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의병 열전 7. 윤진

장성 백양사에서 정읍 내장사로 넘어가는 등산로는 그다지 험하지 않아 산행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 등산로가 국난 극복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전북 정읍 입하면과 전남 장성 북하면의 경계를 짓는 등산로의 정상이 입암산인데, 갓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이곳 입암산에는 산의 8부 능선을 따라 높이 3m, 길이 약 5.2㎞나 꽤 길게 성을 쌓은 ‘포곡식(包谷式)’ 산성이 있다. 사적 384호인 산성 주변에는 인공 연못인 해자(垓字)도 시설되어 있다.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성곽시설과 옛 관아터, 절터, 창고터 등 성내 시설물 흔적이 남아 있다.
산성의 축조 시기가 삼한시대부터라고 한다. 이 전설이 사실이라면 노령 이남으로 진출하려는 백제의 남진을 막으려는 영산강 유역의 마한 연맹체가 성을 쌓기 시작한 것이 산성 축조의 시초였다. 입암산성은, 정유재란 때 호남 의병들이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내다 옥쇄를 한 역사 현장이다.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좌승지 파평 윤공 휘 진 순의비’가 있다. 오늘은 정유재란 때 입암산성을 사수하다 장렬하게 순절한 의병장 윤진을 살펴보려 한다.
윤진은 앞서 살핀 장성 남문창의(南門倡義)의 핵심 인물이다. 1592년 금산 전투에서 고경명·조헌이 이끄는 연합부대가 일본군의 공격으로 무너지자 장성 유림 오천 김경수가 주도해 7월 18일 장성 남문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튿날인 7월 19일 김경수는 인근 고을 유생들에게 격문을 발했는데, 이때 격문 작성에 참여한 인물이 윤진과 기효간이었다. 윤진이 남문 창의 당시부터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윤진은 본관이 파평으로, 1548년(명종3)에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다. 호는 율정이다. 윤진의 가문은 고조부 때부터 장성에 터를 잡았지만, 그가 양구에서 태어난 것은 아버지인 윤강원과 관련이 있다. 윤강원이 평안도사를 마치고 한양에 돌아왔는데 을사사화를 일으킨 정순명, 이기 등이 주연을 베풀어주며 유관의 죄를 밝히어 상소하라고 부추겼다. 윤강원은 이러한 짓을 하면 안 된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정순명, 이기 등의 미움을 산 윤강원은 곤장을 맞고 강원도 양구에 유배됐다. 윤진은 윤강원이 양구에서 유배 생활할 때 태어났다. 윤강원은 양구에서 다시 전남 강진으로 유배돼 10여 년을 보냈다. 이때의 정황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다.

“강원도사 정순우는 죄인 윤강원을 불러 관사에서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윤강원은 죄인으로서 관부에 출입하였으니, 그가 국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리낌없이 멋대로 한 정상이 매우 놀랍습니다. 정순우는 삭탈관직하고 윤강원은 먼 도에 이배(移配)하소서”
억울하게 귀양을 온 윤강원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한 강원도사 정순우가 윤강원에게 위로주를 대접하였다가 삭탈 관직 당하고, 윤강원은 강진으로 귀양지를 옮기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당시 집권 세력인 윤원형 세력에 맞서다 곤욕을 치렀던 윤강원의 처지가 잘 드러나 있다. 권력에 맞섰던 윤강원의 꼿꼿한 기개를 아들 윤진은 그대로 빼닮았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장차 큰 재목이 될 것이라고 하서 김인후 선생이 칭찬했다. 오랜 유배 생활을 끝낸 부친을 따라 한양으로 올라간 윤진은, 훌륭한 인사들과 교유를 이어갔다.
순릉 참봉과 건공감봉사 등의 벼슬을 하였던 윤진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잠시 강원도로 피신했으나 곧 장성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김경수와 함께 창의에 나섰다. 1592년 7월 18일 남문창의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남문창의에는 11월 24일 출진할 당시, 출발지인 장성을 비롯하여 나주, 담양, 함평, 영광, 무안, 광주, 정읍, 태인, 고부, 고창, 흥덕, 무장, 부안, 금구, 순창 등 전라도 중서부 지역 16개 고을 사람이 참여했다. 이 창의에는 승려, 심지어 사노 등 신분을 망라한 전 계층이 참여했다. 특히 남문창의에는 부자, 형제 또는 문중의 사람, 가솔 등을 데리고 의병에 참여한 사람이 많았다. 창의맹주인 김경수는 아들 김극후·김극순, 종제 김신남, 김인혼 등과 함께 참여했다. 김극후·김극순은 모두 순절하였다. 창의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나중에 출정할 때 의진을 이끈 김제민은 김엽·김흔 등 두 아들과 함께했다. 장성의 기효간은 아우 기효증과 함께 참전했다. 윤진은 그가 이끄는 의사 38명, 집안 하인 8명, 군량 31섬을 가지고 왔다. 이렇게 창의를 이끌었던 이들이 앞장서 인적, 물적 자원 제공을 아끼지 않으니 의병에 지원하거나 의곡 제공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출전할 때는 의병 1천620명, 군량 486석이 모아졌다.
