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광주를 외면하지 못한 '박용준'

입력 2024.11.17. 16:03 김종찬 기자
박용준은 왜 5월 광주를 외면하지 못했나
■ '광천동 청년 용준씨' 공연 후기
극단 토박이, 오월 휴먼시리즈
첫 번째 인물 '투사회보 박용준'
고아로 태어나 차별 받았지만
새로운 꿈 꿨던 내면 집중 조명
'광천동 청년 용준씨' 공연 사진. 극단 토박이 제공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술래가 찾을 때까지 하는거야. 용준이 오빠를 찾을 때까지…."

5·18민주화운동 당시 들불야학에서 투사회보를 필경(글이나 글씨를 쓰는 일)한 광천동 청년 박용준 열사가 연극무대에 오르며 관객들을 때로는 웃음짓게, 때로는 울음짓게 만들었다.

'광천동 청년 용준씨' 공연 사진. 극단 토박이 제공

극단 토박이는 정기공연 41회 창작작품으로 지난 15일과 16일 이틀간 민들레소극장에서 박용준 열사를 집중 조명한 첫 번째 오월휴먼시리즈 '광천동 청년 용준씨'를 공연했다. 공연 기간 내내 150여석의 좌석이 모두 매진된 이번 공연은 44년 전 그날의 아픔을 겪었던 사람도, 겪지 않았던 2030 관객들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이번 무대의 가장 큰 특징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산화한 개인의 심리를 집중 조명했다는 점이다. 박용준은 그의 분신과 끊임없이 내면의 대화를 나누며 극을 이끌어 나간다.

'광천동 청년 용준씨' 공연 사진. 극단 토박이 제공

고아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았던 박용준의 청소년기. 병원에서 숙식을 하며 일을 했지만 결국 월급 한 푼 없이 쫓겨났지만 가슴 속 희망을 품고 열심히 일했던 그가 인쇄소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면서 첫 '월급'을 받는 장면에서는 그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공연의 클라이맥스는 단연 5·18민주화운동 당시 박용준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장면이다. 박용준은 광주가 고립되고 시민들이 폭도로 몰리는 상황을 외면하지 못했다. 당시 함께 했던 들불야학 동료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이 계엄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모른 척 고개를 돌릴 수 없었던 박용준. 그는 뾰족한 쇠철필로 투사회보에 7일간의 참혹한 역사를 또렷이 새겼다. 수천 장의 투사회보를 썼던 그의 손은 살갗이 벗겨지고 퉁퉁 부어 있었다. 9호까지 제작된 투사회보는 당시 2~3만부씩 제작, 배포됐다.

관객들은 박용준이 죽는 장면에서 가장 큰 감정의 동요를 느꼈다.

'광천동 청년 용준씨' 공연 사진. 극단 토박이 제공

1980년 5월 27일, YWCA에서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던 박용준. 계엄군의 '경고' 목소리와 헬기 소리가 옅어질 때 쯤 김영철 열사의 아이가 외치는 "용준이 오빠. 그만 집으로 와서 나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자'"라는 대사 때문이었다. 이어 계엄군에 의해 죽어가던 박용준의 모습 뒤로 김영철 열사의 아내가 아이에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술래가 찾을 때까지 하는거야. 용준이 오빠를 찾을 때까지…."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숨죽여 눈물을 닦아냈다.

'광천동 청년 용준씨' 공연 초반 들불야학 운동회 장면에서 관객들이 무대에 올라 2인3각 경기와 제기차기 등을 배우들과 함께 하고 있다.

박용준은 실제 김영철 열사의 집에 머물며 그의 아이들과 잘 어울렸다고 한다.

임해정 대표는 "박용준 열사가 느꼈던 당시의 상황과 심리적인 면을 조금 더 부각하고자 했다"며 "사회의 편견에 맞서 좌절하고, 또 싸웠던 박용준은 아이들을 참 많이 좋아했다. 그런 모습이 관객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해당 장면을 넣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들불7열사(박기순·윤상원·박용준·박관현·신영일·김영철·박효선)의 이야기를 기록하듯 다루고 싶다"며 "환경이나 어린이극 등 다른 주제의 공연도, 오월휴먼시리즈를 비롯한 오월극도 꾸준히 공연하겠다. 많은 시민들의 관심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연극의 배경이 된 들불야학은 1978년 7월 23일 광천동성당 교리실에서 문을 열었다. 광주 최초의 노동 야학이었던 들불야학은 영어와 수학 등 학문도 가르쳤지만, 노동자의 의식화와 조직화, 민주시민의 양성을 우선했다. 이러한 수업방식은 들불야학이 5·18민주화운동 시기 '투사회보' 제작을 쉽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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