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발언대] 시대를 밝힌 노래꾼, 범능 정세현의 추모음악회를 보고

입력 2023.06.19. 15:04 김혜진 기자

가슴이 절로 뜨거워진다. 80년대 그 시절로 달음박질한다. 아, 그 땐 그랬었지. 학과 수업이 중요하지 않았더랬다. 독재군부 투쟁이 중요한 일과였다. 전남대 중도 앞에선 연일 시위에 앞서 집회가 열렸고 인문대 앞과 경영대 앞 비탈 언덕배기에선 미국을 몰아내고 오적을 척결하자는 마당극이 펼쳐지곤 했더랬다. 피를 대신한 빨간 페인트를 뒤집어쓰면서도 두 눈을 부릅뜨고 마당극에서 열연했던 청년 김도일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리고 나왔던 투쟁가, 온 몸으로 불렀었던 투쟁가가 다시 몸을 수직으로 관통하며 우리 가슴을 척척히 적신다.

광주 민중가요의 기린아, 범능 정세현 10주기 추모음악회는 무대와 객석을 온통 울렁이게 했다. 모두가 시린 가슴으로 민중가요를 따라 부르며 40여년을 훌쩍 뛰어넘었다. 정세현(범능)은 학생운동의 깃발이 펄럭였던 캠퍼스, 그 중심에서 투쟁가를 만들고 노랠 부르며 노래운동으로 대열을 정비케 했던 사람이다. 그 시절, 잊을 수 없는 공간에 다시 선 것처럼, 그리고 정세현이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우리는 노래를 불러제꼈다. 지난 17일 오후6시 전남대학교 컨벤션홀에서다.

시대를 밝힌 노래꾼, 정세현. 그는 교회음악 활동에 이어 문화운동단체 '일과 놀이'에서 풍물을 익히고 아시아자동차 노동자로 근무하다가 늦깎이로 전남대 국악학과에 입학한다. 그 해 '광주출전가''혁명광주'를 발표함과 동시에 노래패 '횃소리'와 노래패 '친구'를 창단해 노래운동에 본격 돌입한다. 이어 민중가요의 맥을 우리 전통음악에서 찾겠다고 인간문화재 진도 조공례선생을 찾아가 '진도 들노래' 등 민요를 사사하며 광주 '우리소리연구회'를 만든다. 그러다가 들린 뜻밖의 소식, 93년 비구승이 된 것이다. 출가한 이후에도 그는 민중가요를 부르고 또 불렀다. 그리고 비보, 세상을 홀연히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정세연 스토리는 계속되고 있는 또 다른 5월의 이야기다. 결코 빛이 바래지지 않는, 5월 광주의 문화자산임에 틀림없다. 오월 광주, 산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로한 목소리였던 정세현, 그는 가고 우리는 남았다. 그리고 군부독재 압제의 사슬을 끊으려 분투했던 지난 시절을 훑으며 가만가만 그를 떠올린다. 전 노래패 친구단원 김영학(조선대 교수)은 "자신을 찾는 이가 있으면 그곳이 어디건 천릿길을 마다않고 함께한 민중의 벗이요, 길라잡이"였다고 전한다.

고규태 시인의 '어화, 5월은 갔건만'은 구절구절마다 가슴을 에인다. "(전략) 그토록 그지없이 사랑했던 그 음악의 / 10분지 1만 자기 몸 사랑 했어도 / 쓰러지진 않았을 것을 / 그토록 살피고 보살피던 그 노래의 100분지 1만 자기 몸 보살폈어도 / 몸져 눕지 않고 쓰러지진 않았을 것을 (중략) 저 낮은 곳 약자들께 베풀던 그 정성의 1000분지 1만 자신에게 베풀었어도/ 쓰러진 몸 되 일으켜 세웠을 것을(후략)" 구절구절에서 민중과 노래에 진심이었던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그가 작곡한 민중가요는 수도 없이 많다. 언제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광주 출전가'를 비롯해 '꽃아 꽃아' '통일은 언제일까' '봄날의 코스모스' '그대 가는가' '섬진강' '꽃등 들어 님 오시면' '열목어 한 마리' '진달래' '우리 것 찾아가세' '아침노을' 등등이다. 이날 추모음악회엔 광주는 물론이고 서울, 부산, 대전, 마산 등지에서 오랜 지인과 팬들이 찾아와 함께 그를 기렸다.

그는 갔지만 그가 남긴 음악으로 우리는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런 공연은 '살아있는' 역사문화교육이자 진정한 광주문화의 힘이다. 전남대 호남학연구원이 정세현 연구를 위한 포럼과 기념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그래서 정말 반갑다. 아직도 더 밝아져야 할 세상, 그 날이 올 때까지 정세현의 '광주출전가'는 계속되리라. 김영순 광주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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