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인권위원장 참석 '퇴짜'
"45년 지나도 아픈 기억 여전해"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거행된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는 아픈 마음을 딛고 떠나간 가족을 찾는 이들과 오월 영령의 마음을 달래는 참배객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기념식장 방문을 시도해 일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안 위원장은 이날 오전 9시35분께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 도착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민주의 문으로 들어섰다.
안 위원장은 전날 기념식 참석을 위해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 이번 신변보호 요청은 역대 5·18 기념식 중 최초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 위원장은 경찰의 보호 하에 민주의 문을 통과했지만, 기념식장 안에 미리 입장해 있던 5·18 단체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등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들은 '내란 부역자를 광주는 거절한다' '혐오 차별 조장하는 안창호 사퇴하라' 등의 손피켓을 흔들었고, 결국 안 위원장은 방문 15분만에 차를 타고 5·18민주묘지를 떠났다.
오전 11시께 기념식 행사가 마무리되자 저마다의 사람들은 묘소를 방문해 헌화와 참배를 이어갔다.
산소 곳곳에 튀어나온 잡초를 정리하거나, 이리저리 넘어져 있는 꽃다발들을 정리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석봉(83)씨는 "함께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 쓰러져 간 친구들을 만나러 왔다"며 "고문을 받아 다리에 장애가 생겼고, 정부 탄압 때문에 직업을 갖기도 힘들어 너무나도 힘든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나와 친구들의 스승이었던 홍남순 변호사님도 이곳에 잠들어 있다"며 "그날에 멈춰버린 친구들을 돌아보면 눈물이 나오고 목이 메인다"고 눈물을 훔쳤다.

5·18 희생자이신 고 김천배씨의 장녀 김은경(83)씨는 떨리는 손으로 묘비를 쓰다듬었다.
김천배 씨는 농촌활동과 YMCA활동을 병행하며 군인과 시민 사이를 중재하는 수습위원 중 한 명이었고 계엄군 진격을 막는 죽음의 행진에 참여했다.
김씨는 외신기자에게 영어로 소식을 전하던 것이 적발돼 모진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숨졌다.
김씨는 "아버지가 전하고자 했던 정신과 의지가 세상에서 점차 지워져 가는 것 같아 슬프다"며 "오늘 기념사는 수많은 유공자들의 바람은 담겨 있지 않았고, 어떠한 알맹이도 없어 실망스러웠다. 계속되는 오해와 왜곡 때문에 수많은 민주화 열사들이 역사에서 사라지게 될까 슬프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5·18구묘지)는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참배객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기념식 행사와 다양한 인사들의 방문이 있었던 5·18민주묘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묘역을 둘러보았다.
묘역을 방문하는 이들은 바닥에 심어져 있는 '전두환 방문비'를 즈려밟으며 웃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박영길(68)씨는 "해마다 5·18이 가까워지면 이곳 구묘역에 방문한다. 전두환 비석을 두어 번 강하게 밟아준 후 천천히 애국열사들의 비석에 인사를 드린다. 그게 내 일상이다"며 "두 번 말할 필요도 없이 너무나도 마음아픈 역사이자 기억이지만, 정부 인사나 정치인들은 점차 잊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전문에 새겨야 하는데, 이번에도 흐지부지 넘어갈 듯해 아쉽다"고 지적했다.
고 박선영 열사의 어머니 오영자(84)씨는 비석을 쓰다듬으며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교대 2학년이던 박씨는 학생활동 중 강도높은 취조와 협박을 당했음에도 군사독재타도와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강경하게 나섰고, 8장의 유서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어 교대 민주화 운동을 촉발시켰다.
오씨는 "나는 아직도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5·18유공자 뿐 아니라 민주화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들을 어찌 잊을 수 있겠냐"며 "딸이 관에 들어간 날 나는 '좋은 세상,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나도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끝까지 민주화 정신을 되새기면서 살아갈 것이다"고 말했다.


