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철근이 없다

입력 2023.08.01. 17:36 한경국 기자

'어이가 없다'는 기가막힐 정도로 뜻밖의 일이 발생했을 때 내뱉는 말이다. 여기에 쓰인 어이는 맷돌 손잡이를 가리키는데, '어이가 없다'는 것은 있어야 할 맷돌 손잡이가 없어서 맷돌이 무용지물 됐다는 의미다.

요즘에는 '어이가 없다'라는 표현을 써야 할 타이밍에 다른 관용어가 대신하고 있다. 바로 '철근이 없다'다.

고물가 부담에 건설사들이 원자재를 줄였을 거라는 도시괴담처럼 전해지던 우려가 사실로 밝혀지면서 이같은 표현이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부실 시공에 이어 최근 인천 검단 자이 아파트 주차장이 무너졌다. 자이 아파트 주차장 붕괴 원인은 철근 누락이었다. 설계상 기둥 32곳에 철근이 필요했지만 이 중 15곳에 철근을 적용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다.

이같이 대형 건설사들의 신축 과정에서 부실을 범한 것으로 드러나자 정부가 움직였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LH 공공주택 긴급안전점검회의에서 전국 신축아파트 91개 단지 중 15곳이 철근 누락이 있다고 밝혔다. 수도권 8개 단지, 지방 7개 단지다. 물론 광주에도 있었다. 구체적으로 15개 단지는 광주선운2 A2를 비롯해 파주운정 A34, 충남도청이전 신도시 RH11, 수서역세권 A3(분양 포함), 수원당수 A3(분양 포함), 오산세교2 A6, 남양주별내 A25(분양 포함), 음성금석 A2, 공주월송 A4, 아산탕정 2-A14 , 양주회천 A15, 양산사송 A2(분양 포함), 양산사송 A8, 파주운정3 A23(분양 포함), 인천가정2 A1 등이다.

정부는 이같은 문제가 건설업계 전체의 시스템상 문제라고 지적하고 LH 발주단지 외에도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약 300곳의 민간 발주 아파트도 전수조사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그동안 부동산 활황을 타고 확장에 집중했던 건설사들의 주택 사업이 과연 다 안전할까.

LH가 발주한 임대분양 아파트만 이정도 문제가 드러났는데, 민간 건설사들이 시공한 곳까지 포함하면 얼마나 늘어날지 우려스럽다.

우리나라 아파트가 고평가 된 것은 신뢰의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신뢰가 무너진다면 문제는 커진다. 시장은 극도의 불안감에 빠지면서 애꿎은 신축아파트에게도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걱정스럽다.

어느새 '배부른 돼지'가 돼 버린 건설사가 이제는 안전문제에도 둔감해진 듯해 씁쓸하다.

한경국 취재1본부 차장 hkk4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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