장성 남문의병은 11월 17일 의진을 결성했다. 김경수를 맹주로, 김제민을 의병장, 부사 기효간, 참모 김홍우, 종사, 윤진, 의곡장 기효증, 종사 박경, 도유사 서연 등으로 대오를 갖췄다. 윤진이 종사를 맡았던 의진은, 11월 24일 드디어 출진했다. 김경수는 갑작스럽게 병환이 일어나 출전하지 못했다. 장성 남문을 출발한 의진은, 태인-전주-여산-천안-평택-안성-용인(1593년 1월 10일)까지 북상하였다. 이 과정에서 1592년 12월 19일 직산에서 일본군 수십 명을 참살했고, 12월 22일에는 생포한 일본군 척후병 15명 가운데 13명을 참살하는 전과를 냈다.
의진이 해체된 직후 입암산성이 전남을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임을 잘 알고 있었던 윤진은 1593년 새로 부임한 전라감사 이정암에게 입암산성 보수 공사를 건의했다.
이정암은 입암산성을 보고 “천험(天險)의 요새로 되어 있어 난을 당해 화를 피하기 이보다 좋은 데가 없다. 제일 훌륭한 천험의 조건이다”라고 해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정암은 성의 보수 공사 책임을 윤진에게 맡겼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성곽 수리에 심혈을 기울였던 윤진은, 군량미를 저장하기 위한 창고를 마련하고, 대포를 쏘기 위한 포루(砲樓)도 만들어 일본군의 재침에 대비했다. 지금도 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산성의 모습에서 백성들과 고난을 함께 하며 산성을 축조했던 윤진 의병장의 숨결이 느껴진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일본군이 남원을 지나 장성으로 밀려들어왔다. 윤진은 입암산성 별장이 되어 인근 4개읍의 수령, 의병 수백 명과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때 윤진을 따르던 이가 “윤공은 성을 쌓으라는 명령을 받았지, 성을 사수하라는 명을 받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십니까?”라며 피난 길을 권유했다.
이 말을 들은 윤진은, “조정에서 이 성을 쌓은 것은 오늘의 난리에 대비하고자 한 것이니, 어찌 신하된 도리로 내 살길만 바라겠는가? 이 성은 바로 내가 죽을 곳이고, 오늘은 바로 내가 목숨을 바칠 날이다”라고 결연히 대답했다.
의병들은 천험의 요새를 이용해 버텼지만 일본 대군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였다. 윤진은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분전하다 순절했다. 윤진의 부인 권씨 또한 적에게 욕보이지 않고 정절을 지키기 위해 은장도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남편을 따랐다. 아들 운구는 칼에 맞아 절벽으로 떨어졌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간양록을 쓴 수은 강항은 ‘율정윤공 행장’에서 윤진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윤진의 아들 운구는 윤진의 외종제 구식과 함께 그날로 권부인의 시신을 찾아내어 평상시 옷으로 염을 하였으나, 운진의 생사는 모르다가 열흘이 지나서야 비로소 풀밭 속에서 율정공의 시신을 찾아냈는데 얼굴빛이 마치 살아 있는 듯하였다. 마을 사람 중에 공의 죽음을 본 사람이 있었는데 왜적이 흰 칼날을 드러내고 대들어도 그는 가만히 앉아 칼날을 받으면서 눈도 깜박이지 않고 얼굴빛도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윤진의 충성심과 공을 높이 기려 좌승지 벼슬을 추증했고, 부인에게는 정려를 명했다. 그리고 윤진 의병장의 충절을 기리고자 1742년(영조 18) 조정의 명으로 장성부사 이현윤이 순의비를 세웠다.
