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회화 세계에 알리자"···작품 설치 '분주'

입력 2025.07.13. 17:12 임창균 기자
[2025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D-50]
서구 중심 글로벌 비엔날레 탈피
황해 문명권서 발전한 수묵 조명
해남서 출발, 진도·목포로 뻗어가
20개국 83명 작가 작품 운송 중
빛·영상 활용 몰입형 작업 ‘눈길’
김은진 작 '내려오는길'

2025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지난 11일로 D-50을 맞았다. 그동안의 비엔날레가 수묵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수묵이라는 매체를 통해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를 조명한다. 그동안 목포와 진도에서 열리던 전시도 해남까지 확대된다. 현재 전시기획단계는 마무리되고 각 전시장별로 작품 운송과 설치, 전시장 설계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창진 작가 '통계학적풍경화'설치사진

◆ 수묵 정서 공유하는 '문명의 이웃들'

전남도와 전남문화재단은 오는 8월 30일부터 10월 31일까지 2개월간 전남 목포, 진도, 해남 일대에서 2025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를 개최한다.

2018년 1회를 시작으로 2021년과 2023년에 열린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올해로 4회째를 맞이했다. 수묵을 주제로 한 세계 유일의 국제 비엔날레로 동아시아의 예술 전통인 수묵을 동시대적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플랫폼으로 꾸준히 자리매김해 왔다.

올해 주제인 '문명의 이웃들 Somewhere Over the Yellow Sea'는 '황해'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해양 문명권에 주목한다.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경계에 자리한 한반도는 지리적 특성상 다양한 외부 문화를 수용하면서 발전해 왔다. 특히 전남의 경우 기존의 대륙 중심의 서사에서 벗어나 바다를 통해 다양한 지역 문명이 교류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창진 작 '통계학적풍경화'

윤재갑 2025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총감독은 서구의 지중해 문명과 마찬가지로 황해 문명 역시 교류와 협력을 통해 형성된 '해양 문명권'임에 주목하고 서구 미술계에 초대받지 못했던 동아시아 수묵을 조명하는데 집중했다.

윤 감독은 "주제인 황해를 둘러싼 '문명의 이웃들'에는 공동으로 이룩한 수묵문화를 조명하는 의도도 있지만 중국 중심의 대륙문명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포함돼 있다"며 "사실상 동아시아 회화 미학을 전세계에 알릴 국제 수묵비엔날레는 전남이 유일하다. 전세계 200여개의 비엔날레가 서구 미술을 중심으로 열리는 상황에서 세계 문명의 균형자 역할을 해내겠다"고 전했다.

현재 비엔날레 준비는 기획단계가 마무리되고 실행 단계가 한창이다. 해남·진도·목포의 6개 전시장으로 작품 운송과 전시장 설계 및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동안 진도와 목포에서 전시를 진행한 비엔날레는 올해 처음으로 해남까지 전시공간을 확대한다. 단순히 수묵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을 떠나 각 전시 지역의 고유한 역사성과 공간성을 반영한다.

해남·진도·목포를 하나의 삼각 동선으로 연결하는 전시 구조를 통해, 수묵의 전통과 실험, 철학과 기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복합적 시공간을 구성한다.

지리상으로 해남은 수묵 예술이 목포와 진도를 통해 뻗어나가는 시작점 역할을 한다. 해남의 녹우당이 입구라면 목포실내체육관이 그 출구에 해당하는 셈이다. 조선후기 문인화의 뿌리와 출발점에 해당하는 해남과, 크게 번성하여 굵은 줄기를 형성한 진도를 거쳐 목포실내체육관에서는 전세계로 확장되고 확산되는 수묵을 보여주는 것이다.

장위 작 '현괘재공중적지인'

◆ 해남, 수묵의 뿌리를 찾아서

해남은 조선 후기 대표 화가 공재 윤두서가 활동했던 지역으로, 한국 수묵화의 사유적 전통과 조형성이 시작된 중요한 장소다. 해남에서는 고산 윤선도 박물관과 땅끝순례문학관 두 곳에서 전시가 진행된다.

먼저 고산 윤선도박물관에서는 '최고의 수묵 거장전'을 주제로 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 다산 정약용, 수화 김환기, 천경자의 작품이 전시된다.

