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창·제작 콘텐츠 80% 달해
아시아 문화 연구·교류 뒷받침
누적 방문객 2천200만명 돌파
조직 이원화·도청 복원 진통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이 오는 25일 개관 10주년을 맞이한다. '세계를 향한 아시아 문화의 창'을 기치로 문을 연 ACC는 지난 10월까지 누적 방문객 수 2천200만명을 달성하며 광주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복합문화예술기관으로 성장했다.

◆콘텐츠 생산·문화 연구 한곳에서
5·18 민주화운동의 인권과 평화의 의미를 예술적으로 승화한다는 배경 속에 2015년 11월 개관한 ACC의 핵심 역할은 다양한 콘텐츠 창·제작, 아시아 문화 연구, 국제교류에 있다. ACC는 문화창조원, 문화정보원, 예술극장, 어린이문화원, 민주평화교류원 등 5개 원에서 전시, 공연, 교육, 축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호응을 얻었다.
10년간 ACC의 활동 중 눈에 띄는 성과는 단연 콘텐츠 창·제작이다. 이 기간 동안 ACC가 제공한 총 2천162건 중 창·제작 콘텐츠 비중은 80%(1천739건)에 달한다.

이같은 콘텐츠 생산을 뒷받침하기 위해 문화창조원에서는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융복합 연구개발 실험실(Lab) 등도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작가들은 연구와 실험을 거쳐 자신의 창의력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인공지능(AI), 확장현실(XR) 등을 활용한 융·복합콘텐츠 축제 'ACT 페스티벌', 국악과 미디어 기술을 결합한 '드라곤 킹', '두 개의 눈', '시리렁 시리렁' 등 판소리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아시아 문화 연구와 각 국가와의 문화 교류도 콘텐츠 생산에 큰 힘이 됐다. ACC는 아시아문화예술 커뮤니티의 구심점이자 아시아에서 세계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의 수행을 위해 전 세계 유수의 문화예술 기관과 협력사업을 추진했다.
일본 야마구치 정보예술센터와 함께 준비한 '미래운동회'는 미디어아트와 스포츠 기술을 결합해 참여형 전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였다.
문화정보원에서는 여러 협력사업을 통해 아시아 각국의 공예품과 구술 아카이브를 수집·보존하고 있으며 지난해 '동남아시아실'을 개관해 상시 전시 중이고 이달 말에는 '중앙아시아' 전시실을 새로 개관한다.

◆누구나 쉽게 찾는 랜드마크로
개관 이후부터 지난 10월까지 ACC의 누적 방문객 수는 2천200만 여 명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최초로 한 해 방문객 수가 320만명을 넘어섰는데 올해는 이미 1월부터 10월까지 306만명을 기록해 지난해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콘텐츠만큼 방문객을 불러 모으는 요소는 ACC만이 가진 독창적인 건축 구조다. 한국적인 전통과 현대적 미를 갖춘 이색적인 건물로 '코리아 유니크 베뉴', '한국관광 100선'에 3회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지하에 각종 공연과 전시 공간,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면 지상에는 시민들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하늘마당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시민들의 피크닉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인근의 동명동에도 개성 있는 카페와 식당들이 들어서 ACC와 연계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예술과 기술을 결합해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 체험을 제공하는 어린이문화원은 아이를 둔 가족들의 주말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고, 장애인 접근성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전시, 교육프로그램, 수어해설 통역은 ACC를 '누구나 쉽게 다가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 부침 딛고 다음 10년으로
ACC가 발전하기까지 부침도 있었다. 개관 당시 별도의 법인으로 '아시아문화원(이하 ACI)'이 함께 설립됐으나 ACC를 운영하는 문체부와 역할이 비슷하게 규정돼 업무 분장에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또 박근혜 정부에 의해 개정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하 아특법)'에서는 ACI가 ACC를 '부분 위탁' 후 '전부 위탁'하는 것으로 규정돼 ACC의 국가기관 지위 상실, 재정 확보 등의 위기도 현실화됐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2021년 아특법이 개정되고 ACC와 ACI가 일원화됐으며, 이후 콘텐츠 유통과 수익 사업을 전담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ACC 재단)이 별도로 설립됐다.
ACC의 5개원 중 하나인 민주평화교류원(옛 전남도청)도 복원 문제로 진통을 겪는 중이다. ACC 건설 과정에서 원형 보존에 대한 문제가 제기돼 개관한 지 3년이 지난 2018년부터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을 통해 복원공사에 들어갔다. 현재도 5·18민주광장과 ACC사이는 거대한 공사현장이 가로막고 있다.
복원이 완료된 이후로도 문제는 남는다. 민주평화교류원의 운영을 맡을 주체에 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해 현재까지 전담기관이 정해지지 못했다. ACC, 문체부의 별도 기관, 행정안전부 등으로 의견이 갈린 상태다. 복원추진단의 운영 기간도 오는 12월 31일에서 1년 더 연장됐다.
