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5·18 기념식인가" 시민 배려 없는 과도한 통제에 참배객들 '분통'

입력 2024.05.18. 17:54 차솔빈 기자
과거와 달리 바리케이드로 출입 저지
"감옥이냐" 펜스 부수고 항의 빗발쳐
고령 참배객들, 땡볕 더위에 '분통'
18일 기념식을 마치고 초청받지 못한 일반 참배객들이 모여 주먹밥을 먹고 있다.

"시민을 무슨 불청객 취급하는데 이런 식의 과도한 통제는 살아 생전 처음이다. 누구를 위한 5·18 기념식인가요"

5·18민주화운동 제44주년 기념식이 거행된 18일 오전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은 70대 백발의 참배객이 끝내 분통을 터트렸다.

땡볕 더위에도 기념식을 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민주묘지를 찾았지만 정작 민주묘지로 입장하는 출입구인 '민주의 문' 근처에는 한 발짝도 접근이 어려웠다.

18일 텅 빈 민주의 문 앞 약 20m 떨어진 입장 카드 확인 구역에서 경찰이 일반 참배객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민주의 문 반경 약 20m 주변이 삼엄한 경계 속에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목마다 철제 펜스와 경호 인력이 배치돼 '입장카드'가 없는 참배객의 출입을 저지했다.

기념식 2시간 전 민주묘지를 찾았다는 김미해(76·여)씨는 민주의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18일 오전, 5·18부상자회 한 회원이 "마치 감옥 같다"며 철제 펜스를 여럿 넘어뜨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불과 몇년 전만해도 민주의 문까지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었다. 유족들 근처에서 응원의 말도 직접 전하고 훨씬 기념식 다운 기념식이었다"면서 "지금은 경호원들이 아침부터 기념식을 보러 온 시민들을 무슨 죄인 마냥 쫓아낸다. 기념식의 취지에 어긋난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이날 남녀노소 불구하고 무수히 많은 참배객이 입장카드 소지 여부를 검사하는 안내원들과 잦은 실랑이를 벌였다.

참배객이 접근하는 족족 안내원은 "선생님, 입장카드 받으셨어요"라고 질문했다.

심지어 5·18 유족과 국가유공자 중 입장카드가 없어 입장이 제지된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별도로 초청자 명단 확인을 거쳐 기념식장에 입장했다.

기념식 시간이 가까이 올수록 민주의 문으로 향하는 길목은 출입 통제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순식간에 많은 인파가 몰리다 보니 입장카드를 소지하더라도 대기 시간이 발생했다.

안내원이 바쁜 틈을 타 몰래 입장하려다 적발되는 참배객도 목격됐다.

곳곳에서 "너무하다""구경도 못하나""시민은 안중에도 없나" 등 원성이 쏟아졌다.

공법단체 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 한 회원은 부상자회 부스 주변에 설치된 철제 펜스를 넘어뜨리며 "철거하라"고 호통쳤다.

그는 경찰에게 다가가 "(펜스가) 보기에 좋지 않다. 감옥같고 섬뜩하다"며 "차라리 경찰을 띄엄 띄엄 배치해라"고 제안했다.

경찰은 이내 펜스를 치우고 경호 인력을 배치했다. 이날 5·18민주묘지에는 기동대 40여개 중대 등 경찰 3천500여명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오전, 이재명 대표가 방문하자 순식간에 인파가 몰렸다.

올해 처음으로 민주묘지 주차장 입구에 3중 바리케이드가 설치됐다.

경남 김해에서 온 이시험(65)씨는 "여러 차례 기념식에 참석했지만 바리케이드가 3중으로 설치된 건 처음"이라며 "여기가 무슨 전쟁터도 아니고 바리케이드를 보는 것 만으로도 살벌하다. 대통령이 행사의 주인이냐"고 인상을 찌푸렸다.

입장카드가 없는 참배객들은 그늘이 거의 없는 바리케이드 근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기념식을 기달려야 했다.

좁은 나무 그늘 아래에 수십 명의 참배객이 몰려 자칫 사고의 위험도 도사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념식 시작을 앞두고 도착하자 민주의 문 주변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방물케 했다.

윤 대통령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밀치거나, 윤 대통령을 향해 고성을 지르는 등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한 정치인이 지각하는 해프닝도 빚어졌다.

기념식이 시작한 뒤 민주묘지에 도착한 안철수 의원이 민주의 문으로 향하는 입구를 찾지 못해 방황하자 참배객들 사이에서 비방과 욕설을 난무했다.

심지어 한 참배객은 안 의원을 쫒아가다가 경찰에 의해 저지당했다.

기념식이 마무리된 직후인 오전 11시께 경찰의 과도한 통제가 해제되고 오월 주먹밥 나눔 행사가 열렸다.

민주의 문 저편 땡볕 아래 서서 오랜 시간 기념식을 관람한 참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주먹밥과 물을 나눠먹으며 고단함을 달랬다.

한편 5·18 44주년 기념식은 '오월, 희망이 꽃피다'는 주제로 이날 오전 10시부터 45분간 국민의례, 여는 공연, 경과보고, 기념공연1, 기념사, 기념공연2,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등 순으로 진행됐다. 기념식에는 윤 대통령과 5·18 유공자와 유족, 여야 정치권 인사 등 2천500명이 총집결했다.

차솔빈기자 ehdltjstod@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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