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천동 청년 용준씨' 공연 후기
극단 토박이, 오월 휴먼시리즈
첫 번째 인물 '투사회보 박용준'
고아로 태어나 차별 받았지만
새로운 꿈 꿨던 내면 집중 조명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술래가 찾을 때까지 하는거야. 용준이 오빠를 찾을 때까지…."
5·18민주화운동 당시 들불야학에서 투사회보를 필경(글이나 글씨를 쓰는 일)한 광천동 청년 박용준 열사가 연극무대에 오르며 관객들을 때로는 웃음짓게, 때로는 울음짓게 만들었다.

극단 토박이는 정기공연 41회 창작작품으로 지난 15일과 16일 이틀간 민들레소극장에서 박용준 열사를 집중 조명한 첫 번째 오월휴먼시리즈 '광천동 청년 용준씨'를 공연했다. 공연 기간 내내 150여석의 좌석이 모두 매진된 이번 공연은 44년 전 그날의 아픔을 겪었던 사람도, 겪지 않았던 2030 관객들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이번 무대의 가장 큰 특징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산화한 개인의 심리를 집중 조명했다는 점이다. 박용준은 그의 분신과 끊임없이 내면의 대화를 나누며 극을 이끌어 나간다.

고아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았던 박용준의 청소년기. 병원에서 숙식을 하며 일을 했지만 결국 월급 한 푼 없이 쫓겨났지만 가슴 속 희망을 품고 열심히 일했던 그가 인쇄소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면서 첫 '월급'을 받는 장면에서는 그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공연의 클라이맥스는 단연 5·18민주화운동 당시 박용준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장면이다. 박용준은 광주가 고립되고 시민들이 폭도로 몰리는 상황을 외면하지 못했다. 당시 함께 했던 들불야학 동료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이 계엄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모른 척 고개를 돌릴 수 없었던 박용준. 그는 뾰족한 쇠철필로 투사회보에 7일간의 참혹한 역사를 또렷이 새겼다. 수천 장의 투사회보를 썼던 그의 손은 살갗이 벗겨지고 퉁퉁 부어 있었다. 9호까지 제작된 투사회보는 당시 2~3만부씩 제작, 배포됐다.
관객들은 박용준이 죽는 장면에서 가장 큰 감정의 동요를 느꼈다.

1980년 5월 27일, YWCA에서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던 박용준. 계엄군의 '경고' 목소리와 헬기 소리가 옅어질 때 쯤 김영철 열사의 아이가 외치는 "용준이 오빠. 그만 집으로 와서 나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자'"라는 대사 때문이었다. 이어 계엄군에 의해 죽어가던 박용준의 모습 뒤로 김영철 열사의 아내가 아이에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술래가 찾을 때까지 하는거야. 용준이 오빠를 찾을 때까지…."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숨죽여 눈물을 닦아냈다.

