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광주 여성들 활동 조명
52건 성폭력 피해 상황 기록·망라
피해자 모임 '열매' 대표·회원 참석
"지향점 대한 귀납적 차원 고민 필요"

'18세 여성 19-f는 18일에 집에 돌아오지 않는 오빠를 찾아 나섰다가 공수대원들에게 붙잡혀 트럭에 실려 끌려갔다. 알 수 없는 으슥한 숲속에서 그들에게 강간을 당한 후, 긴 시간 악몽에 시달리다가 결국 정신과 병원을 찾는다. 대학도 휴학하고 병원에 입원했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1986년 12월, 그녀는 고향 집 마당에서 온몸에 기름을 끼얹고 분신하여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책 '2025 광주민중항쟁과 여성' 중)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45년 만에 기록과 목소리로 세상 밖에 나왔다.
16일 광주여성가족재단은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책 '2025 광주민중항쟁과 여성' 출간을 기념해 세계인권도시 국제포럼에서 여성 섹션 포럼을 열었다. 이날 포럼에서는 책의 발간 의미와 주요 내용, 해외 여성 인권운동 사례를 공유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특히 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의 김복희 대표를 비롯해 회원들이 직접 참석해 뜻을 더했다.

책 '2025 광주민중항쟁과 여성'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벌어졌던 52건의 성폭력 피해 상황(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기준)을 유형별로 구분해 정리하고, 주먹밥을 비롯해 가두시위, 헌혈, 부상자 치료 등 여성들의 다양한 활동을 총망라한 결과물이다. 필진에는 김지연 5·18민주화운동기록관 학예연구사, 박현정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팀장, 이춘희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공동대표 등 9명이 참여했다.
이날 포럼은 광주시민을 비롯해 5·18여성계 인사, 시민사회 활동가 등 1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됐다. 행사는 정경운 전남대 교수의 기조 발제를 시작으로 전문 패널들의 발표와 토론으로 이어졌다.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인권운동과 향후 방향성'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파르하나 빈테 지가르 파리나 방글라데시 여성 민주화 활동가는 셰이크 하시나 총리 집권 아래서 자행됐던 국가 폭력을 사례로 방글라데시 여성들의 저항과 연대를 조명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처음에는 여성 참여자 수가 상당히 적었으나, 총리가 일반 학생들과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을 비교하며 '라자카르'(국가에 대한 배신자)라고 부르자 많은 여학생들이 저항에 참여하게 됐다"며 "다카와 자한기르 대학의 모든 여성 기숙사에서는 행진을 시작하고 총리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쳤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여성 시위자들의 네트워크 구축과 피해 사례를 파악하기 위해 독립적인 조사 기관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성 시위자를 '보호'하려고 하는 시도는 때로는 여성의 참여를 주변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며 "따라서 운동의 중심 원칙 중 하나는 여성을 위해 공정하고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토론자로 나선 하주희 법무법인 율립 변호사(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대리인)는 "소송 중인 원고 중 한 명은 2018년에야 비로소 수사관에게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었다. 1991년 '광주민중항쟁과 여성' 발간 당시 밝히지 못했던 일을 2018년에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이들이 생존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고 개입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활동을 열심히 해온 결과"라며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누구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날 플로어 토론 시간에는 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의 김복희 대표와 윤경회 간사가 책 발간에 대한 소감과 의의를 전하기도 했다.
