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부터 80년 5월까지 온몸으로 겪은 한국 근대사 산증인
목격자로 남지 않고 시민 지켜내고자 진상규명 행동하는 삶 실천
피해자·그 가족들 위해 다방면 활동…"왜곡·폄훼 난무 안타까워
'윤 대주교님 삶의 역사는 한반도의 현대사이자 한국 교회의 살아있는 경험과 기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일들을 겪으셨음에도 윤 대주교님의 얼굴에는 그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는 온화함과 평화로움이 가득합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를 설명한 천주교 의정부교구장인 이기헌 베드로 주교의 글이다. 지난 7일 만난 윤공희 대주교는 이 글과 완전히 일치했다. 어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평화롭고 온화한 표정이지만 말씨에는 강단이 있고 이야기에는 지혜와 철학이 서렸다.
이 주교의 말처럼 올해 아흔아홉, 백수(白壽)인 윤 대주교는 한국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역사의 산증인이다. 1924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난 그는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북의 종교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 월남했고 이후 한국전쟁을 겪었다. 역사에 의한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80년 5월엔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으로 지내며 무자비한 국가폭력 앞에 스러져가는 국민들을 금남로서 목격했다. 이를 목격한 80년 5월 19일부터 그는 목격자로 남지 않고 시민을 지켜내는데 힘쓰고 진실 규명을 위해 뛰는 등 행동하는 삶을 살아왔다. 윤 대주교가 지역 큰어른으로 통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지난 2013년 서품 50주년 기념 미사 강론에서 "5·18 때 순교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죄임을 하느님 앞에서 고백한다"며 '살아남은 자'로서의 죄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당시의 자신을 '부끄럽다' 말하는 윤 대주교. 그에게 80년 당시 광주의 상황과 그 이후의 이야기, 4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왜곡과 폄훼가 난무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5·18에 대해 물었다.
◆청년의 피로 젖은 흰 셔츠 생생해
윤공희 대주교는 40년도 더 지난 1980년 5월의 일을 어제 일처럼 자세히 떠올렸다. 당시 그가 천주교 광주교구장으로 지내며 근무하던 곳은 현재 5·18기록관인 가톨릭센터로 금남로 한 중심이었다. 무자비한 진압 작전을 펼쳤던 계엄군, 이에 대항하던 이들, 피 흘리며 쓰러진 청년들, 군인들에 끌려가던 시민들…. 모든 것이 그에겐 생생하다. 특히 5월 19일 금남로의 풍경은 평생 잊을 수 없다.
동구 학동에 있는 숙소에서 가톨릭센터 6층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하던 윤 대주교는 아침 9시께 도청 인근을 지나며 삼엄한 분위기를 느꼈다. 전보다 더 많은 수의 군인들이 있었다고. 뒷길로 돌아 사무실에 도착해 창문 밖을 내다보니 양옆 골목골목에서 몰려나오려는 시민들을 무장한 계엄군들이 못 나오게 막고 있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윤 대주교는 "군인들이 시민들 윗옷을 벗기고 몽둥이로 때리고 짓밟고 차에 실어 갔다"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흰 와이셔츠를 입은 청년이다. 어깨와 가슴 부위가 피에 젖은 채로 한 빌딩 뒷문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군인은 무자비한 폭력을 멈추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이어 그는 "'저 사람 치료가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내려가지를 못했다"며 "한 유대인이 강도 만나 길에 쓰러져 있는데 사제마저도 못 본 체 지나간 것을 원수지간인 사마리아인이 구했다는 내용의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모습이 꼭 그 이야기 속 사제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의 일이 아직까지도 마음에 맺혀있다고 고백했다. 나서지 못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천주교 주교 위치에 있으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는 것이 5·18 이야기만 나오면 속으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요. 평생 잊을 수 없어요. 그때 그 청년과 무자비한 폭행에 스러져가던 시민들을."
◆더 이상 인명 희생 안 돼
80년 5월 앞에 자신은 부끄러움 밖에 없다고 하지만 사실 윤 대주교는 5월 피해자, 피해가족들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다.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자료를 전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배포하고 강론에 나서는가 하면 계엄군 장교, 미국대사에 원만한 수습을 요구하는 활동을 펼쳤다.
