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도는 혐오 규제··· ‘촘촘한 입법’과 ‘범시민 자성’ 투트랙 절실

입력 2026.07.27. 07:00 이삼섭 기자
[전라도 향한 혐오, 일상에 스민 낙인] ④ 혐오 사슬 이렇게 끊자·끝
정보통신망법 ‘혐오 표현’ 제재 시도에도 구멍 숭숭
일본 ‘혐오해소법’ 주목…예방교육 법적 근거 마련
정치·경제·문화·교육계 동시다발 자성·연대 필요
20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서구 화정동 광덕중·고(교감 신희돈) 학생들이 교내 덕린관 비전홀에서 5·18 조롱 논란을 계기로 혐오와 조롱을 놀이처럼 소비하는 학교문화를 바꾸자는 ‘조롱은 멈추고 존중은 시작합니다’ 입장문을 발표하는 혐오표현 반대 실천대회를 갖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정부가 최근 표현의 자유와 규제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고 있는 ‘혐오 표현’을 막고 단속하기 위한 법·제도적 정비에 나섰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전라도 혐오’ 표현이 정치적 낙인과 지역 비하, 역사 왜곡 등과 맞물려 다면적·심층적 구조를 띄는 데다 처벌 조항이 ‘구멍 숭숭 뚫린 그물’처럼 두루뭉술하기 때문이다. 혐오 표현 생산의 온상인 온라인 커뮤니티와 중소 플랫폼 등은 아예 단속 대상에서 빠졌다. 이른바 ‘혐오 방지법’ 제정 필요성도 나오는 이유다. 반면 전문가들은 혐오를 ‘표현의 자유’나 놀이가 아닌 부끄러운 범죄로, 스스로 배척하는 성숙한 시민사회의 자정 문화 제고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혐오 표현은 대상만 달라질뿐 시간이 흐를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에서다.

26일 무등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정부와 정치권은 온라인상 혐오 표현을 불법정보로 규정하고 플랫폼의 규제 의무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 심의 권한을 담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을 개정했다. 온라인상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전라도를 향한 지역 혐오 표현 등이 사회 공동체를 현격히 훼손한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현행 조문 구조로는 진화하는 온라인 지역 혐오를 막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혐오·차별 선동 정보의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개정법은 ‘혐오 표현’에 대한 직접적 규정 없이 ‘불법정보’로 뭉뚱그렸다. 다만, ‘직접적인 폭력이나 차별을 선동하는 정보’, ‘증오심을 심각하게 조장하여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현저히 훼손하는 정보’라고 단서를 달았다. 온라인상 전라도 혐오는 물리적 폭력 선동보다는 은어, 밈, 비꼬는 모욕, 조롱 형태가 대다수여서 이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 ‘증오심의 심각한 조장’과 같은 문구도 법적으로 입증하기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다. 실제 전라도 혐오 표현은 “7시”, “청정구역”, “절라동화” 등 은어화된 도그휘슬(Dog Whistle·특정 집단만 알아듣도록 하는 화법)이나 반어적 비하 밈 형태로 교묘하게 진화했다. 본지가 네이버 뉴스 댓글 10만여 개를 분석한 결과(7월 20일 자 1·3면)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뚜렷했다. 사실상 현행법 조문만으로는 눈으로 보고도 처벌하지 못하는 무용지물 법안이 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이에 따라 유해성 판단 기준에 정보의 누적성과 반복성을 보다 분명히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 대상을 ‘일일 평균 이용자 수 100만 명 이상’인 대형 플랫폼으로 제한했다는 점도 문제다. 전라도 혐오 표현과 악의적 밈(Meme)이 최초 생산되는 거점은 디시인사이드, 일베 등 중소 커뮤니티다. 피해가 집중되는 중소 커뮤니티를 놓쳐 사실상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한 반발)의 풍선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신대 석좌교수였던 박용수 광주특별시 민주인권평화교육국장은 “이번 개정안은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가 거의 빠지고, 정작 혐오 콘텐츠의 주요 생산 공장인 일베와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중소 사이트들을 빠뜨리는 등 한계가 명확하다”고 짚었다.

온라인상 전라도 지역을 향한 혐오 표현이 심각한 가운데 법적 규제를 넘어 혐오를 부끄러운 일로 배척하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다. 사진은 AI(인공지능)를 활용한 온라인상 전라도 혐오 실태. 최류빈기자 rubi@mdilbo.com

온·오프라인을 아울러 혐오의 발생 자체를 예방하고 공동체의 인권 기준을 세우는 것은 ‘헤이트 스피치(혐오) 방지법’의 제정 필요성도 나온다. 예컨대 일본은 2010년대 이후 재일 조선인을 향한 극우 세력의 무차별적인 거리 시위와 온라인상의 ‘혐한 발언’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하자 2016년 ‘본국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위한 추진법’(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을 제정했다. 이를 토대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혐오 발언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실제 무등일보의 기획 보도 이후 송영길·박선원 국회의원 등이 일본 사례를 참고해 혐오 방지법 제정을 논의키로 약속했다.

전문가들은 법과 제도를 통한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차별과 비하 표현을 감히 입 밖에 내거나 댓글로 배설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금기와 자정 분위기를 구축해야 한다는 거다. 이의정 전 전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어느 사회나 불만이 쌓인 계층이 만만한 사회적 약자를 향해 혐오와 조롱을 투사하는 억압 기제가 존재한다”며 “남녀, 세대, 지역 등 대상만 바뀔 뿐 이 같은 억압 기제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혐오 표현을 내뱉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카타르시스를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조금도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고 감정 조절이 안되는 상태라는 것을 사회 구성원들이 인식시켜 줘야 한다”며 “그러면서 결국 그런 혐오 표현을 억제해 나가는 사회적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초·중·고 교육 과정에서부터 타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 표현을 배척하는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세계 각국의 혐오 관련, 법 제정 현황. AI를 활용한 배경에 각 국가의 현황을 그래픽으로 나타냈다. 고은경기자 ek8147@mdilbo.com

실제 최근 광주 광덕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펼친 ‘혐오 표현 근절 캠페인’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국장은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과 사회적 여론과 미디어, 교육으로 방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 같은 문제를 언론을 통해 공론장으로 확산시키는 한편 시민사회 간 협력을 통해 방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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