박용준은 실제 김영철 열사의 집에 머물며 그의 아이들과 잘 어울렸다고 한다.
임해정 대표는 "박용준 열사가 느꼈던 당시의 상황과 심리적인 면을 조금 더 부각하고자 했다"며 "사회의 편견에 맞서 좌절하고, 또 싸웠던 박용준은 아이들을 참 많이 좋아했다. 그런 모습이 관객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해당 장면을 넣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들불7열사(박기순·윤상원·박용준·박관현·신영일·김영철·박효선)의 이야기를 기록하듯 다루고 싶다"며 "환경이나 어린이극 등 다른 주제의 공연도, 오월휴먼시리즈를 비롯한 오월극도 꾸준히 공연하겠다. 많은 시민들의 관심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연극의 배경이 된 들불야학은 1978년 7월 23일 광천동성당 교리실에서 문을 열었다. 광주 최초의 노동 야학이었던 들불야학은 영어와 수학 등 학문도 가르쳤지만, 노동자의 의식화와 조직화, 민주시민의 양성을 우선했다. 이러한 수업방식은 들불야학이 5·18민주화운동 시기 '투사회보' 제작을 쉽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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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이른 폭염'...예술이 전하는 '기후위기'의 경고 김수진 작 'Figverse' 기후 위기가 사람들의 삶을 위축시키고 있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것이 당연했던 일상이 이제는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의 재난'으로 변하고 있다.최근 지속되고 있는 '수상한 폭염' 역시 기후위기의 경고다. 지난 수년 동안 우리나라 주요 도시 폭염일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지속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평균 최고 기온 상승에 따른 폭염의 강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무등현대미술관이 지난 2013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는 환경미술제는 자연의 소중함과 보전의 필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기획전이다. 폭염과 폭우, 산불과 지진 등이 우연히 일어난 '재해'가 아니라 '인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데 뜻을 두고 있다.올해 11회를 맞는 환경미술제는 'Whispers of Nature-자연의 속삭임, 숨결부터 균열까지'를 주제로 지난 4일부터 8월 24일까지 개최한다. 전시회에서는 '숨결'과 '균열'이라는 두 개의 흐름을 중심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예술적 감각으로 환기시키고 있다.전반부 '숨결'에서는 김수진, 선민정, 송필용, 이석중 작가가 참여해 자연의 본질적 아름다움과 생명력, 일상의 평온함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인다.엄기준 작 '귀신고래'김수진은 무화과와 무화과말벌 사이의 공생 관계를 통해 생명과 순환, 그리고 존재 간의 필연적 연결성을 탐구하는 작가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무화과 시리즈의 초기부터 후기까지의 작업 흐름을 보여주는 세 작품을 내놓는다. 초기작 '어느날'은 일상 속 자연의 무심한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중기 '삶-하루'는 생명의 하루를 시간의 색으로 기록한다. 후기작 'Figverse'는 모든 생명이 하나의 우주로 연결돼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이석중 작가는 작품 '삶-동행'에서 메타세쿼이아의 푸른 생명력을 거침없는 붓질로 풀어내면서 그 위를 유유히 나는 백로를 통해 자연이 선사하는 평온과 치유의 순간을 보여준다. 특히 전시 공간은 은은한 어둠 속에서 새들의 지저귐이 퍼져나오는 사운드 연출을 더해 관람객이 오감으로 작품을 경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 고요한 숲길을 거니는 듯한 몰입감은 자연의 '숨결'을 느끼게 하며 궁극적으로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를 극대화시킨다.송필용 작 '물의 서사-소쇄'.송필용 작가는 '물의 서사-소쇄'를 내놓는다. 그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를 강렬한 색상대비와 물감이 흐르고 튀는 자취를 통해 물의 순환성과 자연의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면서 현대인의 정서적 치유와 내면의 정화를 드러낸다.선민정 작가는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사용한 '곶자왈'에서 생명의 흐름과 생성-소멸의 리듬을 화면 위에 섬세하게 표현했다.후반부 '균열'에서는 문선희, 엄기준, 정송규, 조정태 작가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환경 훼손에 대한 문제의식을 예술적 언어로 응시한다.문선희 작가는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인한 대규모 살처분 현장을 직접 찾아 사진으로 기록했다. 법정 발굴금지 기간이 해제된 매몰지들은 여전히 곰팡이가 피고 온전한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작품 '2654', '11800_02' 등은 땅속에 묻힌 생명과 변화된 토양, 썩지 않는 비닐을 사진에 담아 인간이 저지른 흔적을 생생하게 증언한다.조정태 작 '신천하도'.엄기준 작가는 선박사고로 인한 기름유출과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 등 해양 생태계의 붕괴에 대한 뚜렷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화려한 원색과 세밀한 묘사를 통해 아름다워 보이는 화면은 해양 생명들이 겪는 고통과 파괴의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조정태 작가가 불길에 휩싸인 산과 검게 그을린 땅을 형상화한 '신 천하도(新 天下圖)'는 자연을 파괴해온 인간의 책임을 물으면서도 회복과 재생의 여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정송규 작가는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을 주제로 했다. 전체적으로 진한 갈색과 회색의 색조를 사용해 소실된 산림의 황폐함을 시각화하고, 중간 중간 남아 있는 불씨는 경각심을 일깨워준다.전시를 기획한 박우리 학예실장은 "환경미술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예술적으로 환기하는 기획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김만선기자 geosigi2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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