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 근무한 곳인데, 폐광한다니 아쉽고 서운해요"

입력 2023.06.22. 16:21 김종찬 기자
[오는 30일 폐광 앞둔 화순광업소 광부 정철진씨]
1905년 광업권 등록…118년 만에 문 닫아
“지자체와 정부, 의료적인 측면 지원 필요”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 입구.

"30년 넘게 근무하며 가족을 먹여 살렸던 탄광이 폐광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탄광에서 일하셨는데, 사라진다니 너무 아쉽고 서운하기도 하네요."

이달말 화순광업소가 118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가운데 '산업 역군'으로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끈 광부들이 바뀐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면서도 폐광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 19일 오전 화순군 동면 복암리에 위치한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 동갱으로 가는 길에는 최근까지도 사용한 기계들이 즐비해 있다.

오는 30일 폐광을 앞두고 몇몇 광부들만이 마지막 작업에 한창이었다. 광업소 주차장 부지에 마련된 초창기 탄광 내부에 설치한 목조 지지대 모형을 지나 5분여간 걸어가면 보이는 동갱(동생산소) 인근에는 지난 4월 30일 마지막 채탄(석탄 채집) 작업 당시까지 사용했던 컨베이어(일정 거리를 자동으로 연속 운반하는 기계장치)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광부 정철진씨가 지난 4월 30일 채탄을 완료한 동갱 입구를 가리키고 있다.

동갱 내부로 들어가면 광부들이 식사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휴게장소가 마련돼 있었다. 최근까지도 휴게장소가 없어 발파와 채탄 작업이 이뤄지던 장소에서 휴식과 식사를 했던 광부들은 10여년 전 마련된 휴게장소를 마지막 채탄 작업 당시까지도 이용했다고 한다.

그 옆을 지나 캄캄한 내부로 3분여 걸어가면 광부들을 지하로 내려보내는 기차처럼 생긴 길고 노란 권양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과거에는 하루 수백여명씩 태우고 지하 탄광까지 오르내렸을 권양기는 마지막 채광을 끝마치고 나온 광부들을 마지막으로 1개월 넘게 멈춰 서 있다.

권양기가 멈춘 그 시점부터 발길이 뜸해진 탓인지 내부 습기로 인해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폐광을 앞둔 갱도임을 짐작케 했다.

이날 취재진에게 갱도 내부를 안내한 광부 정철진(61)씨는 나고 자란 화순에서 탄광 일을 생업으로 삼아 살아왔던 세월을 잊지 못했는지 설명하는 내내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뉴시스 자료사진

정씨는 13살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탄광일을 하는 것을 보며 자랐고, 자신도 33년째 탄광에서 일을 하며 막장(탄광의 갱도 끝에 있는 작업장) 작업까지 했다. 3년 전 화순광업소에 입사한 30대 아들은 이직 준비 중이다. 정씨는 3대가 화순광업소에서 근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정씨는 "아버지는 광부로 일하기 위해 고향인 나주에서 화순으로 이사를 왔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어머니도 탄광에서 근무를 하셨던 터라 동면 복암리에서만 60년 넘게 살고 있다"며 "1991년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만 일하고 있는데, 폐광을 앞두니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입사할 당시에는 광업소 주변이 번화가였는데 지금은 그 모습을 찾을수가 없다"면서 "1980년대만 하더라도 대기업보다 3배 많은 연봉을 받았고, 복지도 좋아 인기가 좋은 직군 중 하나였는데, 어느새 어느 누구도 일하지 않으려 해 아쉬울 뿐"이라고 토로했다.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 동갱 내부에서 광부 정철진씨가 권양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씨는 마지막으로 "전남도와 산업부 등에서 광업소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어 감사하다"면서도 "10년 넘게 막장에서 근무한 직원들 중에는 온몸이 성한 곳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지자체와 정부가 의료적인 측면에서도 지원을 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손병진 노조위원장도 "30년 넘게 근무한 화순 탄광이 폐광하는 순간을 보게 된 마지막 노조위원장이 됐다"며 "과거에는 국가 발전을 위해 힘쓴 노동자라는 칭호를 듣기도 했지만 지금은 국가의 천덕꾸러기 산업이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손 위원장은 "환경문제 등 시대 흐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대체 산업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폐광을 서두른 것 같아 아쉽다"며 "영암 삼호중공업 등 타 지자체로의 이전이 아닌 강원도처럼 탄광 역사박물관이나 폐광 대체 산업에 광업소 직원들이 이직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서도 힘써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지난 4월 30일 채탄을 완료한 동갱 내부에서 밖을 바라본 풍경.

한편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는 지난 1905년 광업권을 등록한 우리나라 1호 탄광으로, 118년만인 오는 30일 폐광을 앞두고 있다.

총면적 30.7㎢, 갱도 길이 80㎞의 화순광업소는 산업화 시기 정부의 석탄·광업육성 정책에 따라 무연탄을 생산해 왔다. 호황기를 누리던 1960년대에는 강원 삼척·영월· 태백 탄광 등과 함께 국내 4대 탄광으로 명성을 알렸다. 1989년에는 근로자 1천100명, 연간 70만5천t의 석탄을 생산하며 최대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1989년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 시행과 더불어 2010년 대에 이르러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조기 폐광의 길을 걷게 됐다. 대한석탄공사는 화순광업소를 시작으로 2024년 태백 장성탄광, 2025년 삼척 도계탄광 순으로 탄광을 조기 폐광할 방침이다.

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화순=추교윤기자 sh043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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