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작가로 무언가 해야한다 생각했죠"

입력 2024.02.27. 17:31 김혜진 기자
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 '김석출-두드리는 기억' 27일~5월26일
디아스포라작가전 두 번째 자리
'5월 광주' '유관순' 시리즈 등
조국 이슈·역사 작업 풀어가며
예술가로서 소명 펼쳐와 '눈길'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이 디아스포라전 '김석출-두드리는 기억'을 27일부터 5월26일까지 연다.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된 김석출 작가가 전시장 1층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kr

"귀화를 고민하는 재일작가들에게 '어디서 사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다'며 자신의 뿌리인 민족의 역사, 전통을 잘 알면서 자기 몫을 해야한다고 이야기해왔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조국에서 이렇게 많은 작품을 출품해 개인전을 갖게 되다니 굉장히 기분이 좋습니다. 많은 분들이 재일 작가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작업을 하는지 생각해주길 바랍니다."

재일작가 김석출은 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갖게 된 소감을 27일 이같이 밝혔다.

이날 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의 두 번째 디아스포라작가전 '김석출-두드리는 기억'을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시립미술관에 2천600여점의 작품을 기증한 하정웅 선생의 컬렉션 성격에 따라 마련된 자리다. 하정웅 선생은 재일 한국인으로서 사업에 성공하자 일본 땅에서 현지의 핍박과 차별에도 자신의 뿌리를 지키며 작업하는 재일, 도일 한국 작가들을 돕기 위해 작품을 구입해왔고 그의 컬렉션은 자연스럽게 조국에 대한 그리움, 재일로서의 어려움 등이 담긴 작품으로 채워졌다.

김석출 작 '서울의 하늘'

이에 따라 시립미술관은 디아스포라 작가에 대한 조명을 지난해부터 디아스포라작가전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번 디아스포라전은 오사카에서 작업을 펼치고 있는 재일한국인 김석출 작가를 조명한다. 그는 경북 군위 출신의 부모 아래 1949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징용공으로 탄광노동자로 일했고 작가의 가족들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이주와 해방, 조국의 분단, 재일로서의 가난과 차별, 가족 이산 등 재일디아스포라 역사를 온 몸으로 겪어낸 이들이다.

김석출은 10대 시절부터 그는 주로 민족과 재일 인권, 조국의 사회적 이슈 등 현실참여 경향의 작품을 작업해왔다. 재일디아스포라 역사를 겪어왔던 이로서 당연할 수도, 반대로 용감하기도 한 작업이다.

이번 전시는 이같은 그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자리다. 하정웅 선생이 기증한 컬렉션에 포함된 '5월 광주' 시리즈 34점을 포함해 '유관순' 연작 등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105점의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 100여점으로 꾸려졌다.

김석출 작 '되돌아 보는 유관순'

전시는 시대 흐름별로 구성된다. '재일디아스포라, 김석출의 생애' '미술에 입문과 재일의 인권' '광주의 기억' '되돌아보는 유관순' '과거와 현재를 잇다'로 구성해 10대 후반에서부터 그의 60여년 예술 세계를 펼쳐낸다.

그는 청년기 '서울의 하늘' 등 조국의 상황이 담긴 작품과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재일의 인권을 위해' 등 재일의 인권 등을 이야기한 작품을 주로 그렸다. 생계 문제로 작업 활동을 쉬다시피하던 그는 1980년 광주로부터 들려온 민주화운동 소식을 듣고 다시금 작업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이 때 완성된 작품들이 '5월 광주' 시리즈로 예술가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20여년 동안 이 시리즈에 매달렸다.

그는 "화가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 그림을 포기하려고 했을 때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학생들이 계엄군에게 맞아 죽어가는 모습, 철사로 손목을 묶여 연행당하는 모습을 매일 TV뉴스로 보았다"며 "나 자신이 일본에 사는 현실과 광주시민에 대한 애처로운 심정, 광주의 부조리한 현상에 대한 분노가 중첩됐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화가로서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심정으로 다시 붓을 잡았다"고 회상했다.

김석출 작 '1980.5.27. 수난08'

비슷한 시기 그는 고려미술회를 창립해 이념을 떠나 재일작가라는 이유로 전시장을 구할 수 조차 없는 이들에게 작품 발표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재일작가를 육성하는 데도 힘 썼다. 특정 단체의 지원 없이 회원 자력으로 단체를 18년 동안 운영하며 재일미술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등 고려미술회가 재일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2000년대 들어서는 '유관순' 연작 등 민족 역사를 기억하는 작업을 해나가는 한편 동화책 원화 등을 통해 재일 3세·4세 등 후대가 우리 민족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작품을 이어가고 조국의 통일과 화합을 기원하는 작품 등을 작업하고 있다.

아카이브 자료도 주목할만 하다. 그가 예술가로서, 한국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작업할 수 있도록 한 일본 신문 스크랩 자료들이다. 1980년 5월, 국내 언론통제 상황과는 달리 일본 언론은 광주 민주화운동을 즉각적으로 보도했고 이를 현지 도서관을 통해 150여건을 수집, 그 중 주요 기사 50여건을 선별해 번역하고 전시했다.

김석출 작 '1980.5.18.광주'

전시를 기획한 김희랑 하정웅미술관장은 "김석출은 재일로서 삶과 작가로서의 삶이 녹록하지 않았지만 늘 시대의 불의와 부조리를 주시하고 예술가로서 역할을 인식하며 소명을 다해왔다"고 설명한다.

김준기 시립미술관 관장은 "일본 간사이 지역 재일미술을 대표하는 김석출의 60년 예술세계 전반을 조망하는 전시로 특히 일본에 거주하면서도 20년 이상 5월 광주를 주제로 다뤘다는 점에서 광주에서의 전시가 더욱 의미 깊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5월 26일까지. 오픈식은 29일 오후 4시.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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