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 요소 배제 실제 모습 포착
직접적인 단어·기호화한 작품서
덜고 비워내며 함축적으로 변화
회화·합성 이미지 느낌 근작 눈길
평론·작가노트 등 담은 작품집도
"치유·힐링되는 작품 만들기 최선"

리일천 사진작가가 주목하는 지점은 '시·공간의 세계'다. 작가는 우리가 시·공간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데 정작 그 '시간성'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 천착해왔다.
궁극적으로 시간이 없으면 공간도 없다. 시간은 움직임(삶)의 흔적이기도 하다. 작가는 우리가 '시간' 속에서 살면서 보다 긍정적인 마음과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감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인 언어로 형상화한다. "현재 힘들거나 고통 속에 있다고 해도 작품을 바라봄으로써 광대한 우주에서 스스로가 소중한 존재임을 느끼고 치유와 힐링이 될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드영미술관 1~3전시실에서 오는 9월 9일까지 열리는 'Phenomenon Space-Chaosmos of Healing'전은 작가가 그동안 탐구해 온 공간과 시간, 존재에 대한 응축된 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작가는 그동안 다큐멘터리와 파인아트(Fine art)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지난해 12월 광주 송정작은미술관에서 열린 '광주미술인 기록사진전'은 20여 년간 60만여 점에 달한 방대한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책을 출간해 '기록사진'의 방점을 찍은 행사였다.
이번 전시회는 작가가 현재까지 걸어온 '파인아트'의 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의미있는 자리다. 다큐멘터리에 치중된 이미지를 벗어나 그동안 균형을 잃지 않고 끈임없이 정진한 성과물을 내놓는다.
작가는 결코 사진에 인위적인 요소를 가미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찍되 어떻게든 자신이 시각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구성 요건을 찾아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작가는 자신의 10여 년 전 작품에 대해 '친절한 설명'이 많았다고 자평한다. 사진에 직접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다양한 기호들을 활용함으로써 관람객들이 바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다.
이후 작가의 작품은 훨씬 더 미니멀해졌다. 더 많이 덜어내고 비워내면서 시각은 물론 철학적으로도 함축된 표현기법을 구현한 것이다.
전시장 1층에서 선보이는 작가의 근작들은 이전의 작품에 비해 훨씬 '불친절'해졌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 불친절함 이면에 담긴 깊은 설명과 해석은 오히려 훨씬 더 많은 울림을 선사한다.
작품들은 마치 회화나 합성 이미지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공간과 평면, 흐릿한 사물 등은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서정적 감성과 문득 떠오르는 삶의 기억들을 자극한다.
작가의 작품에서 주류를 이루는 흑백은 우리의 내면세계와 관련이 깊다. 색이 들어가면 눈에 보이는 현상 넘어 본질을 바라볼 때 방해요소가 된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작가는 "블랙 앤 화이트는 우주 창조의 원리와 깊은 관계가 있고 밝음과 어둠은 낮과 밤을 의미하기에 우리 삶의 유전자 속에 각인이 돼 있는 요소"라며 "이 같은 내면과의 연결고리가 바탕이 돼 사람들이 감성적으로 편안해하고 좋아한다"고 밝혔다.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 맞춰 작품집 'Phenomenon Space'도 선보였다. 작품집은 정인서 미술평론가의 평론, 작품 'PhenomenonSpace-시간의 응시 그리고 존재의 여백', 'Chaosmos-혼돈과 질서, 그리고 치유', 작가노트-현상공간, 작품 목록, 프로필 등으로 구성됐다.
작가는 "최대한 비워내면서도 울림은 더 큰 작품을 선보이고자 했는데 많은 분들이 좋은 평가를 해주시는 것 같다"면서 "앞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일천 작가는 조선대 대학원 박사과정(시각디자인)을 졸업했으며 광주미협 수석부지회장, 한국사진학회 회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현상공간' 등 4권의 개인 사진작품집과 수차례의 개인전과 해외 교류전, 아트페어 등에 참여한 바 있다.
