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시 계엄령·불의의 사고까지
너무 가슴아파 매일 위로 기도
고통을 마음으로 나누면 힘돼
사람 마음엔 다 선한 마음있어
교만 못다스리면 남을 억압해
힘들어도 희망 잊지 말아야

한 나라의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고, 현실을 부정하고, 국가 사법체계도 부정하고, 극단적 추종세력과만 소통하면서 사회가 급속히 병적상태로 내몰린다. 윤석열과 국민의힘 등 '이익 카르텔'의 반사회적 행태에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붕괴 직전이다. 세계적 불경기와 불확실성 속에 경제는 나락으로 떠밀리고 있다. 설상가상 제주항공참사로 200명 가까운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 맘 둘 곳 없는, 상처투성이의 국민들의 마음을 어찌 다잡아 갈 것인가. 무등일보가 사회 지도층에게 위로와 일상의 지혜를 묻는 신년 특별대담을 마련했다.
그 첫 주자로 한국사회의 어른, 광주가톨릭 윤공희 대주교님의 말씀을 전한다.
대주교님은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역사의 산증인이다. 상수(上壽, 100세)를 넘겨 103세에 접어드신 윤 대주교는 이북 태생으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4·19, 5·18 등 한국 근현대사의 고비를 목도하셨다. 특히 1980년 5월엔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으로 외로운 광주시민들을 온몸으로 껴안았다. 목숨을 걸고 전두환 신군부와 협상을 벌여 사형수들을 구해내는 등 일평생을 평화의 사도로 지내시며 한국사회 희생과 연대의 상징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대담은 윤석열이 체포되기 이전에 이뤄졌다.)/ 편집자주
조덕진 무등일보 주필(이하 조) - 현재 대한민국은 현직 대통령의 친위쿠데타로 인한 경제적 위기가 심각합니다. 특히 광주전남 지역민들은 1980년이 회귀하는 듯한 트라우마에, 제주항공 참사까지 겹쳐 심각한 고통에 내몰려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위로의 한 말씀을 해주신다면.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이하 윤) - 평시에 계엄령이라는 것이 발생해 충격이 큽니다. 국민들로서는 생각도 못할 사태에 혼란이 클거고, 불의의 사고까지 겹쳐 돌아가신 분들도 있어서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아픈 마음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서 하느님께서 이분들을 어루만지고 위로해주시라고 매일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에게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한 사람으로서, 하느님은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신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함께 생각했으면 합니다.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국민들이 마음을 한 데 모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 - 현재 대한민국은 윤석열의 내란사태로 인한 경제적 위기에 국가 체계를 부정하는 현직 대통령 때문에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공동체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기 바랍니다.
윤 - (공동체 내 모든 사람들이)서로를 믿는 마음으로 대화를 통해서 합의를 얻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조 - 특히 이번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사고로 광주·전남 지역민들의 희생이 많았습니다.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또 그들을 지켜보며 가슴 아파했던 시·도민들에게 위로가 필요합니다.
윤 - 가장 중요한 것은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과 함께하는 겁니다. 고통을 마음으로라도 나누면 조금 더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조금씩 나눈다면 유가족들이 조금 더 견딜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남의 고통에 대해 연민의 마음, 내가 그 같은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본다면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 마음을 나누고 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다면 그들의 아픔과 고통이 줄어들 것입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같은 마음이 돼 들어주는 것 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통하고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성직자인 우리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이 돼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기도를 해주는 것밖에 없어서 매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조 -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를 보면서 1980년 5월 광주와 각별한 대주교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수많은 광주시민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전두환과 담판을 짓기도 하셨는데, 이번 사태를 바라보시는 마음이 너무 아프셨을 것 같습니다.
윤 - 권력자들의 무도함을 다시 보게되다니 참담합니다. 당시 전두환은 광주시민들의 희생을 담보로 권력을 잡으려했던 것이 명백합니다. 전두환이 계엄령을 선포해서 군인들을 내보내면서 어떠한 명령을 내렸는가를 보면 알 수있습니다. 당시 전두환은 데모를 진압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무력, 즉 군대를 움직일만한 구실을 마련하려는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5·18 직후 전두환이 지방 유지들을 만나는 자리에 동석한 적이 있었는데 부하가 '목포에서 데모가 일어나고 있다'고 하자 전두환은 '그러라고 그래. 그래야 진압할 명분이 생겨'라고 했습니다.
5·18은 국군이 무고한 시민을 희생시켜서 생긴 일이 원인이 됐는데 그 원인을 아무도 전두환에게 말을 못했습니다. 당시 정의구현 사제들이, 가톨릭 신도들이 그런 표시를 하고 그랬었습니다. 광주시민들이 나한테 거는 기대도 컸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바뀐 전남북 게엄분소장 소준열 장군에게 연락해서 "이걸 평화스럽게 수습을 하려고 하면 군인들이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댈 때가 없어서 데모를 하는거니까 그걸 인정하고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전두환을 만나 사형수 사면도 받아냈습니다. 1981년 3월 대법원은 정동년, 배용주, 박노정 등 5·18 관련자 3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한 상태였습니다. 청와대 군종신부가 연결해 줘서 전두환과 만남이 성사됐습니다. 청와대에서 만나 '다 사면해 주십시오'라는 간곡한 부탁을 했고, 전두환이 어찌했는지 다음날 사면 발표가 나왔습니다.

