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간 치열했던 동반자··· 최후 승자는 'DJ'

입력 2023.12.03. 18:16 이용규 기자
②김대중·김영삼의 경쟁과 연대
사진은 1985년 3월 6일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가 서울 동교동 자택에 연금되어 있는 김대중 전 신민당 대통령 후보를 찾아 해금을 앞두고 회동,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5.11.22. 뉴시스?

2024연중기획 탄생100년 DJ를 그리다 1부-김대중과 통합정치 ②김대중·김영삼의 경쟁과 연대

김대중과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의 관계를 말할 때 흔히 ‘라이벌(경쟁자)’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떠오른다. 실제로 그랬다. 두 사람은 1960년대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사망한 2009년까지 40여 년 동안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두 사람은 협력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의 경쟁과 연대

1924년생인 김대중은 1927년생인 김영삼보다 3살 더 많다. 1960년대 말까지는 김영삼이 정치적으로 더 좋은 조건을 지녔다. 김영삼은 1954년 제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5·6·7·8대 국회의원에 계속 당선돼 젊은 국회의원의 기수 역할을 했다. 반면 김대중은 1961년 인제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으나 쿠데타로 국회의원 선서도 못 하고 임기를 마쳤으며, 실제 국회의원 생활은 1963년 제6대 국회 때부터 시작했다. 김영삼보다 9년이나 늦은 시점이었다.

김대중과 김영삼이 본격적인 경쟁 관계에 들어간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였다. 김대중은 1967년 11월에 있었던 신민당 원내총무 경선에 나섰다가 김영삼에게 9 대 22로 패배했다. 또 김대중은 1968년 6월 유진오 신민당 총재로부터 원내총무로 내정 받았으나 의원총회 인준에 실패했다. 이때 김대중의 지명을 조직적으로 반대한 사람이 김영삼이었다.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치러졌다.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등이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경쟁했다. 경선일을 앞두고 모든 언론은 김영삼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김대중은 2차 투표에서 역전에 성공했다. 김대중은 이 승리로 원내총무 인준에서 김영삼에 밀려 겪었던 아픔을 깨끗이 떨쳐버렸다. 하지만 대선에서 김대중은 여당의 불법선거에 밀려 패배했다.

1972년 박정희가 유신체제를 선포하고 장기집권의 길에 들어섰다. 민주주의가 압살당했다. 이 시기 민주진영의 중심 인물은 김대중과 김영삼이었다. 김대중은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이하자 경쟁 대신 협력을 택했다. 1974년 8월 23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김영삼과 김의택이 경쟁했다. 김대중은 연금 중이라 직접 나설 수 없었지만, 동교동계로 불리는 그의 지지자들에게 김영삼을 지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영삼이 당내에서 박 정권에 가장 강력하게 맞서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전당대회에서 김영삼이 총재로 선출됐다.

1979년 5월30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김영삼과 이철승이 대결을 벌였다. 이철승은 1971년 신민당 전당대회 때 김대중을 도왔고, 그가 신민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있을 때는 교도소에서 추위로 고생하는 김대중에게 난로를 보내도록 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많이 주었다. 김대중은 개인적으로 이철승의 그런 도움에 감사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김대중은 공과 사를 구분했다. 김대중은 이철승에게서 선명 야당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대중은 그의 지지자들에게 김영삼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연금 중인 그는 전당대회 전날 경찰의 감시망을 피해 김영삼 지지 세력 단합대회에 직접 참석했다.

"김 총재와 나를 라이벌로 보지 마십시오. 내가 민주 회복 때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고, 김 총재가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이 김대중이를 지지하면 김 총재를 지지해 주십시오."

대의원들로부터 감동과 환호의 박수가 쏟아졌다. 다음 날 전당대회에서 김영삼은 11표 차이로 신승했다.

사진은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게 통일민주당을 창단하기도 했다. 2015.11.22. 뉴시스?

◆전두환 시대의 협력과 경쟁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정권이 무너졌다. 두 사람은 1980년 봄 경쟁에 들어갔다. 그러나 1980년 5·17사태로 다시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했다. 김영삼이 광주항쟁 3주년이 되는 1983년 5월 18일 전두환의 폭압 정치에 항의해 단식에 들어갔다. 그의 단식은 무려 23일 동안 계속됐다. 미국에 체류하던 김대중은 김영삼의 단식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고, '뉴욕타임스'에 김영삼의 단식투쟁을 지원하는 글을 기고했다.

