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 만행에 공사 자재 시위물품 지원
기득권 포기하고 무장조직 발대 15시간 항전
형집행정지로 석방될때까지 극심한 고문
뇌경색에 마비·언어장애 겹쳐 세상과 단절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최후 15시간 계엄군과 대항한 기동타격대 부대장 이재호씨가 쓸쓸히 투병하고 있다. 한양공대를 졸업하고 잘나가던 사업가로서 기득권을 포기하고 광주공동체를 지키고자 기동타격대를 창설했던 그다. 그는 몸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고문의 독소로 기억을 잃어가며 오래전부터 언어장애까지 겹쳐 병상에 누워있다.
1947년 광주에서 태어난 이재호씨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을 다니다 1980년 고향에서 '이림인테리어' 회사를 차렸다. 5월17일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로 시위가 계속되자 창고에 쌓아놓은 수주한 리모델링 공사 자재를 시위용품 제작에 내놓았다. 날마다 심해지는 공수부대 만행에 자전거를 타고 핸드마이크로 시민군 참여를 독려하고, 역사의 현장 전면에 나섰다.
그는 광주를 지킨다는 목표로 기동타격대 조직에 나섰는데, 계엄군의 광주학살에 분노한 15세 소년에서 30대까지 40여명이 자원했다. 이들은 대부분 초중등 중퇴생이고 노동자와 종업원 등 평범한 시민이었다. 반면 이씨는 33세로 나이가 가장 많고 유일하게 대학과 번듯한 사업체를 가진 사회 지도층이었다. 5·18 45주년을 앞두고 최근 무등일보 취재진과 광주의 한 요양병원과 보성 미력옹기에서 만난 부인 이혜옥씨는 "광주 북중과 서울 경희고를 졸업한 재호씨는 당시 사회당 당수를 지낸 김철씨의 아들인 김한길 전 의원의 형과 아주 친하게 지내 김철씨의 영향으로 5·18에 적극 참여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시민군의 무장조직을 고민한 이재호씨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대위 예편한 친형에게 군대 편제 방식에 대해 문의를 했다. 그러나 형은 동생의 물음에 답을 주지 않았다. 동생이 시국 사건에 연루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형의 마음이었다. 시대의 역설이다.
이재호씨를 비롯한 기동타격대는 27일 새벽 도청에서 체포됐다. 부인의 얘기다. "재호씨가 2층에서 윤상원 시민군 대변인이 계엄군의 사격으로 쓰러지는 것을 보고 아래층으로 피하다, 계단으로 올라오던 계엄군과 맞닥뜨렸다. 계엄군이 그 자리에서 재호씨에게 총을 쏘았더라면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는 얘길 자주 했었다"고 했다. 계엄군은 이재호씨를 혹독하게 고문했다. 부대장으로 알려진 이씨가 기동타격대를 조직, 발대 선서문을 작성 낭독했기에 계엄 당국은 사실상 대장으로 보고 더욱 심하게 대했다는 것이 부인의 생각이다.
내란중요임무종사 죄목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재호씨는 광주에서 1급 자동차 정비업체를 운영하던 부친과 주변인들의 탄원으로 1982년 8월15일 특사로 형집행정지로 석방될 때까지 2년여간 광주교도소 독방에 있었다.
부인 이씨는 "계엄 당국은 재호씨에 대해선 이감도 안시켜주고 심한 고문과 구타를 했다. 재호씨가 앉지도 서지도 못한채 엎드려서 음식물을 먹었다는 사연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출옥 후 이재호씨는 치안본부에서 근무하던 이씨와 결혼했다. 그의 서울 신혼집은 당시 5·18 관련자들의 서울출장소 처럼 붐볐고, 시국 수배자들의 도피처 역할을 했다. 폭도의 낙인이 찍힌 이씨의 직장생활은 당국의 감시로 순탄치 못했다. 가정 생계는 부인 이씨가 책임졌고, 빈궁해진 살림살이는 그의 활동을 위축시켰다. 타격대 후배들을 도와줄 수없음에 좌절하고 그의 몸과 정신을 힘들게 했다. 타격대원들의 피가 서린 도청 별관 철거 반대 투쟁 실패도 세상과의 단절에 한몫했다. 타격대 동지들은 이재호씨를 따듯한 형으로 기억하고 있다. 양기남 기동타격대동지회장은 "재호형은 사실상 대장이었다. 카리스마있고 성격 자체가 강했지만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었고, 짧은 시간임에도 총기 사용부터 대원들을 다독이는 모든 면에서 리더였다"고 했다.
