상을 받은 후 선교동에 작업실을 마련, 고향에서 오랜만에 시간을 보내며 작업한 신작들도 있다. 이전보다 먹의 사용이 눈에 띄는 작업들이다.

1일 제29회 의재미술상 수상자인 장진원 작가가 광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상자 전 ‘글로리(Glory)’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혜진기자 hj@mdilbo.com

그의 이같은 오랜 작업 여정 중 한지는 변함 없이 그의 작업을 지탱하고 있다. 캔버스 사용을 시도해봤지만 한지가 주는 느낌을 낼 수 없었다고.

어쩌면 한지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가장 닮은 재료인지도 모르겠다.

“한지는 엄청 얇아서 작업하다가 찢어지기도 해요. 그럼 몇 번을 기우면서 작업을 하곤 하죠. 작업 초기에는 제 마음처럼 안되고 찢어지면 화도 나고 했는데 지금은 ‘그래 종이가 그렇지 뭐’하게 되더라구요. 그렇게 얇고 연약한 종이가 천 년을 간다니 놀랍지 않나요.”

한편 장진원은 조선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중앙대 대학원과 뉴욕주립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 미국으로 이주한 장 작가는 뉴욕을 기반으로 국제적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전시는 내달 16일까지 광주미술관 5, 6전시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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