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신년 특집] AI, 문화예술 생태계를 바꾸다

입력 2026.01.04. 14:03 김만선 기자
'붓·펜을 든 AI'…예술 조력자 넘어 창작자가 되다
문화예술, 과학기술 발전과 관계 밀접
금속활자 인쇄술·카메라 '신선한 혁명'
컴퓨터, 인류의 기술력 집약된 결정체
2016년 이세돌-알파고 바둑대결 '주목'
AI예술가·옛 가수 목소리 재현 등 활발
인간 능력 대체 가능성...위기의식 고조
미술과 공연, 문학 등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쳐 AI를 활용한 창작물이 크게 늘면서 조력자에서 창작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인공지능(AI)이 우리의 일상생활은 물론 문화예술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도 누군가는 챗GPT로 아름다운 시를 짓고 또 다른 누군가는 노벨AI(NovelAI)와 미드저니(Midjourney)로 고퀄리티 이미지를 생성하며, AI를 활용해 이색적인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AI는 기존 데이터로 새 작품을 만들고, 결과물을 도출해 인간이 원하는 아이디어와 재료를 빠르게 제공하는 이점을 갖고 있다. AI 창작물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기에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작품이 쏟아질 전망이다.

'무엇을 만들고 왜 만들어야 하는가'는 그동안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묻는 질문이었다. 이제는 'AI가 불가능한 영역을 찾아낼 것인가, AI를 학습시켜 새롭게 접근하는 방식으로서의 예술가가 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되고 있다.

피카소가 입체파 화가가 된 까닭은

문화예술의 발전은 과학기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15세기에 등장한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책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학문과 예술, 과학발전의 토대가 됐다.

1839년 발명된 카메라는 '신선한 혁명'이었다. 그동안 현실 세계 속 대상의 재현에 주력했던 예술가들은 카메라가 등장함으로써 설 자리를 잃고 자신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모색해야 했다. 고흐는 직접 눈으로 바라보는 자연과 마음속 이미지를 조합해 강렬한 작품을 남겼고 피카소는 정면과 측면을 동시에 표현한 입체 효과의 극대화로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컴퓨터는 인류의 기술력이 집약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는 1940년대 처음 발명된 이후 100여 년의 역사를 거치는 동안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은 양방향성, 하이퍼텍스트, 멀티미디어 등 새로운 문화적 속성을 창출하며 가상공간(사이버스페이스)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지난 2016년 3월 치러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바둑계 최고 실력자와 인공지능 프로그램 간의 대결로 주목을 끌었다. 신안 비금도에 위치한 이세돌바둑박물관 내부.

지난 2016년 세계인의 시선이 집중된 곳은 서울에서 열린 이세돌과 알파고(AI)의 바둑 대결이었다. 인간의 직관과 창의성의 성역으로 여겨졌던 바둑 분야에 방대한 데이터 학습으로 무장한 AI가 등장해 대결을 펼침으로써 화제가 됐다. 결과는 4승1패를 거둔 알파고의 승리였다.

알파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줬지만 '창의성'만큼은 방대한 정보와 기계적인 학습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겨졌다. AI가 스스로 판단해 창작하기 어렵고, 설령 스스로 만든다고 하더라도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에 예술가의 조력자에 그칠 것이라는 낙관론이 우세하기도 했다.

하지만 AI는 빠르게 진화를 거듭하면서 이제 예술의 조력자를 넘어 창작의 주체로 전면에 나서고 있다. 단 한 줄의 프롬프트만으로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신안 비금도에 위치한 이세돌바둑박물관 입구에는 알파고와 겨뤄 승리를 거둔 이세돌의 제4국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인간을 뛰어넘는 AI의 놀라운 능력을 실제로 체감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분야에서 사람을 대체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창작 영역에서는 미술과 문학, 영상, 음악, 기획 등 장르를 넘나들고 있으며 'AI예술가'까지 등장했다.

세계 최초의 로봇 예술가는 지난 2019년 2월 영국에서 만든 '아이다(Ai-Da)'다. 영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엔지니어드 아츠(Engineered Arts)가 설계한 외형을 리즈대 공학자들이 제작했고 내부 알고리즘은 옥스퍼드대에서 개발했다. 아이다는 화가이자 조각가로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첫 개인전을 연 뒤 여러 화랑과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했고 지난 2021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아이다는 또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 알레기에리 사망 700주년 기념행사에서 직접 쓴 시를 낭송해 관심을 모았다.