조 - 5·18을 직접 목도하셨는데…
윤 - 나는 당시 '사마리안'보다 못한 제사장(권력에 빌붙는 관료를 일컫는)에 불과했습니다. 나서지 못했고, 부끄러웠고, 평생의 한이었습니다. 광주대교구가 금남로에 있던 시절인데 당시 계엄군들의 만행을 모두 볼 수가 있었습니다. 광주대교구 인근 골목에서 군인들이 몽둥이를 들고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있던 직장인처럼 보이던 젊은 청년을 마구 때리고 있었고, 응급처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나서려고 하니 겁이 났었고, 주변인들도 만류해 건물 밖을 나서지 못했습니다.
성경에는 강도를 만난 유대교인이 쓰러져 있는데 사제들이 모두 그를 돌보지 않고 비켜갔지만 유대교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마리아인이 나서서 그 사람을 도와줬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때 건물 밖으로 나서지 못한 나 자신이 '강도를 만난 사람을 피해간 성경 속 사제'와 같다는 죄책임과 부끄러움이 컸습니다.
조 - 윤석열은 대화를 전혀 하지 않고 자기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없는데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윤 -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사람의 권력욕이라는 것이 왜 그렇게 큰지,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권력욕은 스스로가 다스려야 합니다. 스스로 다스리지 못할 때면 잘못된 방법으로 권력욕에 사로잡혀서 (비상계엄과 같은)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에도 왜 비상계엄령을 선포했고, 군대를 동원해서 국회를 장악하려하고 그럴 수가 있는지, 어떻게 그렇게 할 생각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조 - 45년 전의 1980년을 비롯해 엄혹한 한국사회에서 한국 가톨릭은 국민들에게 위로와 안식처였습니다. 사회가 발전한만큼 이젠 정치가 제 역할을 해야하는데 예전만도 못한 것 같습니다.
윤 - 정치인들의 사명은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사리사욕보다 국민 모두를 위한 행동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리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개인의 명예나 이익을 위한 봉사가 아닌 국민들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금 본인들의 사명감이 무엇인지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조 - 하지만 작금의 사태를 보면 사회적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공동의 선'이라는 것이 있는지 의심이 듭니다.
윤 - 모든 사람들 마음 속에는 선한 마음이 있습니다. 양심이 없는 사람은 없죠. 자기 양심을 키워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리사욕에 메일 때 잘못되는 것입니다. 때때로 욕심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는 이기심도 있고, 이기심을 이기지 못할 때, 선한 마음을 가꾸지 못하고 반대쪽으로 나가고, 나부터 생각하는 욕심을 부릴 때 그럴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볼 때 '교만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교만한 심성을 가지고 있으면 자기 생각만 옳다고 하고 남을 억압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조 - 1980년 5월을 직접 겪으셨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전두환에게 직언을 하셨던 대주교님이십니다.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에게 한 말씀 해준신다면.
윤 - 인간으로서 스스로 반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수신제가'라고 스스로 자신을 가꿔야 가족들도 다스릴 수 있다는 뜻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그런 것들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언론을 통해 본 윤석열 대통령은 자기도 다스리지 못하고 가족도 못 다스리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대통령 가족 중에 그렇게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이 많은 경우가 참 드문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는 그런 행보를 보여야 할 것 같습니다.
조 - 마지막으로 힘든 시기를 살아내고 있는 국민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윤 - "그래도 희망을 가지자, 그래도 희망을 가지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하느님은 항상 선하시고 사랑 그 자체입니다. 그 자체를 믿고 희망 속에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손을 내밀어주십시오. 제가 그 손을 꼭 잡고 희망의 이야기를 전해주겠습니다.
※ 윤공희 대주교는
1924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출생한 윤 대주교는 부모 모두 독실한 신자였다. 1949년 함경남도 덕원신학교를 졸업한 윤 대주교는 북한의 가톨릭 탄압을 피해 남으로 내려왔다. 이후 1950년 현재 가톨릭대학인 서울 성신대학을 졸업하고 사제서품을 받는다. 교황청으로 유학을 떠나 1957년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교에서 석사학위, 1960년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귀국, 1973년 10월 광주대교구장으로 임명됐다. 윤 대주교는 지난 2000년 광주대교구에서 정년을 맞아 은퇴했으며, 2022년 8월 27일에는 천주교 염주 대건 교회에서 백수(白壽·99세) 감사 미사가 한국 최초로 봉헌됐다.
정리=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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