하지만 내년 1월 공사를 마무리하고 5월 정식 개관하게 되면 ACC는 다시 5개 원을 모두 구성해 완전체로 운영된다. 또 5·18민주광장에서 ACC로의 접근성이 개선돼 구도심 가운데라는 지리적 이점이 더욱 부각된다. ACC의 다음 10년이 기대되는 이유다.
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
"광주는 정체성 자체···작품 대하면 아버지 말 거는 듯"
오수경 화가가 오승윤 화백의 작품 '바람과 물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딸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청춘처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새벽이면 화실로 향했고, 해 질 녘이면 다시 캔버스 앞에 앉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업에 몰두하던 뒷모습이 선연하다. '오방풍수'의 화가 오승윤은 노쇠한 나이에도 청년 작가처럼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무등산 자락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고, 무등산 원효사는 정신적 안식처였다. 딸에게는 할아버지였던 오지호 화백과 함께 무등산 토끼등과 꾀재를 올랐던 기억을 들려주던 아버지이기도 했다.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복합전시6관에서 열리고 있는 '오승윤: 풍수의 색, 생명의 선율'은 한국 구상 회화를 대표하는 오승윤 화백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동시에 한 예술가의 삶과 작업이 어떻게 한 가족의 기억과 겹쳐지는지를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오는 18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와 관련해 오승윤 화백의 장녀이자 서양화가인 오수경 화가를 만났다.오승윤, 물고기(魚) Fish◆작고 20주기 앞두고 국립기관 첫 회고전이번 전시는 국립기관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오승윤 화백의 회고전이다. 작고 20주기를 앞둔 시점에서 마련된 이번 전시는 생전에 그가 평생 천착해 온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오승윤 예술 세계의 궤적을 되짚는다. 전시장에는 회화 30점과 판화 7점 등 총 37점의 작품이 소개돼 구상에서 상징, 민속적 조형과 오방색으로 확장돼 온 그의 작업 여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1939년 개성에서 태어나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오승윤 화백은 한국 미술 최초의 인상주의 화가 오지호 화백의 둘째 아들로, 평생을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주제로 한국적 정서와 색채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그의 대표작 '풍수' 연작은 오방색을 기반으로 한 독창적 색채 구성과 상징적 화면 구성으로 한국 회화의 정신성과 조형미를 세계적 언어로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오승윤, 2004 바람과 물의 역사 The History of Wind and Water 전남도립미술관소장이 전시를 누구보다 복합적인 마음으로 마주한 이는 딸 오수경 화가다. 서양화가로 활동 중인 그는 이번 전시를 단순한 회고가 아닌 아버지가 남긴 사유와 작업의 결과물을 다시 마주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오수경 화가는 작고 작가의 회고전이 지닌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도 광주 원로 작가들과 함께 아버지의 20주기를 기념하는 전시를 준비해오던 중,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전시 제안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준비 기간은 촉박했지만 전당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오랜 시간 마음속에만 있던 회고전이 현실이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말한다.많은 이들에게 오승윤 화백은 '오방색과 풍수의 화가'로 기억된다. 그러나 딸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거창한 수식어 이전에 매일같이 그림 앞에 앉아 있던 한 예술가다.고(故) 오승윤(1939~2006) 화백"아버지는 오방풍수라는 화두로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밤낮없이 작업하셨어요. 새벽에 일어나 화실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오후에는 방에서 소품 작업을 이어가셨죠. 책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국적 오방풍수를 공부하고, 지리산과 전남 지역 사찰을 다니며 스케치를 하셨던 기억이 선명해요. 집과 화실이 하나였던 지산동 초가에서 오랜 시간 화업에 몰두하셨어요."전시의 시작을 여는 초기작 '대한(大寒)'부터, 1996년 모나코 국제현대미술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회상'은 오승윤 화백의 예술 세계가 본격적으로 전환되는 분기점을 보여준다. '회상'은 민속화와 점묘 풍경으로 알려졌던 작가가 오방풍수라는 자신만의 철학적 주제로 나아가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당시 국내 화단에서는 다소 낯설게 받아들여졌던 이 작품이 오히려 유럽 화단에서 먼저 주목받았다는 점은 그의 작업이 지녔던 보편성과 독창성을 동시에 보여준다.◆무등산에서 길어 올린 풍수의 세계프랑스 유학 이후 오승윤 화백은 다시 '한국적인 것'을 찾기 위해 전국을 답사했다. 