시 짓고 노래 부르고…장르를 넘나들다

AI는 공연 장르에서도 작품 제작과 창작, 운영 등에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음악의 경우 AI가 실제 가수의 목소리나 음색을 재현하고 곡을 작곡하는 등 산업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 AI 음성합성 기술로 고(故) 터틀맨(거북이), 김현식 등 이미 세상을 떠난 가수의 목소리와 몸짓 등을 재현해 무대에 복귀시키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부산지역 대학생들이 선보인 '한여름 밤의 꿈'은 AI 기술을 접목한 융합 뮤지컬이었다. 챗지피티(GPT-5), 퍼플렉시티 프로 등 생성형 AI를 활용해 대본과 가사 초안, 장면 구성, 대사, 넘버 구조 등을 설계했고 음악은 AI 작곡 툴인 '수노 송메이커'를 통해 제작해 선보였다.

영화는 스토리구상에서부터 이미지 생성, 후반 보정,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제작의 전 과정에서 가장 폭넓게 활용되는 장르다.

권한슬 감독은 모든 장면과 음성을 보정 없는 AI툴 만으로 단편 'One More Pumpkin'을 단 5일 만에 완성했다. 이 영화는 2024년 두바이에서 열린 제1회 국제AI영화제에서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광주에서 AI 관련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하는 곳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다.

ACC는 지난해 개관 10주년을 맞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미래 지향적인 모습을 AI를 활용해 그림, 사진, 영상 형태로 제작하는 '인공지능 콘텐츠 공모전'을 개최했다. 2024년에는 인공지능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예술적 상상력을 무대화한 '대리된 존엄'과 '거의 인간'을 공연했다. ACC 크리에이터스 레지던시는 2024년 '인공지능·인간·다중우주'를 주제로 선정된 8팀의 실험적인 프로젝트의 결과물과 국내·외 전문가들과의 교류의 장을 오픈스튜디오에서 선보였다.

세계 최초의 로봇예술가인 '아이다(Ai-Da)'는 화가이자 조각가로 활동하며 잇따라 전시회를 개최해 주목을 끌고 있다. 에이다 홈페이지 캡처.


AI시대, 미래 예술가의 과제는

이제 AI는 문화예술 전반에서 외면할 수 없는 대세로 자리매김한데다 활용 영역이 지속적으로 넓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함께 작업하는 동료이자 공동 창작자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과제는 남아있다.

가장 쟁점이 되는 문제는 저작권이다. '데이터의 통계적 조합 결과'라는 주장과 '인간의 의도를 반영한 창작'이라는 의견이 대립하면서 명확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저작권의 기본 전제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에 있다. 이 같은 인식은 세계적으로도 비슷하기에 AI가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물에는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 추세다.

문화예술 분야의 새로운 인재 발굴을 위해 진행되는 각종 신인 공모전에서는 AI의 활용 범위를 어디까지 둘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나뉘어져 있다. 공모사업을 주관하는 현장에서도 지원신청서에 글쓰기 보조 AI나 이미지 생성 AI 활용하는 사례가 부쩍 증가하면서 이를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한 기준이 없어 속을 태우고 있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의 창의성과 순수 인간 창작물을 어떻게 구분하고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심사과정의 공정성과 일관성을 갖기 힘들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물 중 인간이 편집하고 보완한 부분에 한해서는 편집 저작물로서 권리가 인정될 수 있다고 하지만 '인간의 창작적 개입'의 기준이나 판단 근거가 모호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AI의 활용 비중이 높아질수록 그에 따라 뒤따를 수밖에 없는 일자리 감소와 표절·데이터 윤리, 지역간-계층간 격차 등의 쟁점도 해결해야 할 난제다.

전문가들은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함께 협업하는 공동 창작자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또 AI시대에도 예술가의 본질적 가치는 변하지 않으며 기술과 인문학적 성찰을 결합한 창의적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AI는 삶의 경험이나 감정, 도덕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인간만의 감정, 공감, 사회적 맥락을 작품에 녹여내는 것이 미래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최근 책 'AI와 문화예술'을 펴낸 김희수 광주과학기술원 AI융합학과 교수는 "미술, 문학, 공연, 건축, 음식, 패션 등 다양한 장르에서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동반자이자 창작자로 진화하고 있다"며 "기술과 감성이 교차하는 시대에 예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함께 창조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만선기자 geosigi22@mdilbo.com

최소원 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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