이날 일본 우타고에운동 일어서라 합창단이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5·18구묘지)을 방문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참배객들의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합창단 소속 야마다 히로키(64)씨는 "1999년 한국을 방문해 5·18민주화운동의 아픈 역사를 자세하게 알게 됐다"며 "그 후로 매년 5·18기념식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민주묘지와 구묘역을 참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45년 전 광주시민들의 저항정신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일본에도 이와 같은 민주화 정신을 전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차솔빈기자 ehdltjstod@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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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 5·18 들어내고···유인촌 문체부 법인화 못박기인가 옛 전남도청의 운영주체를 바꾸는 일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근간을 뒤흔들 핵심 현안인 만큼, 운영주체 논의는 이재명 정부의 새로운 문화정책 기조 따라 원점 재검토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사진은 문화전당 전경. 옛 전남도청(민주평화교류원·이하 민평)의 운영주체를 바꾸는 일은 국책사업인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조성사업)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핵심 현안인데도 문화체육관광부가 형식적인 절차에 나서 파장이 예상된다.문화체육관광부 옛 전남도청 복원추진단(이하 추진단)이 광주시, 옛 전남도청복원범시도민대책위원회 등과 함께 지난 11일 광주 동구 전일빌딩245 다목적강당에서 '옛 전남도청 명칭 및 운영 방안 토론회'를 개최해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거세다.추진단은 이 용역안에서 향후 문화전당의 역할과 운영방안 등에 대한 충분한 고민없이 운영 주체에 대한 안을 제시했다. 안은 행정안전부와 국가보훈부, 문체부 독립기관안, 전당 연계 안 등 가운데 옛 전남도청을 전당에서 분리해 독립기관으로 운영하는 안을 유력하게 제시했다.그러나 문화전당은 조성사업의 상징이자 성패를 가르는 핵심기관이고, 5·18을 상징하는 옛 전남도청은 문화전당의 상징이자 목적이라는 점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다.옛 전남도청이 문화전당의 핵심이자 조성사업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만약 옛 전남도청을 문화전당에서 떼어낼 경우, 전당의 역할과 기능이 전면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에 그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거나 병행돼야한다는 지적이다. 운영주체 변경은 전당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논의와 뗄레와 뗄 수 없기 때문이다.옛 전남도청은 문화전당의 핵심인 '민주평화교류원'으로, 문화예술을 통한 5·18의 세계적 전승과 교육 등을 과제로 안고 있다는 점에서 옛 전남도청 분리는 문화전당의 심장을 제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곡·축소 논란은 물론 향후 전당의 경쟁력에 대한 논란도 제기될 수 있다.문화전당의 전체 5개 원, 민주평화교류원(옛 전남도청)·문화정보원·문화창조원·예술극장·어린이문화원에서 핵임인 옛 전남도청(민주평화교류원)을 빼버리면 문화전당은 전시와 공연, 어린이 문화기관이라는 '평범'한 문화기관으로 전락하게 되고, 규모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결국 윤석열 문체부가 이명박근혜 정부가 조성사업을 악의적으로 왜곡·축소해온 흐름의 연장에서, 이 사업의 아이콘인 문화전당에 대한 최종 흔들기에 나선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당초 조성사업은 국책사업으로 정부가 추진키로 하고, 이를 뒷받침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하 아특법)이 당초 노무현 정부시절(2004년) 상시법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이 2013년 한시법으로 개악했고, 2021년 가까스로 시한을 2028년으로 연장하는 개정안이 통과됐다.일각에서는 당장 2028년 일몰을 앞둔 시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전당의 정체성을 가를 옛 전남도청 분리를 제안한 것은 이들이 추진해온 법인화로 가는 못박기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무엇보다 현 문체부 안이 사실상 윤석열 정권 문화정책에 기반한 만큼, 이재명 정부 문화정책에 맞춰 원점 재검토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이 대통령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3.0'과도 궤를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문체부는 오는 2026년 5월 개관을 목표로 옛 전남도청 복원공사를 진행 중이며, 복원 완료 후 시운전을 거쳐 개관한다는 계획이다.문체부가 2023년 발주한 '운영방안 연구용역'은 민평의 ACC 분리 및 국가기관 전환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그러나 이 연구는 ACC의 정체성과 설립 취지, 그리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핵심 인프라로서 민평이 갖는 역사적·상징적 가치를 도외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또 민평의 조직 인력은 당초 문체부가 지난 2014년 구상했던 안보다 실재적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규모로, 사실상 활성화 의지가 없는 방어용 논리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더욱이 민평은 단순한 기념시설이 아니라, 아시아 문화 교류의 중심 거점으로 설계되었으며, 문화전당과 함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3.0의 상징적 모델로 기능해야 할 핵심시설이다.이재명 정부가 지역공약으로 내세운 조성사업 3.0의 중심축이 문화전당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평 운영주체에 대한 논의는 단순한 조직 개편 차원이 아니라 조성사업 비전의 철학적 재규정이 동반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이런 가운데 문체부는 7월 추가 토론회 등 명칭과 운영주체에 대한 의견을 수렴을 거쳐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어서 '공론화 명분을 통한 밀어붙이기'라는 지적이 제기된다.일부 5월 단체는 이날 공청회 자리에서 아예 운영주체를 행안부로 이관해달라고 요구하며, 오히려 문체부의 민평 운영 의지를 의심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문화전당과 별도 기관으로 민평을 분리하든, 통합된 체제로 전당 내 본부 형태로 재편하든, 우선돼야 할 것은 문화전당의 기능과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재정의다.단지 운영주체나 명칭을 논의할 것이 아니라, 문화전당이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견인하는 플랫폼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민평이 그 안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저한 철학적·정책적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이번행사 토론회의 좌장을 맡았던 이기훈 광주시민사회센터장은 "지금 방향이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 프레임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문화비전 특히 문화산업의 국제경쟁력화, 민주주의 가치 구현, 균형발전과 지역문화 육성에 부합하는 새로운 운영방안 수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조덕진기자 mdeung@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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