화순 동복의 고향 풍경에서 시작해 지리산과 신안, 전남의 사찰은 물론 백두산과 금강산, 독도에 이르기까지 그의 발길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현장에서 느낀 감흥을 스케치와 일기에 기록하며 서양화라는 형식 안에 한국적 정신과 풍경을 담아내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합리성과 비례를 중시하는 서양화 교육을 받았기에 오히려 더 자유로운 작가로서의 길을 모색해야 했던 시간이었다.오승윤, 1973, 대한 大寒 Intense Cold, 국립현대미술관소장품전시의 중심에는 자연과 생명이 하나의 질서로 어우러지는 세계관이 담겨있는 '풍수 무등산' 연작과 대작 '바람과 물의 역사'가 있다."아버지가 사셨고 지금도 어머니가 지키고 계신 지산동 초가도 무등산 자락이라는 것을 너무나 자랑스러이 여기셨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등산 자락의 동네라고 하시면서…. 또한 무등산의 원효사는 아버지의 정신적 안식처라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 왜냐하면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원효사에서 작품의 영감을 꾸준히 받으신 곳이라며 그곳의 약수를 아주 소중히 여기셨거든요. 그런 철학과 경험, 추억이 담긴 무등산을 주제로 대작을 완성하셨죠."'바람과 물의 역사'는 이러한 사유가 집약된 작품이다. 600호에 이르는 대형 캔버스 안에는 인간과 동식물, 대지와 하늘이 하나의 질서 속에서 얽혀 있다. 딸 오수경 화가는 이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경외심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바람과 물의 역사'를 보면 경외심이 들어요. 시스티나 성당에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가 생각나요. 저도 화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이렇게 어마어마한 작업을 나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인간의 존엄, 자연과 인간의 조화, 한국 정신의 세계, 순수한 인간의 모습, 시공을 알 수 없는 이상적인 풍경을 600호라는 거대한 작품 안에 형이상학적으로 표현하셨어요. 특히 작품 속 가운데 대례복을 입은 여인의 모습에서 작가이신 아버지의 얼굴이 보이며 제게 다가오는 것 같아 눈물이 나기도 해요."이번 전시에서는 처음 공개되는 흑백 판화 연작도 눈길을 끈다. 색채의 화가로 알려진 오승윤 화백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그가 색만큼이나 '선'을 중시했던 작가였음을 증명한다. 유화에서는 볼 수 없는 거친 선묘와 형태는 오히려 그의 관록과 예술적 긴장을 또렷하게 드러낸다.오승윤, 1995 회상 回想 Remembrance,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아버지를 넘어, 그러나 떠나지 않고오승윤 화백에게 광주는 단순한 활동 무대가 아닌 정체성 그 자체였다. 충장 김덕령 장군 영정과 고경명 장군 전쟁 기록화, 전봉준 의병 궐기 장면까지 그가 남긴 역사화들은 광주와 전남에 대한 깊은 애정의 표현이었다. 오방풍수를 정립한 이후에도 그의 예술은 결국 무등산으로 돌아와 마침표를 찍었다.오승윤, 1996 풍수 무등산 風水 無等山 Wind and Water at Mt. Mudeung 197×291cm oil on canvas'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것이 곧 선(禪)'이라는 그의 기록처럼, 오승윤 화백의 삶과 예술은 분리되지 않았다. 문명의 편리함을 멀리한 초가에서의 생활,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이어간 화업은 그 철학의 실천이었다. 이번 전시는 그가 남긴 작품을 넘어 한국적인 것에 대한 집요한 질문과 한 예술가의 삶의 태도를 함께 들여다보게 한다.아버지의 예술 세계는 딸의 작업에도 깊게 스며 있다. 오수경 화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직접 데생과 유화 기법을 배웠다. 한동안은 그의 부재를 견디기 위해 아버지가 가르쳐 준 점묘 기법을 붙잡고 작업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복제하지 않으면서도 계승하는 길을 택했다. 현재 진행 중인 '필그림' 시리즈는 오방색의 세계화를 꿈꾸는 작업으로, 아버지의 철학을 토대로 자신만의 예술 언어를 모색하는 과정이다.오승윤, 1999 선녀도 仙女圖 Nymphs"혹자는 아버지의 그림을 베끼라고도 하고, 혹자는 아버지와 비교되지 않으려면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해요. 하지만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린다면 그것은 아버지를 계승하고 그의 정신세계를 지속하는 것이 아니게 될 거예요. 그래서 저의 과업은 아버지를 복제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계승해 나가는 것입니다. '필그림' 시리즈를 통해 화가로서의 해답을 조금이나마 찾은 것 같아요."끝으로 오수경 화가는 예술가가 아닌 '아버지' 오승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남겼다."아버지가 더 우리 곁에 계셨다면 어떻게 예술가로서 작품 세계를 키워나가셨을지, 또 어떤 기억을 함께 쌓았을지 더욱 상상해보고 그리워하는 요즘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비망록에 써두고 가신 많은 이야기들이 비로소 조금씩 실현되고 또한 작품의 세계가 널리 펼쳐져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광주에 대한 사랑, 또 민족에 대한 사랑을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끼고 함께 사랑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 · 영하권 추위에도 첫 주말 ACC는 '북적'
- · 자연-인간 조화 탐구한 '오방색 화가' 작품세계
- · 호기심·상상력 자극...어린이 놀이터 '눈에 띄네'
- · ACC, 민주·인권·평화 숏폼 영상 공모전 시상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