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문화원 가족 방문객으로 인산인해
어린이체험관 전시 일찌감치 예약 마감
오승윤·봄의 선언 전시도 발길 이어져
도서관·라운지는 독서 열기로 '후끈'
지상 1번 출입구 개방으로 접근성 높여

"2026년 첫 주말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어 ACC를 방문했어요. 추운 날씨지만 전당 안은 새해 기운으로 가득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2026년 병오년(丙午年)의 첫 주말인 3일 오후,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은 새해의 활기찬 기운을 만끽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영하권의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였지만 전당 내부의 열기는 매서운 겨울바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문화적 소양을 쌓으며 희망찬 새해의 첫 단추를 끼웠다.

가장 활기가 넘친 곳은 최근 재개관을 마친 어린이문화원이었다. 어린이체험관 입구의 발권 창구에는 일찌감치 사전 예약 마감을 알리는 안내문이 걸려 뜨거운 인기를 실감케 했다.
특히 어린이체험관 자연과 생활 영역의 신규 전시인 '우리 모두의 집, 아시아'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전시장 곳곳에서는 아이들이 아시아 각국의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형상화한 구조물 사이를 뛰어다니며 지르는 즐거운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단순한 관람을 넘어 오감을 활용한 체험 위주의 전시는 교육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다.

전시의 마지막 코스인 '여행 일기' 작성 구역에서 고사리 손으로 다짐을 적어 내려가던 한 어린이는 "지구를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 쓰레기를 잘 버리겠다"며 야무진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어린이문화원 내에 위치한 '어린이도서관 와글와글' 역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계단식 서가에 나란히 앉아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부모들의 모습은 평화로운 풍경을 연출했다.

