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당시 재현 원칙 깨진다” 사실상 ‘반영 불가’ 입장 고수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복원사업이 진행 중인 옛 전남도청에 보도검열관실을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복원사업을 추진 중인 문화체육관광부 옛 전남도청복원추진단(이하 추진단)은 자신들이 세운 원칙만을 고집하며 보도검열관실 복원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7일 무등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1979년 10·26 사건으로 선포된 비상계엄이 해제되는 1981년 1월24일까지 전국적으로 신문과 통신, 방송, 잡지에 실리는 모든 기사는 계엄사령부의 철저한 사전 검열을 받았다.
계엄사령부는 검열 지침을 만들고 매일 어떤 내용의 기사를 보도해야 하는지부터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지, 사진은 사용해도 되는지, 기사의 크기는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까지 구체적으로 통제했다. '보도검토필'이라는 도장이 찍혀야만 보도할 수 있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는 무차별 구타를 비롯한 계엄군의 과잉진압과 인명피해 사항 등에 대해서는 일체 보도를 금지시켰다. 광주에서 자행한 불법적인 행위를 은폐시키기 위함이었다. 광주가 처한 상황이 사실대로 보도되지 못하다 보니 철저하게 고립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지금까지 왜곡·폄훼가 이어지고 있다.
이 기간 검열을 통해 삭제된 기사는 총 2만7천58건(전면 삭제 1만1천33건·부분 삭제 1만6천25건)에 달했다. 광주·전남지역 언론인들도 옛 전남도청에 설치된 계엄사령부 전남북계엄분소 보도검열관실에서 검열을 받았다.
이 같은 아픈 역사를 알리기 위해 광주·전남지역에서 활동한 퇴직 언론인들이 모인 광주전남언론인회(이하 언론인회)는 옛 전남도청에 보도검열관실 복원을 요구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내려진 계엄사령부 포고령에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과거 군사독재 시절 횡행하던 반민주적인 보도검열의 위험성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광주전남기자협회도 언론 통제 망령을 되살린 12·3 비상계엄 사태로 보도검열관실 복원의 필요성과 명분이 분명해졌다며 입장문이나 성명서를 내는 것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추진단은 보도검열관실의 위치가 사진 등의 자료로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아 '원형 복원'이라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언론인회에서 구술로 증언한 위치인 도청 별관 2층 공간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을 설치하면서 없어졌으므로 다른 공간에 보도검열에 대한 내용을 전시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사실상 복원하지 않겠다는 의미인 셈이다.
도청 본관에 5·18 당시 도난과 절도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등 알려지지 않은 5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거나 도청 별관에 민주주의 교육 체험실을 만드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추진단 관계자는 "1980년 당시 모습으로 재현한다는 원칙을 깨고 구술자료로만 공간을 재현하게 되면 영화세트장과 다를 게 없어진다"며 "일부 공간에 대한 서사를 보완하기 위해 추가하는 5가지 이야기 소개나 발견된 서사가 없어 전반적인 교육공간으로 활용하는 것과는 결이 다른 문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허연식 전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2과장은 "보도검열관실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 가장 강제적이고 악랄한 공권력 행사를 보여주는 공간이다"며 "추진단이 원형 복원과 최후항쟁에 매몰돼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추진단은 오는 10월31일 준공을 목표로 시설 복원공사와 함께 내부 전시콘텐츠 제작·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지난 4일 불이 난 도경찰국 본관은 외부 업체를 통해 구조적 안전성 등을 점검한 뒤 공사를 이어갈 예정이나, 피해가 경미해 준공 기한에 크게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기준 시설 복원공사 공정률은 42%로 준공 이후 3개월가량 리허설을 거친 뒤 2026년 1월 정식 개관할 예정이다.
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 '옛 전남도청' 전시콘텐츠 기대 못 미친 이유는, '부실한 사례조사' 문화체육관광부 옛 전남도청복원추진단의 국외 사례조사 결과보고서(사진 위쪽). 9.11 테러 박물관 내 '메모리얼 풀'에 대한 설명(붉은색 선)이 인터넷(사진 아래쪽)에 검색해도 나오는 내용이다. 보고서 및 나무위키 캡처. 5·18민주화운동 최후 항쟁지 옛 전남도청 복원사업의 핵심으로 꼽히는 내부 전시콘텐츠가 지역사회의 기대에 못 미치는 이유는 부실한 사례조사 때문이라는 지적이다.9일 무등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문화체육관광부 옛 전남도청복원추진단과 콘텐츠 시공업체 등 9명은 지난해 3월22일부터 29일까지 6박 8일간 미국을 방문했다.옛 전남도청 내부를 채울 전시콘텐츠 설계·제작에 참고하기 위한 사례조사를 위해서다.이들은 '9·11 테러 박물관', '유대인박물관', '홀로코스트 기념관' 등 미국 뉴욕과 클리블랜드, 워싱턴DC 등의 주요 역사 기념시설 12곳을 찾았다. 예산은 비행기 값과 체류비, 차량 대여료, 시설 입장료, 통역료 등 총 3천900만여원이 들었다.하지만 수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국외 사례조사까지 나섰음에도 결과를 보면 무엇을 얻었는지 의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실제 무등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추진단으로부터 제출받은 A4 38장 분량의 '국외 사례조사 결과보고서'를 보면 방문한 역사 기념시설에서 느낀 구체적인 경험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보고서 중에서 표지와 목차를 제외하고 절반 이상은 거의 사진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나머지 분량도 출장개요와 세부일정, 방문한 시설이 어떤 곳인지 설명하는 수준이었다.문화체육관광부 옛 전남도청복원추진단의 국외 사례조사 결과보고서. 절반 이상이 거의 사진으로만 채워져 있다. 보고서 캡처9.11 테러 박물관 내 '메모리얼 풀'에 대해서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이 중앙의 빈 공간으로 끝없이 들어가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 이유는 남겨진 유족들의 물리적, 심리적 공허를 상징한다'고 서술했는데 이는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도 나오는 내용이다.유대인박물관에 대해서도 '600만명의 유대인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기억을 일깨우기 위해 육각형 모양으로 디자인했다'고 적었는데 마찬가지로 검색하면 알 수 있는 정보다.또 방문시설 12곳 중 3곳에서는 관계자 면담도 함께 진행했는데, 2곳에 대해서만 주요 내용을 보고서에 담았다.국외 사례조사의 시사점은 단 3장 분량에 그쳤다.특히 유대인박물관의 경우 '사진 자료가 없거나 자료가 부족한 부분은 삽화를 이용해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며 시사점을 적었는데, 현재 광주전남언론인회에서 요구하는 '보도검열관실' 복원의 경우 '사진이 없으면 영화세트장과 다를 게 없다'며 설계에 활용하지 않고 있다.이에 대해 허연식 전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2과장은 "보고서 내용을 보면 방문한 기념시설이 방문객들에게 어떤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이어 "결국엔 통상 건설현장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사용하는 방식인 최저가낙찰제로 콘텐츠 설계 업체를 선정하다 보니 생긴 문제다. 역사적 전문성이 부족하다 보니 지역사회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며 "추진단은 원형 복원과 최후항쟁에 매몰되지 말고 지금이라도 콘텐츠의 전체적인 흐름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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