1981년에는 5·18 관련 구속자 5명에 대법이 사형 판결을 하자 이들의 사면을 위해 전두환을 만나기도 했다.
윤 대주교는 "이들을 구할 수 있는 방도가 없어 답답한 마음에 김수환 추기경에게 '내가 전두환을 한 번 만나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주교님이 어서어서 가보라'고 해 군종신부 통해 만날 수 있었다"며 "만나서 '많은 인명이 이미 손상됐는데 또 손상돼서는 안 된다. 무조건 사면해달라'고 했더니 전두환이 '군경을 죽인 사람들을 어떻게 그냥 두냐'고 하며 즉답을 피했다"고 기억했다.
이어 "나가는 길에 한 번 더 '사면해달라'고 말했으나 당시 분위기상 부탁이 통할 것 같지 않아 그 가족들을 생각하니 괴로운 마음이었다"며 "한 이틀 뒤 김 추기경에게 '감형될 것 같다'는 전화가 왔고 곧바로 뉴스를 통해 사형 언도 받은 5명을 무기형으로 감형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무기형이었지만 우선 죽는 사람이 없게 돼 다행이었다"고 전했다.
같은 해 5월 10일께 윤 대주교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성소 주일 미사서 강론을 펼치며 군인의 폭력 진압과 폭도라는 오명을 쓰게 된 시민들의 항거 과정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 강론은 광주 바깥에서의 발언으로 전국의 신자들에게 '광주항쟁'의 진상을 낱낱이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어 그는 광주서 5·18 1주기 추모미사를 통해 구속자 전원 석방을 촉구했고 이듬해 구속자 석방 이후로는 매년 추모 미사에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등 1980년 5월 이후 삶을 5·18과 함께 해왔다.
◆민주 시민 의무 무엇인지 생각해야
윤 대주교뿐만 아니라 지역 각계각층이 80년 5월 그날의 진상규명을 위해 발 벗고 나섰지만 40년도 더 지난 지금, 5·18은 왜곡과 폄훼로 상처만 가득하다. 국민 학살의 책임자인 전두환은 사죄 없이 이 땅을 떠났다.
윤 대주교는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다 책임을 전가하고 내란을 일으켰다"며 "사죄도 없이 간 것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5·18의 진상규명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은 오늘날 가장 우려되는 것은 잊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80년 5월은 기억돼야 하건만 세대간, 지역간 5·18 계승은 당장 멀게만 느껴진다.
윤 대주교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권력의 폭행은 반드시 진상 규명이 필요하기에 민주 시민으로서 5·18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권력에 의한 폭력은 진상 규명이 반드시 필요한데 직접 봤으니 5·18 진상 규명을 계속해서 요구하는 것이다"며 "5·18은 민족적 시련이기에 잊지 말아야 한다. 과거를 잊으면 같은 과거를 반복한다는 말이 있다. 시련의 과거를 기억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의무는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까지 윤 대주교는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뜻을 모아 책임과 권한을 맡게 되는데 이를 무시하고 개인적 욕심으로 권력을 장악하려고 해서는 잘못된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라며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것도 시민에게 자행한 일이다. 이것은 시민에게 재앙이 될 수 있는 일로 꼭 진상을 밝히고 이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 10월 이달의 5·18 민주유공자 故 김열씨 선정 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는 10월 이달의 5·18 민주유공자로 고 김열씨를 선정했다고 4일 밝혔다.1958년 10월 광주에서 태어난 고 김열씨는 1950년 5월 당시 광주 동구 충장로에서 공수부대원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했다.검거된 고 김열씨는 상무대에서 수감 생활을 하다가 같은해 9월 석방됐다.이후 고 김열씨는 구타로 인한 후유증을 앓다가 2005년 8월 만 46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 관계자는 "이달의 5·18 민주유공자 고 김열씨는 제1묘역 5-58번에 잠들어 계시며 민주묘지를 방문하면 언제든지 참배를 할 수 있다"며 "열려있는 국립묘지로서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추모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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