45년간 고통의 세월을 살아온 이씨에게 트라우마센터에서 '상처'를 내놓고 치유를 받는 그 자체가 고통이었다. 결국 2번 다녀온 후 발걸음을 멈췄다.
부인 이 씨는 "재호씨는 얘기를 듣기는 하나 언어장애로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한다"며 "예전엔 5·18 얘기를 하면 화를 냈는데 지금은 말을 못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혼자 생각할 때가 많다"고 속사정을 드러냈다.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는 이씨는 "재호씨를 전남대에서 5·18 강사로 초청했는데 응하지 않았다. 청년들에게 올바로 설명을 해주는 것도 중요한데, 슬펐다"고 눈시울을 붉히며 아쉬워했다.
한때 이재호씨 5·18보상금 수령은 담당 공무원들의 최대 현안이었다. 광주시 관계공무원들은 보상금 수령을 거부하던 이씨를 대상으로 밤늦게 뿐만 아니라 새벽에도 계속 전화를 해서 제발 받아가 달라고 집요하게 설득했다고 부인 이씨는 회상했다. 민주유공자인 이 씨는 병원비 부담은 없으나 간병비는 지원되지 않기에 사양화되고 있는 옹기 판매로 살림을 책임지는 부인의 수입으로선 부담이 크다. 광주공동체와 민주주의를 지키는데 앞장섰던 남편이 자랑스럽다는 아내는 "재호씨 상태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길 하루하루 기도한다"고 언급했다.
그동안 언론을 기피해왔다는 이재호씨는 부인과 무등일보 취재진과의 대화에 "감사해요, 고마워요"라고 힘겹게 감사를 전했다.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은 광주공동체를 지키고자 모든 것을 포기했던 평범한 시민이 감당해야 할 고통의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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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 5·18 들어내고···유인촌 문체부 법인화 못박기인가 옛 전남도청의 운영주체를 바꾸는 일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근간을 뒤흔들 핵심 현안인 만큼, 운영주체 논의는 이재명 정부의 새로운 문화정책 기조 따라 원점 재검토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사진은 문화전당 전경. 옛 전남도청(민주평화교류원·이하 민평)의 운영주체를 바꾸는 일은 국책사업인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조성사업)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핵심 현안인데도 문화체육관광부가 형식적인 절차에 나서 파장이 예상된다.문화체육관광부 옛 전남도청 복원추진단(이하 추진단)이 광주시, 옛 전남도청복원범시도민대책위원회 등과 함께 지난 11일 광주 동구 전일빌딩245 다목적강당에서 '옛 전남도청 명칭 및 운영 방안 토론회'를 개최해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거세다.추진단은 이 용역안에서 향후 문화전당의 역할과 운영방안 등에 대한 충분한 고민없이 운영 주체에 대한 안을 제시했다. 안은 행정안전부와 국가보훈부, 문체부 독립기관안, 전당 연계 안 등 가운데 옛 전남도청을 전당에서 분리해 독립기관으로 운영하는 안을 유력하게 제시했다.그러나 문화전당은 조성사업의 상징이자 성패를 가르는 핵심기관이고, 5·18을 상징하는 옛 전남도청은 문화전당의 상징이자 목적이라는 점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다.옛 전남도청이 문화전당의 핵심이자 조성사업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만약 옛 전남도청을 문화전당에서 떼어낼 경우, 전당의 역할과 기능이 전면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에 그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거나 병행돼야한다는 지적이다. 운영주체 변경은 전당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논의와 뗄레와 뗄 수 없기 때문이다.옛 전남도청은 문화전당의 핵심인 '민주평화교류원'으로, 문화예술을 통한 5·18의 세계적 전승과 교육 등을 과제로 안고 있다는 점에서 옛 전남도청 분리는 문화전당의 심장을 제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곡·축소 논란은 물론 향후 전당의 경쟁력에 대한 논란도 제기될 수 있다.