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 격이 지역에 ‘벽’으로
지역과 독창적 콘텐츠 개발해야
공간지원·작가지원프로그램 등
지역과 연계사업 점차 늘려나가
ACC 미래상, 세계적 작가 발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는 지난 10년간 활발한 콘텐츠 창·제작과 아시아연구, 국제교류 활동을 펼치며 문화예술플랫폼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했다. 하지만 ACC가 시민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랜드마크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역 구성원과 소통의 창을 넓히고 광주만의 정체성을 살린 콘텐츠를 창작하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 지역 연계·아시아 문화 공감 필요
새로운 복합문화예술기관 ACC의 개관은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에서 '문화 수도'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하지만 아시아 문화 연구, 콘텐츠 창·제작이라는 본래 역할에 충실히 하고 있음에도 지역 문화계와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지 못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ACC가 훌륭한 인프라를 지니고 있지만 정작 지역 예술인들에게는 충분히 개방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국가기관이라는 '격'이 지역 예술인의 접근을 막는 '벽'으로 작용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에서의 역할을 두고도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현재 조성사업은 3.0시대를 앞두고 있다. 통상 1.0시대는 ACC 건립 시기, 2.0시대는 ACC 활성화와 '5대문화권' 인프라 조성 시기로 여겨진다. 3.0시대에는 광주만의 독창적인 콘텐츠를 바탕으로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ACC입장에서는 그동안 몰두해 온 '아시아 문화' 뿐만아니라 지역 문화 생태계와 소통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
다만 ACC 역시 5대문화권 중 한 곳이기에 조성사업 전반을 홀로 이끄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내부적으로는 광주시나 다른 문화기관의 영역 침범이나, 국가기관과 지역 거점문화기관 사이의 경계에 대한 고민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회화작가는 "국가기관으로서 본연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렇다면 굳이 ACC가 광주에 있을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단단한 지역적 기반이 동반돼야 국제적인 문화예술기관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역과의 소통 강화가 첫 번째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 세계적 기관 위해 지역 기반 탄탄히
ACC는 지역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지역과 연계한 사업들을 점차 늘려나가고 있다.
특히 지역 청년 인재를 위한 전시 공간 지원 사업이 눈에 띈다. 지난해 개최한 '오색윤슬'에 이어 올해는 10월 16일부터 대나무 정원과 문화창조원 로비에서 지역대학 연계 특별전 '윤슬울림'을 진행 중이다. 앞서 6월 17일부터 7월 13일까지는 광주예술고등학교 한국화 전공 학생들과 협력 전시 '잇-다'를 진행했다.
올해 새롭게 기획한 지역 작가 지원 프로그램으로 '2026 ACC 뉴스트(NEWST)' 참여 작가도 모집 중이다. 광주전남지역에서 3년이상 거주한 작가와 팀을 대상으로 모집 중이며 이들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복합전시7관을 문화창조원에 새로 개관한다. 선정 작가들은 창작비와 홍보 등이 지원되며 내년 3월부터 8월까지 복합전시7관에서 전시를 연다.

5·18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예술로 승화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할 부문이다. ACC는 그동안 5·18민주화운동의 치열했던 10일간을 배경으로 한 관객 참여형 공연 '나는 광주에 없었다', 오브제와 퍼포머의 움직임만으로 오월 광주의 본질을 조명한 오브제 연극 '어디로나 흐르는 광주'를 통해 큰 호응을 얻었다.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은 전국 순회 공연에 이어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일본 베세토 연극제에서도 선보여 민주·인권·평화로 대표되는 5·18의 가치를 세계에 전했다.

