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벚꽃이야기

@주종대 밝은안과21병원 원장 입력 2025.04.24. 17:40
주종대
밝은안과21병원 원장



드디어 4월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상 기후로 인해 겨울 끝자락에 때늦은 한파와 꽃샘추위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올해 2월의 폭설과 3월의 꽃샘추위를 지나, 4월 초가 되어서야 광주천 주변에 벚꽃 나무들이 개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성장기부터 청년기까지 꽃과 자연환경에 무관심했다. 학창 시절, 새벽부터 학원으로 달려가 새벽반 수업을 듣고 다시 학교로 향한 뒤 방과 후에는 과외를 들으며, 계속 공부만 하는 힘든 수험생활을 보냈다. 이후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서클활동과 친구들의 모임으로 하루하루가 쉴 새 없이 바빴다. 그리고 구례에서 공중보건의사로 첫 근무를 시작했다.

지리산을 품고 있는 구례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내가 구례에 부임했을 때가 5월이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높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길게 늘어서 있고 평야지대 사이에는 섬진강 물줄기가 조용히 흘러내렸다. 막 여름이 시작되던 시기라서 공중보건의 선생님들과 섬진강에서 물고기도 잡고 왕진을 하며,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녔다.

구례에서의 생활에 만족하다 보니 금세 구례에 봄이 찾아왔다. 4월이 되니 내가 살고 있는 섬진강 주변 도로가 온통 하얀 꽃송이로 뒤덮였다. 보건소 소장님이 하동에서 구례까지 이어지는 백리벚꽃길을 지금 보지 않으면 평생 한이 될지도 모른다며, 데이트 코스로 강력히 추천했다. 나는 벚꽃길이 얼마나 예쁠지 반신반의하며, 사람들과 차들로 붐비기 전에 아침 일찍 오토바이를 타고 나갔다.

아내를 태우고 섬진강 벚꽃길을 내달렸다. 도로변을 가득 채운 커다란 벚꽃나무들이 꽃터널을 이루고 탐스러운 꽃망울들이 터져 바람에 잔잔하게 휘날렸다. 그 풍경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장관이었으며,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처음 보는 지대하고 환상적인 꽃길이었다.

그 후, 다시 그 ㅤ벚꽃길을 가지 못했다. 다음 해에 구례를 떠나 수련의 생활을 하기 위해 경남 마산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마산에서 하루 24시간 병원에서 상주하며, 주야간 근무를 하느라 벚꽃에 대한 생각은 잊힌 지 오래였다. 그러던 중 4월 어느 날, 안과 모임을 위해 진해로 향했다.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일본 소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서처럼 하얀 벚꽃송이들이 흩날리며, 마치 설국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그때 벚꽃축제인 진해 군항제가 진행 중이었다. 낮에는 수많은 사람과 차량으로 진입이 어려웠지만 밤에는 지역 주민들만 있어 쉽게 벚꽃 야경을 즐길 수 있었다. 비록 차 안에서 본 벚꽃이었지만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벚꽃 사진을 실컷 찍고 눈 호강을 했다. 그 후 20년 동안 벚꽃을 잊고 살았다. 삶이 바빠서 보질 못한 것도 있고 구례, 진해의 벚꽃길에 대한 감동이 너무 커서 다른 벚꽃들이 시시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러던 2021년 한창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던 때였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갈 수가 없어서 퇴근 후에는 등산화를 신고 목적 없이 그냥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중외공원에 있는 벚꽃길을 만났다. 낮은 경사로를 따라 양쪽으로 벚꽃나무가 드리워져 있고 가로등 불빛 아래 꽃잎들이 허공에서 춤을 추듯이 떨어졌다. 아스팔트 도로 위의 수북이 쌓여있는 꽃잎들을 밟으며, 풋풋했던 햇병아리 의사 시절이 떠올랐다.

진료와 수술이라는 반복되는 일상과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사람들과의 만남이 중단되자, 나는 자연이 주는 기쁨과 마주하게 됐다. 그리고 내 삶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보다는 자연과 만나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4월에는 벚꽃, 5월에는 장미 등 계절마다 피는 제철 꽃들을 만나러 다녔다. 이를 위해 자연 타임 테이블도 만들었다.

나는 2025년의 벚꽃을 보기 위해 1년을 기다렸고 벚꽃이 피어있는 기간 동안 빠짐없이 벚꽃을 보러 갔다. 벚꽃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준 하늘과 내 삶에 감사하고 자연의 주는 기쁨과 행복을 모든 이들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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