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포럼서 조명된 5·18 '허스토리'

입력 2025.05.16. 19:17 최소원 기자
[광주여성가족재단 '2025 광주민중항쟁과 여성' 포럼]
5·18 당시 광주 여성들 활동 조명
52건 성폭력 피해 상황 기록·망라
피해자 모임 '열매' 대표·회원 참석
"지향점 대한 귀납적 차원 고민 필요"
16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광주여성가족재단의 국제포럼에서 파르하나 빈테 지가르 파리나 방글라데시 여성민주화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18세 여성 19-f는 18일에 집에 돌아오지 않는 오빠를 찾아 나섰다가 공수대원들에게 붙잡혀 트럭에 실려 끌려갔다. 알 수 없는 으슥한 숲속에서 그들에게 강간을 당한 후, 긴 시간 악몽에 시달리다가 결국 정신과 병원을 찾는다. 대학도 휴학하고 병원에 입원했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1986년 12월, 그녀는 고향 집 마당에서 온몸에 기름을 끼얹고 분신하여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책 '2025 광주민중항쟁과 여성' 중)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45년 만에 기록과 목소리로 세상 밖에 나왔다.

16일 광주여성가족재단은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책 '2025 광주민중항쟁과 여성' 출간을 기념해 세계인권도시 국제포럼에서 여성 섹션 포럼을 열었다. 이날 포럼에서는 책의 발간 의미와 주요 내용, 해외 여성 인권운동 사례를 공유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특히 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의 김복희 대표를 비롯해 회원들이 직접 참석해 뜻을 더했다.

16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광주여성가족재단의 국제포럼에서 임영희 영화감독이 토론하고 있다.

책 '2025 광주민중항쟁과 여성'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벌어졌던 52건의 성폭력 피해 상황(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기준)을 유형별로 구분해 정리하고, 주먹밥을 비롯해 가두시위, 헌혈, 부상자 치료 등 여성들의 다양한 활동을 총망라한 결과물이다. 필진에는 김지연 5·18민주화운동기록관 학예연구사, 박현정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팀장, 이춘희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공동대표 등 9명이 참여했다.

이날 포럼은 광주시민을 비롯해 5·18여성계 인사, 시민사회 활동가 등 1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됐다. 행사는 정경운 전남대 교수의 기조 발제를 시작으로 전문 패널들의 발표와 토론으로 이어졌다.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인권운동과 향후 방향성'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파르하나 빈테 지가르 파리나 방글라데시 여성 민주화 활동가는 셰이크 하시나 총리 집권 아래서 자행됐던 국가 폭력을 사례로 방글라데시 여성들의 저항과 연대를 조명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처음에는 여성 참여자 수가 상당히 적었으나, 총리가 일반 학생들과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을 비교하며 '라자카르'(국가에 대한 배신자)라고 부르자 많은 여학생들이 저항에 참여하게 됐다"며 "다카와 자한기르 대학의 모든 여성 기숙사에서는 행진을 시작하고 총리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쳤다"고 말했다.

16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광주여성가족재단의 국제포럼에서 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 김복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또한 그는 여성 시위자들의 네트워크 구축과 피해 사례를 파악하기 위해 독립적인 조사 기관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성 시위자를 '보호'하려고 하는 시도는 때로는 여성의 참여를 주변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며 "따라서 운동의 중심 원칙 중 하나는 여성을 위해 공정하고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토론자로 나선 하주희 법무법인 율립 변호사(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대리인)는 "소송 중인 원고 중 한 명은 2018년에야 비로소 수사관에게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었다. 1991년 '광주민중항쟁과 여성' 발간 당시 밝히지 못했던 일을 2018년에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이들이 생존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고 개입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활동을 열심히 해온 결과"라며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누구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날 플로어 토론 시간에는 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의 김복희 대표와 윤경회 간사가 책 발간에 대한 소감과 의의를 전하기도 했다.

김복희 열매 대표는 "회원들의 간절한 바람은 법 개정이 조속히 이뤄져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라며 "성폭력의 상처는 모든 여성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다. 열매의 걸음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16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광주여성가족재단의 국제포럼에서 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 윤경회 간사가 발언하고 있다.

윤경회 열매 간사는 "성폭력 사건은 피해 입증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5·18은 국가가 피해를 규명해낸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제주 4·3과 여순사건 등 더 오래된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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