이날 딸 송유하 양(5)과 함께 방문한 김수연 씨(35·여)는 "새해 첫 주말을 아이에게 의미 있는 시간으로 선물하고 싶어 재개관 소식을 듣고 아이와 함께 방문했다"며 "지구 환경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놀이로 풀어내 만족도가 높다.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새해 시작이 무척 뿌듯하다"고 환하게 웃었다.
문화창조원과 문화정보원 등 전시·도서 공간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오는 18일 종료를 앞둔 '오승윤: 풍수의 색, 생명의 선율' 전시는 막바지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오 화백 특유의 오방색과 생동감 넘치는 화법에 매료된 관람객들은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현장에서 만난 대학생 이준혁 씨(24)는 "오승윤 화백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생명력이 마치 새해의 시작을 축복해 주는 것 같다"며 "전통적인 한국의 색감이 현대적인 공간과 어우러져 깊은 울림을 준다"는 소감을 전했다.
복합전시 1관에서 열리고 있는 ACC 개관 10주년 기념전 '봄의 선언'은 젊은 세대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민주주의와 생태적 공존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감각적인 미디어아트로 풀어낸 이번 전시에서 연인들은 대형 스크린에 반사된 자신들의 실루엣을 촬영하며 추억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독서 열기도 뜨거웠다. 문화정보원 내 도서관은 한강 작가의 작품을 포함한 베스트셀러를 탐독하는 시민들로 고요하면서도 역동적인 에너지가 흘렀다. 라운지에서 지인들과 신년 계획을 공유하던 직장인 최모 씨(42)는 "ACC는 단순히 전시를 보는 곳을 넘어 시민들이 모여 사유하고 대화하는 '거실' 같은 곳"이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한편 최근 옛 전남도청 복원 공사 완료에 따라 ACC 지상 1번 출입구가 2년 만에 시민들에게 완전히 개방되면서 ACC로의 접근성이 크게 개선됐다. 과거 공사 가림막으로 막혀 돌아가야 했던 불편함이 사라지자 시민들은 옛 전남도청에서 곧바로 ACC로 진입하며 편리함을 만끽하기도 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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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봉 들던 작가들, 민주주의 위한 ‘생카’ 열다
강수지·이하영 작가의 ‘민주주의 덕질하기’
지난 2024년 겨울, 어둠 속에서 반짝이던 각양각색의 응원봉들은 2030 여성들이 광장으로 들고 나온 새로운 ‘저항의 도구’였다. ‘덕질’의 아이콘이었던 콘서트용 응원봉의 등장은 ‘비폭력’과 ‘연대’를 상징하는 강력한 메신저로서 빠르게 자리매김됐다.누군가를 뜨겁게 좋아하는 마음, 즉 ‘덕질’의 에너지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키는 연대의 동력으로 변모했는지를 주목한 전시가 광주에서 열린다.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전당장 김상욱)이 내달 29일까지 복합전시5관에서 선보이는 ‘ACC NEXT 아시아 신진 작가전’은 아시아 예술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작가들의 날카로운 시선과 실험적인 감각을 한데 모았다.강수지·이하영 작가의 ‘민주주의 덕질하기’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은 광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강수지·이하영 작가의 ‘민주주의 덕질하기’다. 이들은 12·3 불법계엄 당시 광장에서 목격한 독특한 풍경에 주목해 흔히 ‘팬덤 문화’로 치부되던 덕질의 행위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사회 참여의 에너지로 전환되었는지를 역설적으로 풀어낸다.작가는 전시장 내부에 가상의 아이돌 그룹 ‘키세스’의 멤버 ‘민주’와 ‘주의’를 위한 ‘생일 카페(생카)’를 차렸다.민주주의를 주제로 꾸려진 이 ‘생카’ 현장에는 팬덤 활동에서 빠질 수 없는 창작 소설(팬픽)과 컵홀더, 포카홀더 등 다양한 굿즈들이 관객을 맞이한다. 특히 아이돌 그룹명인 ‘키세스’는 실제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집회를 열었던 이른바 ‘키세스 시위대’의 명칭을 가져와 의미를 더했다.이하영 작가는 “광장에 응원봉을 들고 나온 또래 여성들을 보며, 이들이 어떻게 연대의 감각을 익혔을까 고민했다”며 “덕질은 흔히 평가절하 당하는 행위지만, 사실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기 위한 일념으로 광장으로 향했던 응원봉 세대의 마음이 이 가상의 공간을 통해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으로 치환되는 셈이다.강수지·이하영 작가의 ‘독버섯’ 전시 일부이들의 또 다른 작품 ‘독버섯’은 저항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작가들은 제주 4·3, 여순 10·19, 5·18 민주화운동의 기억을 사회 위협 요소인 ‘독버섯’으로 규정하며 침묵을 강요해온 지배 이데올로기에 주목했다. 오히려 독버섯을 망각에 맞서는 저항의 도구로 재정의하고, 이를 배양하는 공간으로 패스트푸드점을 설정했다. 과거 민주화 운동가들의 책장에 꽂혀 있던 ‘불온 서적’을 매개로 버섯을 키워내고, 현대 사회의 가장 빠른 확산 매체인 ‘배달’ 시스템을 통해 저항의 메시지를 사회 곳곳으로 유통하겠다는 의도다.이주연 작가는 다큐멘터리적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소외된 노동과 신체의 흔적을 추적한다. 비디오 작품 ‘언더 그라운드’는 실제 터널 현장에서 지질 기사로 일하는 작가의 아버지를 통해 난청이라는 감각의 상실을 탐구한다. 관람객은 오디오 믹싱을 통해 보청기를 꼈을 때의 불편함이나 난청인의 청각 환경을 직접 경험하며 보이지 않는 노동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또한 ‘헤비 웨더’에서는 한강 변의 낚시꾼들과 사라진 반도체 공장 여공들의 흔적을 공포 영화적 문법으로 엮어내며 기록되지 못한 존재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한다.중국의 유얀 왕 작가 ‘웨더’ 전시 전경중국 출신의 유얀 왕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디지털 환경을 날씨에 비유한다. SNS에서 무작위로 수집한 이미지들을 수직으로 분절하고 재조립한 영상 작품 ‘웨더’는 더 이상 우리가 정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우리의 감각을 지배하는 환경 속에 살고 있음을 직감하게 한다. 몰입감을 주는 주황빛 공간은 데이터가 개인의 감정과 인식에 미치는 거대한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이시마 작가의 ‘dir’ 스틸컷. ACC 제공이시마 작가는 전통 서사와 무속적 상상력을 빌려 퀴어 담론과 소외된 개인의 삶을 이야기한다. 작품 중 한강 위에 떠 있는 부표에 올라타려 애쓰는 퍼포먼스 영상 ‘dir’은 사회적 ‘정상성’이라는 기준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소수자들의 처절한 생존 노력을 상징한다. 특히 실제 정신과 처방을 받은 약봉지들을 작품의 소재로 사용해 생존의 무게를 사실적으로 전달한다.대만의 치우 즈 옌 작가 ‘더 레일카’ 이전 전시 설치 전경. ACC 제공마지막으로 대만의 치우 즈 옌은 국가적 트라우마인 2·28 사건의 기억을 다룬다. 작품 ‘만델라 메모리’는 집단적 기억의 오류를 뜻하는 ‘만델라 효과’에서 착안해 공식 기록이 부재한 역사적 공백을 개인의 증언과 허구적 서사로 재구성한다. 관람객이 거울로 된 건물을 통해 좌우가 반전된 자막을 읽어야 하는 구조는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개인이 얼마나 능동적으로 개입해야 하는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김상욱 ACC 전당장은 “이번 전시는 새로운 세대의 미학적 실천이 아시아를 넘어 어떤 궤적을 그릴지 가늠하는 출발점”이라며 “신진 작가들의 실험과 교류를 통해 아시아 예술의 미래를 함께 상상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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