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저는 전라도 사람 입니다

입력 2026.07.09. 10:53 이삼섭 기자
전라도 향한 혐오, 일상에 스민 낙인 ①프롤로그
반도체 투자·탱크데이·배제고 계기 지역 혐오 절정
'광주 출신' 낙인에 오래전부터 위축된 삶 살아와
한낱 즐거운 놀잇감 전락에 지역민·아이들 상처만

요즘 아침 뉴스를 볼 때마다 불편합니다. ‘나이들어 예민한 탓일까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빠졌다’는 소식에 덜컹 내려앉습니다. 간만에 들려온 고향 소식과는 무관하겠지 애써 위안도 해봅니다. 며칠 전, 대통령이 TV에 나와 직접 발표한 ‘삼성·SK의 광주 반도체 팹(Fab) 투자’ 이야기입니다. 마치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처럼 논리정연했던 대통령의 남다른 애정 표현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묵묵히 지켜보던 마눌님은 “주책”이라며 퉁을 놨죠. 나이 60에 희망을 봤습니다. 드디어 내 고향에도 미래 산업이 생기는구나. 우리 아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어 내 일처럼 들떴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찰나였습니다. 보수 정치인과 언론 등을 보며 자괴감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공장이 전남광주에 들어서면 나라가 망하는 걸까’. 뉴스와 포털에서 댓글 창을 확인한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대형마트 하나 제대로 없는 미개하고 낙후된 동네에 무슨 반도체 공장이냐”, “‘홍어들’한테 퍼주다니 기업이 미쳤다”라는 식의 날 선 조롱과 저주 가득한 혐오 표현이 폭포수처럼 쏟아진 탓이었습니다.

트라우마가 되살아 났습니다. 저는 전라도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지역 감정·차별이 극심했던 때였습니다. ‘전라도 혐오’는 익숙했습니다.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먼저 고개를 숙였고, 위축된 삶을 살아 왔으니까요. 분명히 같은 대한민국에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데도 특정 지역은 균형발전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유독 전라도에게만은 가혹합니다. ‘내 자식과 손주 만큼은 이런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고향 소식이 마냥 반갑지 않습니다. 최근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과 광주일고 야구 선수들을 향해 가해진 조롱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1980년 5월, 갓 중학교에 입학했던 그날의 총성이 귓가에 맴돕니다. “밖에서 총소리가 나니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말아라.” 사르르 떨리는 손으로 저를 꼭 껴안으며 문을 걸어 잠그시던 어머니의 절박함, 그리고 그 오월에 목숨을 잃은 또래 학생 18명의 기억은 평생의 아픔으로 남았습니다. 매해 이팝나무가 피는 5월이면 한집 건너 한집마다 곡소리가 들리던 고향을 애써 외면했던 이유입니다. 나이 탓인지 갈수록 나 지신이 못나 보이네요. 자꾸 쪼그라들고 위축 되서죠. 뻔뻔한 ‘그들’은 되레 더 당당합니다. 거짓된 혐오를 생산하고, 역사적 비극을 조롱하는 그들에 대해 정작 위축되는 것은 우리의 몫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거대한 낙인은 아주 오래전부터 삶을 옥죄어 왔습니다. 광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향했을 때 비로소 고향을 벗어난 전라도인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의 벽을 실감했습니다. ‘빨갱이냐’, ‘간첩질 하지 마라’는 말은 가벼운 농담 축에 속했습니다. 군대에서는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참들에게 “너희 동네 놈들은 다 폭도냐”라는 모욕과 함께, 심한 구타를 당해야 했습니다.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나라지키는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총을 쐈던 기막힌 현실을 경험’했던 전남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입대해서도 전라도에서 왔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야만 했었죠.

취업 때도,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태어난 호남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면접 볼 때가 생생합니다. “우리 회사는 솔직히 전라도 출신은 잘 안 뽑는데, 자네는 전라도 사람처럼 보이지 않네”라던 면접관의 말에 숨이 턱 막혔습니다. 당시 TV 드라마나 영화 속 조폭, 사기꾼, 하층민들은 어김없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곤 했습니다. 그 때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죠. 회사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몇 차례 승진 기회 때마다, 번번히 미끄러졌습니다. 주변에선 “전라도 출신 때문”이라며 수군댔습니다. 결국 환멸을 느꼈던 서울 생활을 접은 채 고향으로 내려와 작은 가게를 차렸습니다.

민주화 되고 세상이 조금 달라진 줄 알았습니다. 2010년대에 접어드니 과거와 차원이 다른 잔인한 혐오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2013년 일베 사이트에서 5·18 희생자들의 관을 ‘택배 상자’에 빗대어 조롱하는 것을 보았을 때의 절망감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피눈물이 그들에게는 한낱 즐거운 놀잇감이었던 셈입니다. 문제는 이 같은 전라도 혐오가 일상이 됐다는 것입니다. 전남광주와 관련된 뉴스의 댓글 창은 ‘홍어, 라도, 전라디언, 7시, 알보칠, 까보전’ 등 입에 담지 못할 단어들로 도배됐습니다. 온라인에서 댓글을 보지 않는 이유죠. 신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뿐, 끊이지 않는 왜곡과 혐오에 무력감만 쌓였습니다.

정치권은 전라도를 철저하게 이용만 합니다.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는 ‘민주주의의 성지’라며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약속하지만, 지금껏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보수 정당은 외연 확장을 말하다가도 호남을 고립시키는 지역감정 프레임을 다시 꺼내 들어 진절머리 나게 만들죠. 더 가슴 아픈 것은 이 독버섯 같은 전라도 혐오 문화가 우리 아이들의 삶까지 갉아먹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 전라도일까요’. 수십년 간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은 채 ‘전라도 집단 린치’ 현상이 되풀이되는데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걸까요. 이제는 놀이 문화로까지 변질·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마저 먹먹해집니다. 60 평생 뼈져리게 느꼈던 절망감을 내 손주들에게 또다시 대물림 해야 할까요. 장맛비에 한기가 돕니다. 겨우내 떨어지지 않았던 된장과 멸치 넣고 양파와 감자 썰어 끓였던 어머니의 된장국이 간절한 밤이네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늘 같은 밤, 막걸리 한 잔하며 그 간 왜 광주인지 담아뒀던 그 고민의 해결책을 한 번 찾아 보려합니다.

유지호기자 hwaone@mdilbo.com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포털에서 10·20세대의 ‘밈(Meme)’과 오프라인 놀이 문화로 변질·확산하고 있는 ‘전라도 혐오’를 다룬 이 기사는 서사적 글쓰기인 ‘내러티브 저널리즘(narrative journalism)’을 활용했습니다. 우리 사회와 일상 생활 곳곳에 독버섯 처럼 스며든 전남광주에 대한 무차별적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혐오 표현)의 문제점 등을 현장감 있게 전달해 보자는 취지에서입니다. 관찰자로서 기자가 단순 사실 전달식 기사 형태에서 벗어나, 소설처럼 이야기하듯 구성했습니다. 현재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는 ‘전라도 린치’ 현상이 어디에서 어떻게 기인했는지 등 근본적인 원인은 물론 제도 개선 등 해결 방안에 대한 고민 등을 독자 여러분들께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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