김대중과 김영삼의 협력이 다시 시작됐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1983년 8월 15일 워싱턴과 서울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1980년 국민을 실망하게 한 데 대해 사과하면서 향후 두 사람이 함께 시대적 과제의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김대중은 2년 2개월의 미국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1985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전두환 체제의 종식과 직선제 개헌 운동에 함께 나섰다. 두 사람은 1987년 봄에는 선명 야당 '통일민주당'을 창당했고, 김대중은 김영삼을 총재로 선출하는 데 앞장섰다. 전두환이 맞불 작전으로 소위 '4·13 호헌 조치'를 발표했다. 민주세력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김대중과 김영삼도 함께 거리로 나왔다. 1987년 6월항쟁의 발발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항복선언을 했다. 항쟁을 주도한 사람은 각계각층의 민중이었지만 두 사람의 굳건한 연대와 리더십은 항쟁에 참여한 사람들의 시위 참여 동기를 더욱 확실하게 했다. 6월항쟁에서의 승리는 곧 김대중·김영삼 연합전선의 승리이기도 했다.

6월항쟁의 승리 및 6공화국 헌법의 채택으로 절차상의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다시 경쟁에 돌입했다. 두 사람이 1987년 대선에 함께 출마했다. 결과는 민정당 출신 노태우의 당선이었다. 김대중과 김영삼을 향한 민주진영의 비판과 원망이 쏟아졌다. 두 사람 모두 국민께 사과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1989년 12월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야 3당 총재 회담에 앞서 김대중 총재가 김영삼 총재와 악수하며 손을 잡아당겨 가운데 자리를 권하고 있다. 2015.11.22. 뉴시스?

◆진보와 보수진영 간 대결서 경쟁과 협력

1990년 김영삼이 노태우·김종필과 함께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창당했다. 김영삼이 군사독재세력과 합당한 데 대해 민주진영의 비판과 분노가 높았다. 김대중도 강력하게 비판했다. 두 사람의 대결은 이제 민주진영 대 보수진영의 대결 양상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두 사람의 경쟁은 이전투구로 치닫지는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국민을 의식하며 '누가 더 잘하냐'에 경쟁의 초점을 맞추었다. 김영삼이 민자당 내에서 내각제 파동으로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때 김대중은 침묵으로 중립을 지켜주었다. 김대중이 지방자치선거 시행을 촉구하며 단식투쟁에 돌입했을 때 김영삼은 단식장을 찾아가 지자체 실시를 약속했다.

두 사람의 경쟁은 1992년 대선 때 정점을 이루었다. 선거 결과 김영삼은 대통령이 됐고 김대중은 정계 은퇴의 길을 선택했다. 대통령 권력을 향한 두 사람의 경쟁은 일단 김영삼의 승리로 끝났다. 김영삼은 대통령 재임 중 하나회 척결 등 군부의 정치개입을 차단시키는 조처를 했다. 김대중은 김영삼의 개혁조치에 박수를 보냈다.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두고 한나라당의 이회창 측이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던 김대중을 뇌물수수 및 조세포탈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김영삼은 김태정 검찰총장을 불러 수사를 대선 이후로 미루라고 지시했다. 이회창 측의 반발이 극심했다. 하지만 김영삼은 대선을 목전에 두고 김대중을 수사할 경우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았다.

김대중은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다. 그는 IMF 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열었으며 노벨평화상을 탔다. 김영삼이 IMF 위기 초래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 때 김대중은 정치 인생 최고의 시기를 맞이했다. 많은 사람들은 김대중·김영삼의 최후 승자는 김대중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이렇게 40여 년 동안 치열하게 경쟁하고 협력했다. 그들이 경쟁하고 협력할 때 가장 중요시 한 관심사는 국민 여론이며, 누가 국민으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였다.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또 두 사람이 모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자 원인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국민의힘)와 민주당은 '누가 더 잘하냐'의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덜 못하냐'의 경쟁에 빠져있다. 상대방을 악마화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그래도 우리 측이 더 낫지 않느냐'면서 협박성 지지를 끌어내는 데 골몰하고 있다. 정당이나 정치인 사이의 경쟁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게 민주주의의 특징 중 하나이지만, 경쟁에도 절제가 필요하며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협력도 해야 한다. 정치권과 국민 모두 김대중·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발달에 이바지했고 함께 성공했는지 다시 한번 눈여겨보면 좋겠다. 최영태 전남대 명예교수

최영태 교수

전남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전남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전남대에서 5.18연구소장, 교무처장, 인문대학장을 지냈다.

시민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해 광주흥사단과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대표, 광주도시철도 2호선공론화위원장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독일통일의 3단계 전개과정', '빌리 브란트와 김대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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