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 보며 그날의 아픔 떠올랐어요"

입력 2025.03.27. 17:20 최소원 기자
[아버지 삶 무대에 올리는 김연우씨]
아빠와 단둘이 소풍간 기억 ‘생생’
어릴 적 가장 친한 친구로 남아
12·3 당시엔 뜬눈 밤 지새기도
“오월영령 무대로 ” 결심 다져
김연우씨

"비상계엄을 겪으며 기필코 무대로 오월의 영령들을 모셔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고(故) 김영철 열사와 딸 김연우씨는 그 누구보다 애틋한 부녀이자 단짝친구였다. 김씨는 어릴 적 아버지와 단 둘이서 소풍을 갔던 날을 회고했다.

김 열사는 5·18로 인해 가장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는 "어느 하루 아빠가 정신병원에서 외박을 나왔던 날, 단둘이서 버스를 타고 소풍을 갔다"며 "아빠는 고문 후유증으로 오래 걷지 못하셔서 얼마 못 가고 둘이 너럭바위에 앉아 엄마가 싸준 김밥도 먹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놀았다. 꼭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춤을 좋아했던 김씨가 무용수의 길을 걷게 된 것에도 아버지 김 열사의 영향이 적지 않다. 김씨는 "어릴 때 아빠가 재미있는 노래와 춤들을 많이 알려주셨다. 춤추는 것이 좋고 재밌어서 무용 학원에 다니고 싶었는데, 형편이 안 돼서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원을 다니고 본격적으로 무용을 배우게 됐다"며 "앞으로도 춤을 통해 오월의 이야기를 다양한 형식으로 전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12월3일 벌어졌던 비상계엄 사태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1980년 5월, 김씨의 가족들이 겪었던 그날의 상흔이 여전히 가슴 깊이 남아있는 듯 보였다.

그는 12·3 비상계엄 당시 '나는 고려인이다'라는 뮤지컬 공연 리허설을 하고 집에 가던 길에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김씨는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너무 벙찌고 숨이 턱 막혔는데, 가장 먼저 엄마가 걱정돼서 안부 전화를 걸어 안심시켰다"며 "그 많은 피들을 흘려두고 어떻게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될 수 있는지 너무 참담하고 무서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비상계엄 이후 전국적으로 펼쳐진 집회를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다고 한다. 김씨는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가는 시민들을 보며 1980년도의 아빠와 삼촌, 광주 사람들이 떠올랐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에 대해 김씨는 "춤과 에피소드가 교차하며 어린 연우와 아버지가 조우하게 된다"며 "우리의 아픔들을 함께 공유하고 얘기하면서 서로 연대하고 보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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