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헬기사격 부정·자위권 발동 '거짓' 확인

전두환 회고록이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했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로 5·18 왜곡에 대한 법적 기준이 한층 분명해졌다는 평가다. 헬기사격 부정과 북한군 개입설 등 51개 표현이 허위로 판단되면서 왜곡은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닌 법적 책임이 따르는 행위임이 재확인됐다. 다만 왜곡이 온라인·출판·강연 등을 통해 반복되는 현실에서 손해배상만으로는 억제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18기념재단(이하 재단)은 19일 광주 서구 오월기억저장소에서 ‘5·18 역사왜곡 법률 대응 성과 및 현황 공유’ 기자간담회를 열고 판결의 의미와 향후 대응 방향을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 12일 2017년 출간된 전두환 회고록과 관련해 5·18단체와 고(故) 조비오 신부 유족 등이 제기한 손해배상·출판금지 소송에서 원심을 확정했다. 북한군 개입설, 계엄군 헬기사격 부인, 암매장 부정, 시민군 장갑차 공격 주장 등 51개 표현이 허위로 판단했고 7천만원의 배상 책임도 인정됐다. 전두환이 재판 중 사망함에 따라 소송을 수계한 배우자 이순자씨와 아들 전재국씨가 책임을 지게 됐다.

이번 판결은 전두환 측이 주장해온 헬기사격 부정 서술이 허위로 정리됐다는 점과 조비오 신부를 향한 경멸적 표현이 유족의 추모 감정을 침해했다고 본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특정 개인을 직접 지칭하지 않더라도 맥락상 피해자 특정이 가능하면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다고 본 판단은 5·18 왜곡을 공동체 전체의 명예 침해로 본 사례로 해석된다.
회고록이 시민군 장갑차 공격으로 계엄군이 사망한 것처럼 적시하며 이를 자위권 발동의 근거로 제시한 주장 역시 항소심과 대법원 판단을 통해 시민군 공격이 아닌 계엄군이 운용하던 궤도형 장갑차의 내부 사고로 확인됐다. 1980년 5월21일 발포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논리로 사용돼 온 서술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법원이 명확히 한 것이다.
재단 측은 판결의 의미보다 이후 과제가 더 강조했다. 왜곡이 반복되는 구조를 끊지 못하면 사법적 판단의 실효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이다.
김정호 민변 광주전남지부 5·18특위위원장은 “현재 법 체계에서는 왜곡으로 얻는 이익이 손해배상액보다 더 클 수 있다”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어 억제력이 제한적이고, 범죄수익을 환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의 표현의 자유 논의를 언급하며 “미국은 해의적, 과실, 고의 등 단계에 따라 책임을 나누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어 실질적 제재 수단이 부족하다”며 “5·18왜곡에는 색깔론과 지역 비하가 결합돼 있다. 보수와 진보, 세대를 나눌 문제가 아니기에 헌법적 가치로 명문화해야 근본적 차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기영 민변 광주전남지부 부지부장은 “유튜버 등이 왜곡을 하며 얻는 범죄수익 환수도 필요하다. 보이스피싱과 같은 집단화된 범죄에는 일반 환수법과 개별 특별법이 마련돼 있고, 정보통신망법 개정으로 비방 목적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몰수·추징이 가능하도록 규정이 추가됐지만, 적용 범위와 실효성은 더 검토가 필요하다. 명백한 북한군 개입설과 같은 허위 왜곡으로 수익을 얻는 경우에는 경제적 이익이환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단은 현재 5·18 왜곡 관련 소송 46건을 진행 중이다. 형사재판 2건, 민사재판 4건, 고소·고발 20건이 이어지고 있으며, 신규 왜곡 도서와 온라인 콘텐츠 20건에 대한 법률 검토도 진행 중이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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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새길 5·18···민주주의 핵심 기준·가치로
김영록 전남지사, 강기정 광주시장이 25일 서울 국회에서 5·18단체, 시민단체 등 참석자들과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구성 및 개헌 발의를 촉구하는 결의를 하고 있다. 전남도 제공
5·18민주화운동의 헌법 전문 수록 논의가 다시 불붙으면서, 실제 수록이 이뤄질 경우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두고 관심이 쏠린다. 법 해석과 국가 책임, 정책 방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변화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9일 무등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헌법 전문은 국민의 권리나 국가기관의 권한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본문과 달리 선언적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헌법 전문을 상징적 기능 중심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장영수 고려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2019년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과 헌법의 과제’를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9차 개헌 당시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문구를 새로 넣은 것은 구체적인 법적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라기보단 ‘역사적 정통성의 회복’이라는 상징적 의미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반면 헌법 전문의 규범적 기능을 강조하는 견해도 적지 않다. 같은 학술대회에서 임지봉 서강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헌법 전문은 ‘헌법의 헌법’으로, 헌법규범의 단계적 구조 중 최상위의 근본규범”이라며 “재판규범으로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위헌·합헌 판단 근거도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즉, 헌법 전문은 선언적 성격과 일정한 기능을 동시에 갖추는 것으로 이해된다.강승식 법학박사의 논문 ‘헌법전문의 기능에 관한 비교법적 고찰’에 따르면, 헌법 전문의 역할은 ▲헌법 가치와 이념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교육적 기능 ▲헌법 제정 배경과 목표를 설명하는 기능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능 ▲헌법 해석과 재판에 활용되는 규범적 기능 등으로 구분된다.특히 규범적 측면에서 헌법 전문은 단순한 해석 지침을 넘어 기본권이나 국가 의무를 도출하는 근거로 활용되거나, 경우에 따라 헌법 개정의 한계를 설정하는 기준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이는 실제 판례에서도 확인된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일청구권협정과 관련 국가의 부작위로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침해됐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2006헌마788)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지금의 정부가 국민에 대해 부담하는 가장 근본적인 보호 의무에 속한다고 할 것”이라고 판단하며 헌법 전문의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 문구를 근거로 제시했다.이는 헌법 전문에 명시된 역사와 이념이 국가의 구체적인 책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이 논리를 5·18에 적용하면, 헌법 전문 수록은 국가가 5·18을 보호하고 계승해야 할 의무를 보다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된다. 이에 따라 북한군 개입설 등 끊이지 않는 왜곡과 폄훼에 대한 대응 근거를 헌법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도 있다.아울러 교과서 서술, 국가 기념사업, 기록 보존 등 후속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단순한 사과나 보상에 그치지 않고 국가가 역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책임을 지는 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5·18은 이미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며 국제적으로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사건이다. 여기에 헌법적 지위까지 더해질 경우 대한민국 민주주의 정통성을 구성하는 핵심 가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결국 헌법 전문 수록은 즉각적인 제도 변화보다 국가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가치를 지향할 것인지를 분명히 하는 작업에 가깝다. 향후 법과 정책, 사회 인식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이 매우 크다는 평가다.이재의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은 “2001년 대법원은 5·18 당시 광주 시민의 무장 저항을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정당 행위’로 판단하며 국가의 불법 행위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을 인정했다. 12·3 계엄 당시 압도적인 국가 권력에 맞선 시민 저항의 정당성 역시 이러한 판례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시하는 것은 이러한 민주주의 가치를 분명히 하는 출발점”이라고 말했다.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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