국제적인 예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성장 가능성이 있는 작가들을 발굴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난해에는 'ACC 미래상'의 첫 수상자로 김아영 작가를 선정해 올해 2월까지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 전시를 열었다. 올해에는 사운드·영상·설치미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김영은 작가를 두 번째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들이 세계적인 예술가로 명성을 알리는 만큼 'ACC 미래상'과 ACC의 위상도 올라가는 셈이다. ACC 레지던시나 작가발굴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한 작가들이 세계 무대를 누비고 있다. 내년부터는 레지던시에 광주·전남지역 작가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한 문화기획자는 "ACC의 지역과 소통 시도가 늦은 감이 있다. 향후 10년간 꾸준히 늘려나가 아시아 문화 콘텐츠 생산이라는 본연의 역할과 지역 거점 문화기관의 역할 두가지를 모두 해내야 한다 "며 "개관 10주년이 됐지만 아직은 문이 덜 열렸다고 본다. 지역과 연계를 통해 문화 생태계 동반 성장을 이끌고, 진정한 아시아 문화 세계화 플랫폼으로 향하기 위한 문을 활짝 열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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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정체성 자체···작품 대하면 아버지 말 거는 듯"
오수경 화가가 오승윤 화백의 작품 '바람과 물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딸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청춘처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새벽이면 화실로 향했고, 해 질 녘이면 다시 캔버스 앞에 앉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업에 몰두하던 뒷모습이 선연하다. '오방풍수'의 화가 오승윤은 노쇠한 나이에도 청년 작가처럼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무등산 자락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고, 무등산 원효사는 정신적 안식처였다. 딸에게는 할아버지였던 오지호 화백과 함께 무등산 토끼등과 꾀재를 올랐던 기억을 들려주던 아버지이기도 했다.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복합전시6관에서 열리고 있는 '오승윤: 풍수의 색, 생명의 선율'은 한국 구상 회화를 대표하는 오승윤 화백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동시에 한 예술가의 삶과 작업이 어떻게 한 가족의 기억과 겹쳐지는지를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오는 18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와 관련해 오승윤 화백의 장녀이자 서양화가인 오수경 화가를 만났다.오승윤, 물고기(魚) Fish◆작고 20주기 앞두고 국립기관 첫 회고전이번 전시는 국립기관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오승윤 화백의 회고전이다. 작고 20주기를 앞둔 시점에서 마련된 이번 전시는 생전에 그가 평생 천착해 온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오승윤 예술 세계의 궤적을 되짚는다. 전시장에는 회화 30점과 판화 7점 등 총 37점의 작품이 소개돼 구상에서 상징, 민속적 조형과 오방색으로 확장돼 온 그의 작업 여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1939년 개성에서 태어나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오승윤 화백은 한국 미술 최초의 인상주의 화가 오지호 화백의 둘째 아들로, 평생을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주제로 한국적 정서와 색채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그의 대표작 '풍수' 연작은 오방색을 기반으로 한 독창적 색채 구성과 상징적 화면 구성으로 한국 회화의 정신성과 조형미를 세계적 언어로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오승윤, 2004 바람과 물의 역사 The History of Wind and Water 전남도립미술관소장이 전시를 누구보다 복합적인 마음으로 마주한 이는 딸 오수경 화가다. 서양화가로 활동 중인 그는 이번 전시를 단순한 회고가 아닌 아버지가 남긴 사유와 작업의 결과물을 다시 마주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오수경 화가는 작고 작가의 회고전이 지닌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도 광주 원로 작가들과 함께 아버지의 20주기를 기념하는 전시를 준비해오던 중,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전시 제안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준비 기간은 촉박했지만 전당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오랜 시간 마음속에만 있던 회고전이 현실이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말한다.많은 이들에게 오승윤 화백은 '오방색과 풍수의 화가'로 기억된다. 그러나 딸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거창한 수식어 이전에 매일같이 그림 앞에 앉아 있던 한 예술가다.고(故) 오승윤(1939~2006) 화백"아버지는 오방풍수라는 화두로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밤낮없이 작업하셨어요. 새벽에 일어나 화실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오후에는 방에서 소품 작업을 이어가셨죠. 책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국적 오방풍수를 공부하고, 지리산과 전남 지역 사찰을 다니며 스케치를 하셨던 기억이 선명해요. 집과 화실이 하나였던 지산동 초가에서 오랜 시간 화업에 몰두하셨어요."