문화전당의 전체 5개 원, 민주평화교류원(옛 전남도청)·문화정보원·문화창조원·예술극장·어린이문화원에서 핵임인 옛 전남도청(민주평화교류원)을 빼버리면 문화전당은 전시와 공연, 어린이 문화기관이라는 '평범'한 문화기관으로 전락하게 되고, 규모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결국 윤석열 문체부가 이명박근혜 정부가 조성사업을 악의적으로 왜곡·축소해온 흐름의 연장에서, 이 사업의 아이콘인 문화전당에 대한 최종 흔들기에 나선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당초 조성사업은 국책사업으로 정부가 추진키로 하고, 이를 뒷받침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하 아특법)이 당초 노무현 정부시절(2004년) 상시법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이 2013년 한시법으로 개악했고, 2021년 가까스로 시한을 2028년으로 연장하는 개정안이 통과됐다.일각에서는 당장 2028년 일몰을 앞둔 시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전당의 정체성을 가를 옛 전남도청 분리를 제안한 것은 이들이 추진해온 법인화로 가는 못박기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무엇보다 현 문체부 안이 사실상 윤석열 정권 문화정책에 기반한 만큼, 이재명 정부 문화정책에 맞춰 원점 재검토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이 대통령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3.0'과도 궤를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문체부는 오는 2026년 5월 개관을 목표로 옛 전남도청 복원공사를 진행 중이며, 복원 완료 후 시운전을 거쳐 개관한다는 계획이다.문체부가 2023년 발주한 '운영방안 연구용역'은 민평의 ACC 분리 및 국가기관 전환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그러나 이 연구는 ACC의 정체성과 설립 취지, 그리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핵심 인프라로서 민평이 갖는 역사적·상징적 가치를 도외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또 민평의 조직 인력은 당초 문체부가 지난 2014년 구상했던 안보다 실재적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규모로, 사실상 활성화 의지가 없는 방어용 논리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더욱이 민평은 단순한 기념시설이 아니라, 아시아 문화 교류의 중심 거점으로 설계되었으며, 문화전당과 함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3.0의 상징적 모델로 기능해야 할 핵심시설이다.이재명 정부가 지역공약으로 내세운 조성사업 3.0의 중심축이 문화전당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평 운영주체에 대한 논의는 단순한 조직 개편 차원이 아니라 조성사업 비전의 철학적 재규정이 동반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이런 가운데 문체부는 7월 추가 토론회 등 명칭과 운영주체에 대한 의견을 수렴을 거쳐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어서 '공론화 명분을 통한 밀어붙이기'라는 지적이 제기된다.일부 5월 단체는 이날 공청회 자리에서 아예 운영주체를 행안부로 이관해달라고 요구하며, 오히려 문체부의 민평 운영 의지를 의심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문화전당과 별도 기관으로 민평을 분리하든, 통합된 체제로 전당 내 본부 형태로 재편하든, 우선돼야 할 것은 문화전당의 기능과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재정의다.단지 운영주체나 명칭을 논의할 것이 아니라, 문화전당이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견인하는 플랫폼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민평이 그 안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저한 철학적·정책적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이번행사 토론회의 좌장을 맡았던 이기훈 광주시민사회센터장은 "지금 방향이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 프레임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문화비전 특히 문화산업의 국제경쟁력화, 민주주의 가치 구현, 균형발전과 지역문화 육성에 부합하는 새로운 운영방안 수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조덕진기자 mdeung@mdilbo.com
- · "복원 옛 전남도청, 명칭에 '국립' 쓰고 정부가 운영해야"
- · 5·18특별법 있어도 왜곡·폄훼 처벌 ‘하세월’
- · "기동타격대, 그날의 물음이 오늘을 겨눈다"
- · 5·18 국가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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