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이’는 금쪽 같이 귀한 아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한 단어다. 귀하디 귀한 금처럼 소중하고 보물같은 자식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문제아나 말썽꾸러기를 가리키는 부정적인 의미도 지니게 됐다.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육아 전문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의 영향이 적지 않다.
사실 ‘금쪽이’라는 말에는 자기 자식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의 아이에게는 엄격한 부모들의 이중적인 잣대가 담겨 있다. 그 민낯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 중 하나가 교육 현장이다.
학부모의 선을 넘는 민원에 교사와 교실이 멍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연구에 따르면, 서울 초중고 교사 10명 중 절반은 최근 1년간 정서·행동 위기 학생에 의한 수업 방해와 교권 침해가 증가했다고 답했다. 학교급이 낮을수록 빈도도 높아 초등학교가 58.6%로 가장 높았으며 중학교 54.0%, 고등학교 42.8% 순이다. 비단 서울만의 현상은 아닐 것이다.
교사들이 수업 중 겪는 폭언과 악성 민원, 소송 등에 대비해 가입하는 ‘교권침해보험’의 보험금 지급 건수도 늘고 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교권침해보험 보험금 지급 건수는 2024년 132건에서 지난해 168건으로 36건 늘었다. 1년 만에 약 27% 증가한 수치다. 2023년 215건에서 2024년 132건으로 줄었다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가입자도 꾸준히 늘어 2020년 6천115명에서 지난해 9천316명으로 5년 새 52.3% 증가했다.
교사와 학부모 간의 불신이 커지면서 학교는 온전한 배움터가 되지 못하고 있다.
곧 스승의 날(5월15일)이다. 스승의 은덕에 감사하고 교권 존중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1982년 제정된 법정기념일이지만 언제부턴가 그 의미가 퇴색했다. 김영란법 이후 일부 교사들은 불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조퇴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씁쓸한 풍경이다.
옛말에 ‘아이는 온 마을이 키운다’고 했다. 아이들이 커가며 벌어지는 문제를 한쪽에만 책임지워서는 안된다. 가족·학교·사회가 손을 맞잡아야 한다. 교권 보호는 제도로 틀을 잡되, 모두가 함께 문화를 바꾸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
이윤주지역사회에디터 storyboard@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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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맥락맹 혹은 선택적 분노
인공지능을 이용해 만든 이미지.
‘맥락맹’(Context Blindness)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글이나 대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채 특정 단어나 문장 하나에만 집착해 엉뚱한 해석을 내놓는 사람들을 비꼬는 말이다. 문해력 저하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요즘 맥락맹은 단순한 개인의 지적 능력 부족이나 실수 정도로 치부되곤 했다.하지만 과연 그들이 정말로 맥락을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최근 우리 주변에서 관찰되는 이른바 맥락맹들의 행태를 깊이 들여다보면 고개가 가로저어진다. 그들은 결코 무지하지 않다. 오히려 앞뒤 맥락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맥락을 잃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이유는 하나다. 자신이 공격하고 싶은 부분, 혹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부분만을 골라내기 위해서다. 즉,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맥락이 거세된 자리에는 대개 맹목적인 적대감과 ‘선택적 분노’가 들어선다. 전체적인 취지나 본질은 외면한 채 꼬투리 잡기 좋은 한 마디를 박제해 마녀사냥을 벌인다. 내 편의 허물은 사정상 그럴 수 있었던 맥락이 있고, 네 편의 말은 어떤 맥락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식이다. 이들에게 맥락은 사실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 내 편을 들기 위한 변명이거나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에 불과하다.진짜 무서운 점은 이러한 맥락맹을 가장한 선택적 분노가 우리 사회의 건강한 토론과 소통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생산적인 논의도 맥락을 잃고 파편화되는 순간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만다. 소통의 부재는 확증편향을 낳고 이는 다시 사회적 분열과 혐오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단순한 오독(誤讀)의 시대를 지나, 의도적 왜곡과 선택적 분노가 판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문장을 읽는 문해력이 아니라 타인의 말에 담긴 본뜻을 왜곡하지 않고 마주하는 도덕적 문해력과 소통의 정직함이 아닐까.그런 점에서 우리에게는 포용적 시선이 필요하다. 맥락은 보편성과 특수성이 공존한다. 다시 말해 의도하지 않은 실수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의미다. 의도인지 실수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누군가가 실수에 대한 맥락을 설명하고 사과할 때는 받아들여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 실수를 밥 먹듯이 하고 있잖나.이삼섭 취재1본부 차장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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