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들어선 관객은 무대 위로
거대한 구덩이 앞에 서면 암전
관객 틈 지나는 비닐 튜브 눈길
4막선 5월 희생자 사진 ‘생생’
공중 헬기사격 재현땐 공포감
각자 방식으로 그날 해석 유도

야산의 구덩이에서 빛이 나고, 발 밑으로 검은 물이 밀려들며 하늘에는 거대한 태양이 뜬다. 세상이 창조되는 7일의 시간, 관객은 무대 위에서 재현된 신화를 직접 목도하지만 창조된 모든 것이 사라진 후 암전에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예술극장 극장 1에서 오브제 연극 '어디로나 흐르는 광주'를 선보였다. 대사 없이 오브제와 퍼포머의 움직임만으로 오월 광주의 본질을 조명하려 한 작품으로 7일간의 천지창조와 7일간의 종말을 극의 구조로 활용했다. 연출은 연출가 적극, 음악감독은 신원영과 해미 클레멘세비츠가 맡았다.
극장에 들어서면 관객들은 객석 없는 무대로 바로 올라선다. 무대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원형 관측도구가 줄지어 서 있고 멀리 정면으로는 거대한 원형 나무 스크린과 빛을 상징하는 구조물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 관객들은 진행요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스크린 가까이로 걸어간다. 무대 바닥 리프트가 층층이 올라가 있어 마치 산을 오르는 듯하다. 단차를 통해 만들어진 거대한 구덩이 앞에 서면 암전되고 극은 시작된다.
1막 '빛이 있으라'는 광주교도소 인근 야산을 재현했다. 구덩이 속에서 퍼포머들은 전선다발로 얽힌 전구를 이리저리 들다가 쓰러진다. 1막은 빛과 통증, 감각에 집중해 다양한 움직임과 도구들을 선보인다. 극의 설정은 메이의 소설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 속 '사람들이 통증을 느끼는 부위에서 어느 날부터 갑자기 환하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는 문구에서 인용했다.
1막이 마무리되고 관객들은 처음 있던 장소로 다시 '산'을 내려가고, 구덩이가 있던 야산은 무대리프트가 내려가며 평평하게 사라진다.
2막 '물과 빈 공간이 있으라'는 금남로와 충장로를 표현했다. 모포를 들고 얼굴을 가리고 있는 퍼포머들에게 다가가면 거대한 검은색 비닐 튜브가 관객들 사이를 비집으며 지나간다. 비닐 튜브는 거대한 물길 같기도, 성난 사람들의 물결 같다가도 퍼포머들이 튜브에 칼질을 하는 순간 바람이 빠지며 힘을 잃고 만다.

3막 '땅과 나무가 있으라'에서는 김복만 안성시립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 예술감독을 중심으로 풍물패가 나선다. 동유럽의 장교복을 입고 풍물을 치는 이들은 마치 군대가 대오를 변경하며 진법을 짜듯 무대 위를 이리저리 밟고 다닌다. 연주가 마무리되는 순간에는 패트병 다발로 엮인 줄이 한데 모아져 거대한 탑을 만든다.
4막 '해와 달과 별이 있으라' 에서는 6m 지름의 거대한 원형 스크린이 '태양'이 된다. 관객들은 5·18 희생자의 흑백사진을 관측도구에 설치하고 1.5㎝ 크기의 찰흙 달 모형을 이리저리 움직여 가상의 일식 현상을 확인한다. 관객들은 희생자의 눈 속에서 재현된 일식을 통해 시간과 죽음의 거리를 뛰어 넘는다.
5막 '새와 물고기가 있으라'는 전일빌딩의 헬기사격을 재현한다. 육중한 물고기 모형이 기계의 힘을 통해 하늘 위로 올라가고 관객들이 추앙하듯 이를 바라본다. 그러다 어지럽게 울리는 총성과 함께 핀조명이 무대 곳곳을 때리며 점멸한다.

6막 '동물과 사람이 있으라'는 노아의 방주를 패러디해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를 선보인다. 배가 띄워지는 강가는 도청의 분수대가 되고 광주의 희생자들이 극중극에 참가하기 위해 여러 동물로 분장한다. 성악을 전공하고 싶던 여고생 현주는 토끼를 맡고, 이마에 총을 맞아 죽은 임신부 미애와 뱃속의 아이는 캥거루로 출연한다. 자살한 공수부대원은 갑옷처럼 찰랑거리는 망토를 매고 닭처럼 무대를 활보한다. 음악감독인 해미 클레멘세비츠는 직접 관객 사이를 지나다니며 기타를 연주하고, 45년의 시간을 지나 무대를 뛰어다닌 희생자들은 기념촬영을 끝으로 퇴장한다.
7막의 인터미션 이후 8막의 종말에서는 극이 진행되며 무대에 설치된 창조물들이 역순으로 철거된다.