김복희 열매 대표는 "회원들의 간절한 바람은 법 개정이 조속히 이뤄져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라며 "성폭력의 상처는 모든 여성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다. 열매의 걸음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윤경회 열매 간사는 "성폭력 사건은 피해 입증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5·18은 국가가 피해를 규명해낸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제주 4·3과 여순사건 등 더 오래된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
ACC, 5·18 들어내고···유인촌 문체부 법인화 못박기인가 옛 전남도청의 운영주체를 바꾸는 일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근간을 뒤흔들 핵심 현안인 만큼, 운영주체 논의는 이재명 정부의 새로운 문화정책 기조 따라 원점 재검토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사진은 문화전당 전경. 옛 전남도청(민주평화교류원·이하 민평)의 운영주체를 바꾸는 일은 국책사업인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조성사업)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핵심 현안인데도 문화체육관광부가 형식적인 절차에 나서 파장이 예상된다.문화체육관광부 옛 전남도청 복원추진단(이하 추진단)이 광주시, 옛 전남도청복원범시도민대책위원회 등과 함께 지난 11일 광주 동구 전일빌딩245 다목적강당에서 '옛 전남도청 명칭 및 운영 방안 토론회'를 개최해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거세다.추진단은 이 용역안에서 향후 문화전당의 역할과 운영방안 등에 대한 충분한 고민없이 운영 주체에 대한 안을 제시했다. 안은 행정안전부와 국가보훈부, 문체부 독립기관안, 전당 연계 안 등 가운데 옛 전남도청을 전당에서 분리해 독립기관으로 운영하는 안을 유력하게 제시했다.그러나 문화전당은 조성사업의 상징이자 성패를 가르는 핵심기관이고, 5·18을 상징하는 옛 전남도청은 문화전당의 상징이자 목적이라는 점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다.옛 전남도청이 문화전당의 핵심이자 조성사업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만약 옛 전남도청을 문화전당에서 떼어낼 경우, 전당의 역할과 기능이 전면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에 그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거나 병행돼야한다는 지적이다. 운영주체 변경은 전당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논의와 뗄레와 뗄 수 없기 때문이다.옛 전남도청은 문화전당의 핵심인 '민주평화교류원'으로, 문화예술을 통한 5·18의 세계적 전승과 교육 등을 과제로 안고 있다는 점에서 옛 전남도청 분리는 문화전당의 심장을 제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곡·축소 논란은 물론 향후 전당의 경쟁력에 대한 논란도 제기될 수 있다.문화전당의 전체 5개 원, 민주평화교류원(옛 전남도청)·문화정보원·문화창조원·예술극장·어린이문화원에서 핵임인 옛 전남도청(민주평화교류원)을 빼버리면 문화전당은 전시와 공연, 어린이 문화기관이라는 '평범'한 문화기관으로 전락하게 되고, 규모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결국 윤석열 문체부가 이명박근혜 정부가 조성사업을 악의적으로 왜곡·축소해온 흐름의 연장에서, 이 사업의 아이콘인 문화전당에 대한 최종 흔들기에 나선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당초 조성사업은 국책사업으로 정부가 추진키로 하고, 이를 뒷받침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하 아특법)이 당초 노무현 정부시절(2004년) 상시법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이 2013년 한시법으로 개악했고, 2021년 가까스로 시한을 2028년으로 연장하는 개정안이 통과됐다.일각에서는 당장 2028년 일몰을 앞둔 시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전당의 정체성을 가를 옛 전남도청 분리를 제안한 것은 이들이 추진해온 법인화로 가는 못박기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무엇보다 현 문체부 안이 사실상 윤석열 정권 문화정책에 기반한 만큼, 이재명 정부 문화정책에 맞춰 원점 재검토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이 대통령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3.0'과도 궤를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문체부는 오는 2026년 5월 개관을 목표로 옛 전남도청 복원공사를 진행 중이며, 복원 완료 후 시운전을 거쳐 개관한다는 계획이다.문체부가 2023년 발주한 '운영방안 연구용역'은 민평의 ACC 분리 및 국가기관 전환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그러나 이 연구는 ACC의 정체성과 설립 취지, 그리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핵심 인프라로서 민평이 갖는 역사적·상징적 가치를 도외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또 민평의 조직 인력은 당초 문체부가 지난 2014년 구상했던 안보다 실재적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규모로, 사실상 활성화 의지가 없는 방어용 논리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더욱이 민평은 단순한 기념시설이 아니라, 아시아 문화 교류의 중심 거점으로 설계되었으며, 문화전당과 함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3.0의 상징적 모델로 기능해야 할 핵심시설이다.이재명 정부가 지역공약으로 내세운 조성사업 3.0의 중심축이 문화전당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평 운영주체에 대한 논의는 단순한 조직 개편 차원이 아니라 조성사업 비전의 철학적 재규정이 동반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이런 가운데 문체부는 7월 추가 토론회 등 명칭과 운영주체에 대한 의견을 수렴을 거쳐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어서 '공론화 명분을 통한 밀어붙이기'라는 지적이 제기된다.일부 5월 단체는 이날 공청회 자리에서 아예 운영주체를 행안부로 이관해달라고 요구하며, 오히려 문체부의 민평 운영 의지를 의심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문화전당과 별도 기관으로 민평을 분리하든, 통합된 체제로 전당 내 본부 형태로 재편하든, 우선돼야 할 것은 문화전당의 기능과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재정의다.단지 운영주체나 명칭을 논의할 것이 아니라, 문화전당이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견인하는 플랫폼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민평이 그 안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저한 철학적·정책적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이번행사 토론회의 좌장을 맡았던 이기훈 광주시민사회센터장은 "지금 방향이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 프레임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문화비전 특히 문화산업의 국제경쟁력화, 민주주의 가치 구현, 균형발전과 지역문화 육성에 부합하는 새로운 운영방안 수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조덕진기자 mdeung@mdilbo.com
- · "복원 옛 전남도청, 명칭에 '국립' 쓰고 정부가 운영해야"
- · 5·18특별법 있어도 왜곡·폄훼 처벌 ‘하세월’
- · "기동타격대, 그날의 물음이 오늘을 겨눈다"
- · 5·18 국가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개최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