글·사진 김만선기자 geosigi2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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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예술과 5월 광주의 교차 지점 바라보다
강수지·이하영 작 ‘독버섯’광주의 5월은 ‘너무 견고해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은’ 사회를 ‘보잘 것 없는 줄 알았던’ 목소리가 변화를 촉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희망이자 용기이다. 동시대 예술도 그렇다. ‘완전한 것들’로부터 틈을 발견하고 이를 이야기한다.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이하 G.MAP)은 이러한 예술의 저항정신, 참여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광주의 5월과 동시대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을 조명하며 오월정신이 동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임을 보여준다.이번 전시 ‘완전한 것들의 틈’은 G.MAP이 개관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5·18민주화운동 특별전이다. 우리 지역 청년 작가팀부터 이란, 우크라이나 등 전쟁의 상흔을 안은 채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까지 다양한 문화권의 작가들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우리나라 근현대사 120년 서사시’라 볼 수 있는 첫 번째 섹션부터 역사성이 뚜렷한 두 번째 섹션, 동시대 시각이 더욱 드러나는 세 번째 섹션으로 구성됐다.그중 1층에 자리한 몰입형 미디어아트 작품 ‘민족해방운동사’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민중해방운동사’는 전국의 미술 집단, 대학 미술패가 모인 ‘민족민중미술운동 전국연합 건설준비위원회’가 1989년 3개월 동안 제작한 걸개그림으로 가로 77m의 초대형 작품이다. 동학농민운동부터 5·18민주화운동을 지나 1989년 통일운동까지 우리나라 근현대사 속 민중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던 장면들을 담았다. 서울, 광주, 부산 등 주요 도시에서 전국 순회 전시를 가졌으나 한양대에서 경찰과 백골단에 압수 당한 뒤 소각돼 사라졌다. 이것을 G.MAP이 몰입형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복원시킨 것이다. 4개 벽면에서 77m의 초대형 작품이 살아 움직이며 에너지가 극대화된다. 당시의 민중 염원과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도 하다.G.MAP이 5·18민주화운동 특별기획전 ‘완전한 것들의 틈’을 오는 7월 15일까지 갖는다.2층에서 만나는 두 번째 섹션 전시는 ‘남아공의 피카소’로 불리는 윌리엄 켄트리지가 고국의 아파르트헤이트(유색인종 차별정책)를 러시아 소설로 은유하며 비판, 이같은 부조리함이 어디서든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시작된다. 또 양복을 입고 물물 속에서 걷는 인물을 통해 IMF시대 속 ‘숨 쉬기’ 조차 버겁고 무거운 걸음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은유하는 이용백의 작품, 지금은 철거되고 사라졌으나 한때는 권력을 상징했던 국군기무사령부 건물을 이 건물 건축 도면을 바탕으로 3D 모델링하며 권력의 덧없음을 나타내는 문경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이념 대립으로 인해 민간인이 학살 당한 국군보도연맹이 일어난 광주·전남 지역의 숨겨진 학살지를 찾아나서는 권승찬의 작품, 기억되어야 할 4·3과 10·19, 5·18이 제거해야할 ‘독버섯’처럼 취급되는 사회적 이해관계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강수지·이하영의 작품은 우리 지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보다 우리 시대 이야기를 전하는 세 번째 섹션 전시는 전시공간 자체를 광장처럼 꾸미기 위해 가벽을 최소화했다.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절제해 더 많은 의미를 담고자 수화(手話)로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장민승의 작품, 아르헨티나 노동운동에 쓰이는 구호를 외치는 연극배우들의 모습을 매우 느리게 만들어 이들이 짓는 찰나의 표정이나 포즈를 통해 한순간의 집회로 보았던 노동운동자들의 연대를 가만히 지켜보게 만드는 가브리엘라 골더의 작품은 여운을 남긴다.G.MAP이 5·18민주화운동 특별기획전 ‘완전한 것들의 틈’을 기념해 ‘민족해방운동사’를 몰입형 미디어아트작품으로 복원했다.대만의 원시 신앙부터 네온사인 등 현대 문명까지를 포착하며 상이한 존재들이 대립하기 보다는 공존하고 있음을 전하는 처지엔취안의 작품, 40여 개의 서로 다른 국가의 말로 쓰인 ‘나’라는 글자가 결국엔 하나로 연결되는 이미지를 통해 언어와 문화, 국경을 넘어 하나가 되고 있는 현대사회를 보여주는 사하르 호마미의 작품은 우리의 오늘날을 마주할 수 있다.또 우크라이나 작가 올리아 페도로바는 러-우 전쟁으로 인한 상흔을 미처 수확하지 못한 아름다운 해바라기밭을 통해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중간의 짧고 수상한 움직임은 평범했던 풍경이 경계심을 일으키는 일상이 되어버렸음을 암시한다. 거센 강풍에 맞서 숨을 들이 쉬고 내뱉는 퍼포먼스를 담은 그의 또다른 작품은 이같은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며 그럼에도 맞서 하나의 주체로 끝까지 존재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김허경 G.MAP센터장은 “이번 전시는 G.MAP의 첫 5·18 특별기획전으로 오월정신이 시대와 국경을 넘어 보편성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대의 예술가 혹은 다른 나라의 예술가들은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또 이를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살피며 오월정신을 예술적 관점에서 만나보길 바란다”고 말했다.전시는 지난 7일 오픈해 오는 7월15일까지 펼쳐진다.글·사진=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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