'어디로나 흐르는 광주'는 고정된 객석 없이 관객이 직접 공간을 이동하며 관람하는 오브제 연극이다. 관객들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새로운 감각적인 경험을 할 수 있고, 각자의 해석에 따라 작품을 '신화의 재구성'으로 혹은 '광주의 재조명'으로 느낄 수도 있다. 관객이 서 있는 무대 위에서 7일간 천지가 창조됐듯,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광주에서는 45년 전 비극이 써 졌다. 무대 위 구조물이 사라지고 텅 빈 무대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신화를 목격하고 진실을 알고 있는 관객이, 우리가 남아있다.
글·사진=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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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을 뚫고 피어난 자유의 외침
5월1일부터 6월21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복합전시 1관에서 진행되는 ‘침묵, 그 고요한 외침: 폴란드 포스터’ 전. ⓒACCF BHT00
표현의 자유가 억눌린 시대에 포스터를 통해 전한 침묵의 메시지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진행된다.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사장 김명규·이하 전당재단)이 오는 5월 1일부터 6월 21일까지 복합전시 1관에서 ‘침묵, 그 고요한 외침: 폴란드 포스터’ 전시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1950~1960년대 세계 그래픽 디자인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폴란드 포스터 학파’의 원본 작품 182점을 포함해 총 200여 점의 방대한 컬렉션을 소개하는 자리다.5월1일부터 6월21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복합전시 1관에서 진행되는 ‘침묵, 그 고요한 외침: 폴란드 포스터’ 전. ⓒACCF BHT00이번 전시는 (재)두양문화재단 오황택 이사장이 유럽 각지에서 수집한 1만여 장의 폴란드 포스터 중 엄선된 작품들로 구성됐다. 오 이사장은 고가구를 수집하기 위해 유럽을 방문하던 중 폴란드 포스터의 예술성에 매료돼 개인 소장가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컬렉션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전시는 지난해 경기도 양평의 이함캠퍼스에서 먼저 소개돼 약 2만 명의 관람객을 모았으며,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서도 깊이 있게 다뤄지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바 있다.5월1일부터 6월21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복합전시 1관에서 진행되는 ‘침묵, 그 고요한 외침: 폴란드 포스터’ 전. ⓒACCF BHT00전시의 핵심인 1950~1960년대 폴란드는 스탈린 체제 하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엄격히 통제되던 시기였다. 당시 폴란드 작가들은 주연 배우나 상업성을 강조하던 할리우드 방식에서 벗어나 영화를 보고 느낀 감정을 은유와 상징을 담아 회화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특히 사회주의 체제 특성상 흥행 압박이 없었기에 작가들은 더욱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시도를 지속할 수 있었다. 화가 출신의 디자이너들이 직접 손으로 그린 이 포스터들은 석판화와 오프셋 인쇄 기법을 통해 대량 생산됐으며, 현대에 이르러 광고를 넘어선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전당재단은 이번 전시를 유치하며 광주가 가진 역사적 정서와 결합하는 데 주력했다. 두 차례의 큰 전쟁과 군사정권의 탄압을 겪으면서도 문화적 저항을 통해 자유를 쟁취하려 했던 폴란드의 역사가 광주의 5·18 민주화운동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전시장 구성도 새롭게 단장했다. 10명의 거장을 소개하는 인트로를 시작으로 바르샤바 거리를 재현한 공간, 빅토르 고르카 작가의 창작실을 옮겨놓은 섹션 등 총 7개의 동선을 구축했으며 특히 광주 전시를 위해 관람객 참여형 체험존과 영상 재현 공간을 추가하며 기존 전시보다 업그레이드된 형태를 갖췄다.5월1일부터 6월21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복합전시 1관에서 진행되는 ‘침묵, 그 고요한 외침: 폴란드 포스터’ 전. ⓒACCF BHT00전시 기간 중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무료 도슨트 프로그램이 운영돼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오황택 이사장이 직접 들려주는 수집 이야기와 국내 폴란드 포스터 전문가인 이지원 교수의 심화 강의도 마련될 예정이다. 아울러 포스터 속 영화를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상영 프로그램도 준비돼 입체적인 전시 관람이 가능하다.전당재단 관계자는 “포스터라는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대중들이 전시에 쉽게 접근하는 동시에 그 안에 숨겨진 함축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전시 입장료는 성인 1만원, 청소년 및 어린이는 7천원이며 광주·전남 지역민에게는 20% 할인 혜택이 제공된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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