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재'란 국가 또는 공공의 권력이나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 개인이나 사적 단체가 범죄자에게 벌을 주는 일을 말한다.
피해를 구제해 주거나 억울함을 갚아준다는 뜻에서 '사적 구제'나 '사적 보복'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복수법'이 국가의 공식 법령으로 사적 복수를 허용한 사례다. 고려 광종의 공포정치와 숙청으로 호족들의 피해가 매우 컸다. 경종이 즉위하자 호족 왕선 일파가 복수법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고 경종이 이를 받아들여 975년 복수법을 제정했다.
누구나 원한을 가진 상대에게 복수를 할 수 있게 됐다. 길에서 갑자기 사람을 때려죽여도 복수라고만 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다. 복수를 빙자한 살인은 1년 가까이 횡행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동해보복형(同害報復刑)이 있다. 흔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해당 법은 "만약 누군가 다른 사람의 눈을 해치면 그의 눈도 해친다", "남의 뼈를 부러뜨리면 그 사람의 뼈도 부러뜨린다"라고 규정했다.
최근 사적 제재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 '더 글로리'와 '모범택시' 모두 범죄 피해자나 피해자를 대신한 단체가 가해자에게 직접 응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사적 제재는 드라마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일반 시민이 온라인상에 불법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는 개인의 신상을 공개하는 일도 빈번해지고 있다. 실제로 한 유튜브 채널에서 이른바 부산 서면 돌려차기 가해 남성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는 사건의 피해자가 직접 등장해 "사적 복수가 아닌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신상 공개 이유를 밝힌다.
이를 두고 갑론을박 벌어지고 있으나 대다수가 공감과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사적 제재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커지고 있다는 것은 현행 사법체계에 대한 불만과 불신 또한 그만큼 크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국가가 아닌 개인이 저마다의 기준과 방법으로 옮기게 되면 사회질서는 붕괴한다. 고려시대 복수법을 통해 사적 제재를 허용하거나 방치했을 때 참혹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경험한 바 있다. 이를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김현주 사회에디터 5151k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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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광주 5·18공동체가 배재고에게 손을 내민다면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원과 교사, 학부모들이 6일 전남광주특별시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원들과 함께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헌화하며 오월영령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5·18민주화운동을 조롱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무수히 많은 희생자가 존재하고, 그 유족들이 여전히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최근 고교 야구 대회에서 발생한 배재고 학생들의 언행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이 이른바 ‘스타벅스 5·18 비하 사건’을 인지하고 이를 통해 상대 팀인 광주일고 선수들의 심리를 흔들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잘못에 대한 합당한 책임과 반성은 당연히 수반돼야 한다.하지만 정작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할 대목은 처벌의 방식과 지향점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성숙하기도 전에 주최 측은 해당 학생들에게 ‘6개월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안타깝게도 이 성급한 결정은 본질을 흐리고 또 다른 정쟁의 불씨가 됐다. 아이들의 철없는 행동을 정치적 이해관계로 이용하려는 어른들의 개입으로 인해 정작 상처받은 광주일고 학생들과 광주 공동체가 또다시 차가운 시선이라는 2차 피해를 입고 있는 실정이다.마침 배재고 가해 학생들이 7일 광주를 찾아 피해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5·18민주묘지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정쟁 이전으로 돌아가 미처 논의하지 못한 본질을 마주해야 한다. 배재고 아이들이 정말 악하고 나쁜 본성을 지녀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렇게 보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가진 5·18에 대한 교육의 부재에서 원인을 찾는 게 타당하다. 설령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른다 할지라도 우리 사회 일부 어른들이 쏟아내는 혐오와 조롱의 문화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답습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결국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일그러진 거울을 비췄을 뿐이다. 우리 어른들의 자성과 함께 조롱과 폄훼의 문화를 근절하려는 근본적인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5·18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들이 단 한 번이라도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영령들을 마주한다면 결코 그런 말을 함부로 던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배재고 학생들이 민주묘지에서 가슴으로 느꼈을 부끄러움과 깨달음은 그 어떤 제도적 징계보다 무겁고 값진 교육이었을 것이라 믿는다.해당 학생들과 학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처벌과 마음의 멍에를 짊어졌다. 우리 사회의 성숙도는 이미 처벌의 실효성을 판가름할 만큼 높아졌다. 이제는 5·18 공동체가 먼저 손을 내밀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광주일고 또한 선처해달라고 말하고 있다. 혐오를 포용으로 감싸는 모습을 보여줄 때 광주정신의 가치가 빛을 발할 것이라 믿는다.이삼섭 취재1본부 차장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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