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는 달라도 마음은 하나···" 기념식 안팎 다양한 발걸음 줄이어

입력 2025.05.18. 18:40 차솔빈 기자
국립묘지·망월묘역 참배객 다수
안창호 인권위원장 참석 '퇴짜'
"45년 지나도 아픈 기억 여전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묘역에서 김은경(83)씨가 아버지 고 김천배씨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거행된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는 아픈 마음을 딛고 떠나간 가족을 찾는 이들과 오월 영령의 마음을 달래는 참배객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기념식장 방문을 시도해 일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안 위원장은 이날 오전 9시35분께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 도착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민주의 문으로 들어섰다.

안 위원장은 전날 기념식 참석을 위해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 이번 신변보호 요청은 역대 5·18 기념식 중 최초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 위원장은 경찰의 보호 하에 민주의 문을 통과했지만, 기념식장 안에 미리 입장해 있던 5·18 단체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등의 반발에 부딪혔다.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 수많은 참배객들이 묘소를 방문하고 있다.
18일 오전 한 참배객이 헌화 후 참배하고 있다.

이들은 '내란 부역자를 광주는 거절한다' '혐오 차별 조장하는 안창호 사퇴하라' 등의 손피켓을 흔들었고, 결국 안 위원장은 방문 15분만에 차를 타고 5·18민주묘지를 떠났다.

오전 11시께 기념식 행사가 마무리되자 저마다의 사람들은 묘소를 방문해 헌화와 참배를 이어갔다.

산소 곳곳에 튀어나온 잡초를 정리하거나, 이리저리 넘어져 있는 꽃다발들을 정리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석봉(83)씨는 "함께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 쓰러져 간 친구들을 만나러 왔다"며 "고문을 받아 다리에 장애가 생겼고, 정부 탄압 때문에 직업을 갖기도 힘들어 너무나도 힘든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나와 친구들의 스승이었던 홍남순 변호사님도 이곳에 잠들어 있다"며 "그날에 멈춰버린 친구들을 돌아보면 눈물이 나오고 목이 메인다"고 눈물을 훔쳤다.

18일 오전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5.18구묘지)에 수많은 참배객들이 방문해 그 정신을 기렸다.

5·18 희생자이신 고 김천배씨의 장녀 김은경(83)씨는 떨리는 손으로 묘비를 쓰다듬었다.

김천배 씨는 농촌활동과 YMCA활동을 병행하며 군인과 시민 사이를 중재하는 수습위원 중 한 명이었고 계엄군 진격을 막는 죽음의 행진에 참여했다.

김씨는 외신기자에게 영어로 소식을 전하던 것이 적발돼 모진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숨졌다.

김씨는 "아버지가 전하고자 했던 정신과 의지가 세상에서 점차 지워져 가는 것 같아 슬프다"며 "오늘 기념사는 수많은 유공자들의 바람은 담겨 있지 않았고, 어떠한 알맹이도 없어 실망스러웠다. 계속되는 오해와 왜곡 때문에 수많은 민주화 열사들이 역사에서 사라지게 될까 슬프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5·18구묘지)는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참배객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기념식 행사와 다양한 인사들의 방문이 있었던 5·18민주묘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묘역을 둘러보았다.

묘역을 방문하는 이들은 바닥에 심어져 있는 '전두환 방문비'를 즈려밟으며 웃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고 박선영 열사의 어머니 오영자(84)씨가 박 열사의 무덤을 어루만지고 있다.

박영길(68)씨는 "해마다 5·18이 가까워지면 이곳 구묘역에 방문한다. 전두환 비석을 두어 번 강하게 밟아준 후 천천히 애국열사들의 비석에 인사를 드린다. 그게 내 일상이다"며 "두 번 말할 필요도 없이 너무나도 마음아픈 역사이자 기억이지만, 정부 인사나 정치인들은 점차 잊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전문에 새겨야 하는데, 이번에도 흐지부지 넘어갈 듯해 아쉽다"고 지적했다.

고 박선영 열사의 어머니 오영자(84)씨는 비석을 쓰다듬으며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교대 2학년이던 박씨는 학생활동 중 강도높은 취조와 협박을 당했음에도 군사독재타도와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강경하게 나섰고, 8장의 유서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어 교대 민주화 운동을 촉발시켰다.

오씨는 "나는 아직도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5·18유공자 뿐 아니라 민주화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들을 어찌 잊을 수 있겠냐"며 "딸이 관에 들어간 날 나는 '좋은 세상,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나도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끝까지 민주화 정신을 되새기면서 살아갈 것이다"고 말했다.

한 시민이 묘역 입구에 심어진 전두환 비석을 밟고 있다.
18일 일본 우타고에운동 일어서라! 합창단이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5.18구묘지)을 방문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했다.

이날 일본 우타고에운동 일어서라 합창단이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5·18구묘지)을 방문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참배객들의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합창단 소속 야마다 히로키(64)씨는 "1999년 한국을 방문해 5·18민주화운동의 아픈 역사를 자세하게 알게 됐다"며 "그 후로 매년 5·18기념식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민주묘지와 구묘역을 참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45년 전 광주시민들의 저항정신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일본에도 이와 같은 민주화 정신을 전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차솔빈기자 ehdltjstod@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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