윤두서는 자화상과 인물화를 통해 치밀한 관찰력과 사실적인 묘사를 선보였으며, 회화가 단순한 외형 재현을 넘어 인간의 내면과 존재에 대한 성찰의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의 회화는 수묵이 단순한 기법이나 재료를 넘어서, 자연과 인간을 사유하는 예술 언어로 자리 잡는 데 기여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윤두서의 '자화상'과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과 그 시대적 배경을 해설하는 시각 자료를 통해 관람객이 전통 수묵의 조형 언어와 미학적 특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땅끝순례문학관에서는 '붓의 향연'을 주제로 전통 수묵 정신의 현대적 해석을 선보인다. 구성연, 이헌정, 홍푸르메, 로랑 그라소, 린타로 하시구치, 펑웨이 등 6인의 작가들은 수묵이 가진 사실성과 사유성을 각기 다른 기법을 사용해 오늘날의 시각 언어로 풀어낸다. 이곳 땅끝순례문학관에서는 단순히 작품 관람에 그치지 않고 수묵의 감수성을 시각화한 다양한 체험을 해볼 수도 있다.

팀랩(teamLab) 작 'unnamed'.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작품이다.

◆진도, 융합을 통한 줄기 생성

진도는 조선 후기 남종화의 거장 허련과 그 후손들이 활동하며 수묵화의 실천과 교육을 이어온 지역이다. 허련의 화실이자 정신적 상징 공간인 운림산방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수묵 정신이 일상 속에 스며든 이곳은, 예술과 자연, 삶이 긴밀히 연결된 독자적인 미학적 기반을 형성해 왔다.

진도에서는 소전미술관과 운림산방 인근에 위치한 남도전통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린다.

소전미술관에서는 '문자 예술과 수묵의 만남'을 주제로 서예 중심 전시가 진행된다. 추사 김정희, 석파 이하응, 석재 서병오, 소전 손재형, 철농 이기우, 학정 이돈흥, 목인 전종주 등 7인의 작품이 전시된다. 김정희의 '세한도', 이하응의 '묵란도' 같은 대표작품도 볼 수 있다. 정제된 여백과 역동적인 선의 흐름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 연출을 통해, 문자 예술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예술적 형식으로 자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남도전통미술관에서는 '색과 추상의 수묵실험'을 주제로 실험적인 채색 기법이 돋보이는 근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고암 이응노, 내고 박생광, 산정 서세옥, 남천 송수남, 소정 황창배 등 5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으며, 관람객은 상호작용을 통해 작품을 감각적으로 체험해 볼 수도 있다.

윤재갑 2025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총감독

◆목포, 수묵의 세계화를 향해

목포는 다양한 시대의 문물과 문화가 교차하며 성장한 남도의 해양 도시로, 오늘날에는 지역성과 국제성이 공존하는 복합 문화 도시로 주목받는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목포를 동시대 수묵의 실험과 확장을 수용하는 플랫폼으로 설정한다. 전통 회화는 물론 미디어, 설치,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전시를 통해, 수묵이 오늘날 어떻게 다시 쓰이고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목포에서는 우리나라 작가 31명, 해외 작가 31명 등 총 62명의 작품이 목포 문화예술회관과 실내체육관 전시실에 나뉘어 전시된다.

먼저 목포 문화예술회관에서는 '새로운 자연과 움직이는 수묵'을 주제로, 관객 참여형 작품과 영상 기반 미디어 작품들을 선보인다.

대표적으로 팀랩(teamLab)의 작품들은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실시간으로 반응한다. 스크린 위를 유영하는 이미지들은 붓 대신 빛으로, 종이 대신 공간으로 관람자의 동선을 따라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하나의 '움직이는 수묵'을 제안한다.

파라스투 포로우하르(Parastou Forouhar)의 'Written Room'은 반복적이고 장식화된 문자로 벽면 전체를 채운다. 작가 본인이 전시 개막전 2주간 현장에 머물며 작업을 하고, 전시 종료와 함께 작품은 소멸하며 수묵이 지닌 무상성을 보여준다.

목포 실내체육관에서는 '수묵 예술의 동시대 가치'를 주제로 기후 위기, 정체성, 기억, 정치적 역사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인다.

사딕 카와디쉬 알프리지의 '알리의 보트'는 흑백 영상으로 구성된 시적 내러티브를 통해, 억압과 이주의 기억, 정체성의 흔들림을 조명한다.

전시는 회화에만 머무르지 않고 설치, 사운드, 미디어, 오브제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아우르며, 수묵의 표현 영역을 과감하게 확장한다. 전통의 재료와 기법을 현대적으로 변형하거나 새로운 매체와 융합하는 실험을 통해, 수묵 예술의 동시대적 가치와 가능성을 역동적으로 제시한다.

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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