윤진은 변이중을 배향한 봉암서원에 배향되었다. 봉암서원은 화차를 제작하여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끄는 데 공을 세운 변이중을 배향하고자 1697년 창건했다. 1707년 변경윤, 1728년 윤진, 변휴가 추가 배향됐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훼철됐다가 1974년 복원되었다. 봉암서원에는 변이중 유물전시관이 있다.
한경국기자 hkk4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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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관광으로 하나된 영호남···동성로서 상생 '염원'
5일 대구 동성로 28아트스퀘어 일원에서 열린 ‘2026 동서화합 영·호남 문화예술관광박람회’ 개막식에서 김종석 무등일보 대표, 손인락 영남일보 대표, 추경호 대구시장, 최병남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문화예술과장 등 참석자들이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동서간 화합과 상생을 염원하는 ‘2026 동서화합 영호남 문화예술관광박람회’(이하 박람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지난 2024년 첫 박람회를 시작으로 올해 3회째를 맞은 박람회를 맞아 지역과 세대를 넘어 문화로 하나 된 영호남은 수도권 일극 체제와 지방소멸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상생 의지를 다졌다.무등일보와 영남일보가 공동 주최·주관하고, 전남광주통합특별시·대구시·경북도가 후원한 이번 박람회는 지난 4일부터 3일간 영호남 40여 개 지자체·기관단체가 참여, 대구 동성로 28 아트스퀘어 일원에서 열렸다.대구 중심지이자 젊음의 거리인 동성로에 마련된 70여 개 부스엔 주말 나들이를 나온 가족단위 관람객부터 친구·연인과 함께 한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지난 5일 열린 개막식에는 추경호 대구시장과 황명석 경북도 행정부지사, 김용섭 문화체육관광부 지역문화정책관을 비롯한 영호남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기관·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경북 도립교향악단과 대구시립극단의 식전 공연을 시작으로 국민의례, 내빈 소개, 축사, 퍼포먼스, 부스 라운딩 순으로 진행됐다. 휴일 오후 동성로 일대를 찾은 많은 지역민은 물론, 광주·전남에서 온 주민들도 함께해 한층 더 의미를 더했다.특히 이번 박람회는 다채로운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나만의 여행 성향을 분석해 여행지를 추천해 주는 ‘나와 맞는 대구·경북 ×광주·전남 푸드 MBTI’ 트래블 라운지를 찾은 젊은이들은 질문에 따라 자신만의 추천 여행지를 찾아 나서며 즐거워했다.영호남 명소를 배경으로 추억 사진을 남기는 ‘동서화합 네 컷’은 인화지가 금방 동이 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앞선 4일에는 영호남 관광 교류의 시작이자 양 지역 청년 100명이 참여하는 ‘문화로 투어단’ 출정식이 경북도청에서 열렸다.47명의 대구경북 젊은이와 53명의 광주특별시 젊은이로 구성된 투어단은 안동 전통문화 현장을 시작으로 포항의 야간경관과 경주의 역사문화 자원을 체험한 뒤 대구에서 근대문화 현장을 살펴봤다.이들은 같은 길을 걷고 문화를 함께 경험하며 ‘경쟁이 아닌 함께 상생하는’ 동반자임을 느끼고, 체감하며 마음을 나눴다.개막식에 참석한 추경호 시장은 “영호남은 오랜 세월 대한민국을 떠받쳐온 두 축이자 역사의 고비마다 위기를 함께 극복하며 국가 발전을 이끌어온 든든한 동반자”라며 “동성로에서 전라도 사투리가 들리고 광주 5·18 민주광장에서 경상도 사투리가 어우러질 때 진정한 동서화합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김종석 무등일보사장은 “박람회의 첫 번째 가치는 동서화합이고, 두 번째는 인구소멸 시대에 우리 지역이 살아남을 길을 찾는 데 있다. 무등일보와 영남일보가 민간 차원에서 행사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며 “앞으로 광주·전남과 대구·경북이 문화관광을 통해 지역 발전의 주체로 나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손인락 영남일보 사장도 “지방소멸은 어느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남과 호남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풀어야 할 공동의 과제”라며 “문화와 관광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가장 따뜻하고 강한 힘이다. 영호남 문화관광 교류를 확대하고 지역균형발전의 길을 함께 열어나가자”고 밝혔다.한편 광주 5·18 민주광장일원에서 18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호남권 박람회는 문화예술관광과 ‘AI반도체’로 대변되는 미래 첨단산업이 접목된 다채로운 체험·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도철원기자 repo333@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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