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에서 회복과 공존 꿈꾸다

입력 2025.09.16. 11:04 김혜진 기자
시립미술관 '장미 토끼 소금: 살아 있는 제의'전 내년 1월 25일까지
김주연·박찬경·이수경 참여
예술의 제의적 기능 살피며
회복·치유 가능성 모색 '눈길'
시립미술관 '장미 토끼 소금: 살아있는 제의'전 속 박찬경의 '모임'(벽면), '맨발'(중앙), '주련'.

미술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암각화는 단순 장식이 아닌, 사냥 성공과 풍요 등을 기원하는 주술적 행위이다. 이처럼 예술과 제의는 맞닿아 있었다. 현대의 미술 역시 재난·기후 위기·전쟁 등 동시대의 상처 앞에서 공동체와 교감하며, 아픔을 달래고 극복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같은 현대 미술 속 제의적 기능과 회복 가능성을 살펴보는 전시가 시립미술관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 전시에서 관람객은 종교적 의례가 아닌, 공동체적 제의의 장을 마주하게 된다.

시립미술관이 2025광주디자인비엔날레 기념전 '장미 토끼 소금: 살아 있는 제의'를 지난달 29일 오픈, 내년 1월 25일까지 제1, 2전시실에서 갖는다.

이번 전시에는 김주연, 박찬경, 이수경 작가가 참여해 회화, 설치 등 36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의 장미, 토끼, 소금은 각 작가들의 작품을 상징한다.

시립미술관 '장미 토끼 소금: 살아있는 제의'전 속 이수경 작가의 '오! 장미여'(오른쪽)와 '이동식 사원'.

이 작가의 '오! 장미여' 속 장미는 현세와 무의식 세계 사이를 상징한다. 최면, 이완 치료에서 무의식으로 진입하기 위해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 심상이 꽃인 점에서 펼쳐진 작품이다. 감각과 정서, 무의식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장미를 활용해 파편화하거나 잊혀진 기억을 불러일으키며 '부재'에 대한 감각을 반복 재현한다. 각각 내면에 각인된 상실의 흔적을 회복과 연결하려는 시도이다.

박 작가의 '열반도-둘' 속 토끼는 남겨진 이들의 상실감을 상징한다. 석가모니의 열반 이야기를 담아낸 것으로 열반한 부처의 관에 불이 붙지 않다가 애제자 가섭존자가 뒤늦게 도착하자 양 발이 관 밖으로 드러나며 비로소 불이 붙을 수 있었던 장면으로 토끼와 두 나무는 이를 지켜보고 있는 존재이다.

시립미술관 '장미 토끼 소금: 살아있는 제의'전 속 김주연의 '기억 지우기'.

김 작가의 '기억 지우기' 속 소금은 잊고 싶은 기억과 정화되지 않는 감정을 마주하는 매개체이다. 정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소금을 관객이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작품으로 서로 다른 이들이 소금을 통해 감정을 털어놓음으로서 예술적 제의의 장이 된다.

이밖에도 이번 전시에서는 버려진 도자기 파편을 이어붙인 작업, 명상하는 시간을 선사하는 작품, 버려진 지역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담은 영상, 시간이 지나버린 정보에 새로운 생명을 덧입힌 작업 등을 만날 수 있다.

시립미술관 '장미 토끼 소금: 살아있는 제의'전 속 김주연의 '이숙'.

이번 전시를 기획한 홍윤리 시립미술관 학예사는 "각기 다른 형식 속에서도 제의적 감각을 공통으로 담고 있는 세 작가의 작품은 버려진 파편들, 전통 설화로만 남겨 사라져가는 이야기, 퇴색된 기록과 정보의 잔해들, 방치되어 사라져간 것들에 다시 생명을 부여한다"며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모든 존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미래를 성찰하는 자리이다"고 말했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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