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아닌, 시민으로" 탄핵 정국 속 빛난 김태진의 거리 정치

입력 2025.04.15. 15:07 강주비 기자
[위기에서 드러난 지역 정치인의 얼굴들]
⑤ 김태진 광주 서구의원
포고령에도 광장서 자유 발언
광주 1인시위·서울 노숙 농성
"광장 목소리 의회로 옮길 것"
김태진 광주 서구의원이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기일 지정 촉구 집회를 벌이고 있다. 김태진 광주 서구의원 제공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3일, 김태진 광주 서구의원은 주저 없이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으로 향했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이 그러했듯 김 의원을 비롯한 80여명의 시민들이 분수대 앞에 모였다. 계엄군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도 집회는 새벽 내내 이어졌다.

현장에서 김 의원은 자연스럽게 발언대에 올랐다. 사전에 준비된 연설문은 없었다. 국회의 계엄 해제가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광장의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의 입을 열게 했다.

김 의원은 "한겨울이었지만, 당시의 추위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며 "'국회가 계엄 무효를 선언하더라도 윤석열이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2016년 우리가 촛불을 들었던 그 마음으로 다시 나서야 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계엄 포고령에는 의원들의 정치 활동 중단 지시도 포함돼 있었다. 의원실을 비워야 할지 고민도 있었지만, 거리와 광장에서 정치를 배워온 그에겐 두려움을 덜어낼 만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광우병 집회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금남로와 지역 곳곳을 누비며 시민들과 함께했다.

지난달 김태진 광주 서구의원이 서구 일대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출근길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태진 광주 서구의원 제공

김 의원은 "과거의 집회 경험이 다시 나를 거리로 이끌었다"며"두려움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고 말했다.

계엄 해제 이후에도 그는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광장을 지켰다. 때로는 서울로 올라가 광화문에서 목소리를 높였고,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노숙 농성도 벌였다. 3월에는 매일 아침 서구 일대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갔다. 추위와 눈, 비는 그에게 변수가 되지 못했다.

김 의원은 "코와 귀끝이 빨개질 정도로 추웠지만, 날씨는 중요하지 않았다"며 "'윤석열 파면', '즉각 체포' 등의 문구를 담은 피켓으로 시민들의 공감과 응원의 목소리를 끌어내며 광장 밖과 안을 연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계엄 선포부터 탄핵 선고까지 약 4개월 동안 수십 차례 집회에 참여한 김 의원은 그 과정에서 새로운 세대와 마주하고, 오래된 선입견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정치에 무관심할 것이라 여겨졌던 젊은 세대는 이미 광장의 중심에 있었다. 문화와 정치가 결합된 현장에서 그 역시 '정치인'이 아닌 '동료 시민'으로 존재했다.

김태진 광주 서구의원이 서울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선고 기일 지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태진 광주 서구의원 제공

김 의원은 "그동안은 정치인이라는 틀 안에서 움직였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달랐다. 집회는 젊은 세대에겐 축제였고, 나도 시민으로서 그 자리를 즐겼다"며 "딸과 함께 갔던 NCT 콘서트에서 느꼈던 젊은 세대의 생생한 에너지가 거리로 흘러들어올 줄은 정말 몰랐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날의 긴장감도 또렷이 기억한다. 광장에서 생중계를 보며 결과를 기다리던 순간, 시민들의 얼굴엔 간절함이 어려 있었다. 통과 소식이 전해지자 금남로엔 기쁨과 안도, 울컥함이 뒤섞인 표정들이 가득했다. 이어진 행진 도중 울려 퍼진 '다시 만난 세계'는 그에게 '광주 시민'이라는 존재의 감각을 강하게 각인시켰다.

무엇보다도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집회의 '나눔' 문화였다. 과거 5월의 주먹밥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장면들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차별 없는 발언 기회, 장애인과 성소수자를 비롯한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풍경은 광장의 성숙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김 의원은 "그 순간들 속에서 시민 공동체의 진짜 얼굴을 보았다"고 했다.

김 의원의 다음 목표는 광장에서 들었던 목소리를 의회로 가져가는 것이다.

김 의원은 "광장에서는 모두가 평등했다"며 "지역 정치는 여전히 폐쇄적이지만 특정 진영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제도 안에서 실현해 나가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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