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중립 지켜라"...보훈부, 尹 구속 취소 규탄 성명 낸 5·18 공법단체 압박 논란

입력 2025.03.09. 10:01 박승환 기자
공문 보내 정치적 중립 의무 준수 당부
과거 도태우·황상무 비판 성명 때도 압박
유족회장 "5·18 당사자로서 당연한 목소리"
姜 시장 등 "시대착오적 발상 심히 유감"
보훈부, 관리·감독 기관 통상적인 업무 해명
보훈부가 지난 7일 오후 10시께 5·18 공법 3단체에 보낸 '5·18 민주단체의 정치적 중립의무 준수 재안내라는 제목의 공문. 독자제공

국가보훈부가 윤석열 대통령 구속 취소를 인용한 법원을 규탄하는 내용의 성명을 낸 5·18 공법단체에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며 압박해 논란이다.

5·18 공법단체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수차례 성명을 발표할 때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가 결정되자 돌연 5·18 공법단체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보훈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보훈부가 정권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무등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보훈부는 지난 7일 오후 10시께 ‘5·18 민주단체의 정치적 중립의무 준수 재안내’라는 제목의 공문을 5·18 공법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에 보냈다.

보훈부는 공문에서 5·18 민주유공자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과 5·18 공법단체 각 정관 등을 근거로 들며 당일 5·18 공법단체가 발표한 ‘내란 주범에 대한 구속 취소 결정은 정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라는 제목의 성명은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법률과 정관 위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특정 정당 정강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 ‘특정 공직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 ‘회원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징수하거나 제공받는 행위’ 등 보훈단체의 정치적 중립의무 준수사항을 안내하며 이를 위반하지 않도록 유념해달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보훈부는 공문 발송에 앞서 지속적으로 전화를 걸어 성명서 원본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문제는 보훈부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

5·18 공법단체가 12·3 비상계엄 이후 ‘공수처 체포에 응하지 않는 윤석열 내란수괴범에 대한 5월 단체 입장’, ‘윤석열 내란 수괴 구속 연장 불허에 대한 5월 단체 성명’, ‘극우 선동 세력의 광주 집회를 강력히 규탄한다’ 등 수정본 제외 총 9건의 성명을 냈지만 그동안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다가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가 결정되자 성명 발표에 대해 문제를 삼았다.

심지어 보훈부의 5·18 공법단체 압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5·18 공법단체가 지난해 초 5·18 당시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발언한 도태우 변호사에 대한 공천을 취소하고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을 경질해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했을 때도 공문을 보내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고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양재혁 유족회장은 “늦은 시간 압박성 공문을 보낸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다른 공법단체에 동일하게 공문을 보낸 것도 아니다”며 “5·18 당사자로서 계엄과 내란을 비판하고 5·18을 왜곡·폄훼한 사람들을 규탄하는 당연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정치 활동으로 보는 행위는 명백한 압박이다”고 지적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보훈부를 규탄하는 게시글. 강 시장 페이스북 캡처

이와 관련 강기정 광주시장과 광주시, 박지원(해남·완도·진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입장문 등을 통해 보훈부를 꼬집었다.

강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글을 올려 “윤석열 구속취소를 비판한 5·18 공법단체를 정치적 중립 의무 운운하며 야밤에 전화를 걸어 압박했다니 그 시대착오와 판단착오가 심히 유감스럽다”라며 “내란 주범을 내란 주범으로 부르지 말라니 우리를 호부호형 못했던 조선시대 홍길동으로 만들겠다는 것인가”라고 밝혔다.

광주시도 입장문을 통해 “보훈부는 무엇이 두려워 5·18 공법단체에 재갈을 물리려하느냐”며 “이는 5·18 단체의 정당한 활동을 탄압하는 행위다. 5·18 정신을 유린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보훈부는 부당한 압력행사에 대해 공식사과하고 5·18 공법단체의 정당한 활동을 적극 보장해야 한다”며 “보훈부가 두려워해야할 대상은 내란수괴 권력자가 아니라 헌법을 수호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보훈가족과 국민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5·18 공법단체가 윤석열 석방 비난 성명과 석방 반대 의사를 밝히자 보훈부에서 압박을 했다. 그렇다면 석방 환영 성명이나 내란 지지 성명을 내야 하느냐”며 “세상에 이런 미친 정부가 있을까 놀랍다. 보훈부의 각성을 촉구한다”고 게시글을 올렸다.

이같은 논란에 보훈부는 정부의 재정 등 각종 지원을 받는 보훈단체에 대한 관리·감독기관으로서 통상적인 업무의 일환이라고 일축했다.

보훈부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보훈단체는 정관에 따라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킬 의무가 있다. 위반 소지가 있을 경우 적시에 공문을 발송하는 것은 통상적인 업무에 해당한다”며 “박근혜 정부 8건, 문재인 정부 10건 등 역대 정부에서도 정치적 중립 의무를 준수할 수 있도록 안내 공문을 발송해왔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성명서 원본을 요청한 것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다. 압박의 수단이 될 수 없다”며 “대통령실로부터 모종의 압력을 받고 다급히 움직였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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