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에 관객석 '만석'
민주화·평화통일 꿈 꿨던
북한 방문 등 사진·영상도
관객들 공연 집중도 올려

"더 이상 젊은 목숨이 민주주의의 제단에 바쳐지지 않도록 내가 이 자리에서 더욱 힘쓰겠소."
60대의 노구를 이끌고 민주화와 통일 운동의 길로 접어든 고 문익환(1918~1994) 목사의 이야기가 관객들의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전했다.
광주시와 광주문화재단은 지난 23일 오후 7시 빛고을시민문화관 2층 대공연장에서 민주화와 통일을 염원했던 고 문익환 목사를 기리는 뮤지컬 '늦봄의 길' 초연 무대를 선보였다.

토요일 늦은 시간이었지만 공연 시작 20분 전부터 20대부터 70~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200여 석의 대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이들은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시기를, 때로는 교과서나 인터넷에서의 문 목사를 생각하며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뮤지컬은 1970~80년대를 살아온 20대와 문 목사가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뛰어들게 된 배경에 집중했다. 또 '서울의 봄', '학생운동은 안돼', '우린 겁내지 않아' 등 각 인물과 시대를 대변하는 노래도 관객들의 집중도를 끌어올렸다. 특히 문 목사의 삶을 대변하는 듯한 '서울의 봄'이 흘러나올 때 관객석에서는 단 하나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공연은 고고장에서부터 시작한다. 1970년대 20대들의 자유가 분출되는 '고고장'을 관리하는 20대 남성'손주호'는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대학생 '이루다'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의형제를 맺은 경찰이자 현실을 살아가는 형 '손세범'과의 갈등으로 민주화운동 참여를 꺼리다 결국 '이루다'와 함께하기로 결심한다.



한편 1970년대 초반 성경 번역에 열을 올리던 '문익환'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마음을 터놓는 사이였던 '장준하'가 군사독재 정부에 의해 의문사를 당한 장면에서 목놓아 울부짖고, 관객들도 덩달아 눈물을 훔쳤다. 문 목사는 친구 장준하의 삶을 돌아보다 민주화를 목놓아 부르는 젊은이들이 갖은 고문을 당하고 핍박받으며 결국 분신자살까지 이르는 상황을 보게되고, 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길로 들어선다.
"'일제시대 때 대항하던 독립군 중 어느 누구도 스스로 목숨을 버리지 않았다. 싸워서 이겨내라'는 어머니의 말을 젊은이들에게 전하지 못한 내 죄가 크다. 아까운 목숨이 민주화의 제단에 바쳐지지 않도록 내가 이루겠다"고 말하는 문 목사의 대사 단 '한줄'이 그의 열망을 정리하는 듯 했다.
공연 끝부분에서는 '서울의 봄' 노래와 함께 1980년대 이후의 문 목사의 삶이 사진과 영상으로 무대를 지나갔다. 누군가는 문 목사의 방북 사진과 함께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사진들이 흘러가자 관객석에서는 감탄과 탄식이 함께 했다.
김모(67·여)씨는 "처음엔 20대들의 이야기와 문 목사의 이야기가 따로 진행되는 듯 해서 이해가 어려웠다. 다만 공연 후반부에 이들이 함께 무대를 만들어가서 뒤늦게나마 공연의 방향을 이해할 수 있었다"며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 문 목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삶을 공연으로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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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이른 폭염'...예술이 전하는 '기후위기'의 경고 김수진 작 'Figverse' 기후 위기가 사람들의 삶을 위축시키고 있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것이 당연했던 일상이 이제는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의 재난'으로 변하고 있다.최근 지속되고 있는 '수상한 폭염' 역시 기후위기의 경고다. 지난 수년 동안 우리나라 주요 도시 폭염일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지속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평균 최고 기온 상승에 따른 폭염의 강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무등현대미술관이 지난 2013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는 환경미술제는 자연의 소중함과 보전의 필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기획전이다. 폭염과 폭우, 산불과 지진 등이 우연히 일어난 '재해'가 아니라 '인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데 뜻을 두고 있다.올해 11회를 맞는 환경미술제는 'Whispers of Nature-자연의 속삭임, 숨결부터 균열까지'를 주제로 지난 4일부터 8월 24일까지 개최한다. 전시회에서는 '숨결'과 '균열'이라는 두 개의 흐름을 중심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예술적 감각으로 환기시키고 있다.전반부 '숨결'에서는 김수진, 선민정, 송필용, 이석중 작가가 참여해 자연의 본질적 아름다움과 생명력, 일상의 평온함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인다.엄기준 작 '귀신고래'김수진은 무화과와 무화과말벌 사이의 공생 관계를 통해 생명과 순환, 그리고 존재 간의 필연적 연결성을 탐구하는 작가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무화과 시리즈의 초기부터 후기까지의 작업 흐름을 보여주는 세 작품을 내놓는다. 초기작 '어느날'은 일상 속 자연의 무심한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중기 '삶-하루'는 생명의 하루를 시간의 색으로 기록한다. 후기작 'Figverse'는 모든 생명이 하나의 우주로 연결돼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이석중 작가는 작품 '삶-동행'에서 메타세쿼이아의 푸른 생명력을 거침없는 붓질로 풀어내면서 그 위를 유유히 나는 백로를 통해 자연이 선사하는 평온과 치유의 순간을 보여준다. 특히 전시 공간은 은은한 어둠 속에서 새들의 지저귐이 퍼져나오는 사운드 연출을 더해 관람객이 오감으로 작품을 경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 고요한 숲길을 거니는 듯한 몰입감은 자연의 '숨결'을 느끼게 하며 궁극적으로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를 극대화시킨다.송필용 작 '물의 서사-소쇄'.송필용 작가는 '물의 서사-소쇄'를 내놓는다. 그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를 강렬한 색상대비와 물감이 흐르고 튀는 자취를 통해 물의 순환성과 자연의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면서 현대인의 정서적 치유와 내면의 정화를 드러낸다.선민정 작가는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사용한 '곶자왈'에서 생명의 흐름과 생성-소멸의 리듬을 화면 위에 섬세하게 표현했다.후반부 '균열'에서는 문선희, 엄기준, 정송규, 조정태 작가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환경 훼손에 대한 문제의식을 예술적 언어로 응시한다.문선희 작가는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인한 대규모 살처분 현장을 직접 찾아 사진으로 기록했다. 법정 발굴금지 기간이 해제된 매몰지들은 여전히 곰팡이가 피고 온전한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작품 '2654', '11800_02' 등은 땅속에 묻힌 생명과 변화된 토양, 썩지 않는 비닐을 사진에 담아 인간이 저지른 흔적을 생생하게 증언한다.조정태 작 '신천하도'.엄기준 작가는 선박사고로 인한 기름유출과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 등 해양 생태계의 붕괴에 대한 뚜렷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화려한 원색과 세밀한 묘사를 통해 아름다워 보이는 화면은 해양 생명들이 겪는 고통과 파괴의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조정태 작가가 불길에 휩싸인 산과 검게 그을린 땅을 형상화한 '신 천하도(新 天下圖)'는 자연을 파괴해온 인간의 책임을 물으면서도 회복과 재생의 여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정송규 작가는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을 주제로 했다. 전체적으로 진한 갈색과 회색의 색조를 사용해 소실된 산림의 황폐함을 시각화하고, 중간 중간 남아 있는 불씨는 경각심을 일깨워준다.전시를 기획한 박우리 학예실장은 "환경미술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예술적으로 환기하는 기획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김만선기자 geosigi2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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