전시의 시작을 여는 초기작 '대한(大寒)'부터, 1996년 모나코 국제현대미술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회상'은 오승윤 화백의 예술 세계가 본격적으로 전환되는 분기점을 보여준다. '회상'은 민속화와 점묘 풍경으로 알려졌던 작가가 오방풍수라는 자신만의 철학적 주제로 나아가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당시 국내 화단에서는 다소 낯설게 받아들여졌던 이 작품이 오히려 유럽 화단에서 먼저 주목받았다는 점은 그의 작업이 지녔던 보편성과 독창성을 동시에 보여준다.◆무등산에서 길어 올린 풍수의 세계프랑스 유학 이후 오승윤 화백은 다시 '한국적인 것'을 찾기 위해 전국을 답사했다. 화순 동복의 고향 풍경에서 시작해 지리산과 신안, 전남의 사찰은 물론 백두산과 금강산, 독도에 이르기까지 그의 발길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현장에서 느낀 감흥을 스케치와 일기에 기록하며 서양화라는 형식 안에 한국적 정신과 풍경을 담아내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합리성과 비례를 중시하는 서양화 교육을 받았기에 오히려 더 자유로운 작가로서의 길을 모색해야 했던 시간이었다.오승윤, 1973, 대한 大寒 Intense Cold, 국립현대미술관소장품전시의 중심에는 자연과 생명이 하나의 질서로 어우러지는 세계관이 담겨있는 '풍수 무등산' 연작과 대작 '바람과 물의 역사'가 있다."아버지가 사셨고 지금도 어머니가 지키고 계신 지산동 초가도 무등산 자락이라는 것을 너무나 자랑스러이 여기셨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등산 자락의 동네라고 하시면서…. 또한 무등산의 원효사는 아버지의 정신적 안식처라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 왜냐하면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원효사에서 작품의 영감을 꾸준히 받으신 곳이라며 그곳의 약수를 아주 소중히 여기셨거든요. 그런 철학과 경험, 추억이 담긴 무등산을 주제로 대작을 완성하셨죠."'바람과 물의 역사'는 이러한 사유가 집약된 작품이다. 600호에 이르는 대형 캔버스 안에는 인간과 동식물, 대지와 하늘이 하나의 질서 속에서 얽혀 있다. 딸 오수경 화가는 이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경외심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바람과 물의 역사'를 보면 경외심이 들어요. 시스티나 성당에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가 생각나요. 저도 화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이렇게 어마어마한 작업을 나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인간의 존엄, 자연과 인간의 조화, 한국 정신의 세계, 순수한 인간의 모습, 시공을 알 수 없는 이상적인 풍경을 600호라는 거대한 작품 안에 형이상학적으로 표현하셨어요. 특히 작품 속 가운데 대례복을 입은 여인의 모습에서 작가이신 아버지의 얼굴이 보이며 제게 다가오는 것 같아 눈물이 나기도 해요."이번 전시에서는 처음 공개되는 흑백 판화 연작도 눈길을 끈다. 색채의 화가로 알려진 오승윤 화백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그가 색만큼이나 '선'을 중시했던 작가였음을 증명한다. 유화에서는 볼 수 없는 거친 선묘와 형태는 오히려 그의 관록과 예술적 긴장을 또렷하게 드러낸다.오승윤, 1995 회상 回想 Remembrance,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아버지를 넘어, 그러나 떠나지 않고오승윤 화백에게 광주는 단순한 활동 무대가 아닌 정체성 그 자체였다. 충장 김덕령 장군 영정과 고경명 장군 전쟁 기록화, 전봉준 의병 궐기 장면까지 그가 남긴 역사화들은 광주와 전남에 대한 깊은 애정의 표현이었다. 오방풍수를 정립한 이후에도 그의 예술은 결국 무등산으로 돌아와 마침표를 찍었다.오승윤, 1996 풍수 무등산 風水 無等山 Wind and Water at Mt. Mudeung 197×291cm oil on canvas'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것이 곧 선(禪)'이라는 그의 기록처럼, 오승윤 화백의 삶과 예술은 분리되지 않았다. 문명의 편리함을 멀리한 초가에서의 생활,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이어간 화업은 그 철학의 실천이었다. 이번 전시는 그가 남긴 작품을 넘어 한국적인 것에 대한 집요한 질문과 한 예술가의 삶의 태도를 함께 들여다보게 한다.아버지의 예술 세계는 딸의 작업에도 깊게 스며 있다. 오수경 화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직접 데생과 유화 기법을 배웠다. 한동안은 그의 부재를 견디기 위해 아버지가 가르쳐 준 점묘 기법을 붙잡고 작업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복제하지 않으면서도 계승하는 길을 택했다. 현재 진행 중인 '필그림' 시리즈는 오방색의 세계화를 꿈꾸는 작업으로, 아버지의 철학을 토대로 자신만의 예술 언어를 모색하는 과정이다.오승윤, 1999 선녀도 仙女圖 Nymphs"혹자는 아버지의 그림을 베끼라고도 하고, 혹자는 아버지와 비교되지 않으려면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해요. 하지만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린다면 그것은 아버지를 계승하고 그의 정신세계를 지속하는 것이 아니게 될 거예요. 그래서 저의 과업은 아버지를 복제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계승해 나가는 것입니다. '필그림' 시리즈를 통해 화가로서의 해답을 조금이나마 찾은 것 같아요."끝으로 오수경 화가는 예술가가 아닌 '아버지' 오승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남겼다."아버지가 더 우리 곁에 계셨다면 어떻게 예술가로서 작품 세계를 키워나가셨을지, 또 어떤 기억을 함께 쌓았을지 더욱 상상해보고 그리워하는 요즘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비망록에 써두고 가신 많은 이야기들이 비로소 조금씩 실현되고 또한 작품의 세계가 널리 펼쳐져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광주에 대한 사랑, 또 민족에 대한 사랑을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끼고 함께 사랑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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