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한승원 '해남 가는 길' 기고
파킨슨 투병 중 가족 위해 집필
한강 작가 작곡한 곡으로 희망
특집 'AI 시대의 글쓰기' 등 담아 '눈길'

광주·전남 문예지 계간 ‘문학들’이 최근 2026년 봄호(통권 83호)를 발간했다. 이번 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원로 소설가 한승원이 파킨슨병 투병 중 집필한 병상일기 ‘해남 가는 길’을 특별 기고로 실었다는 점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부친이기도 한 그는 이번 호에서 파킨슨병이라는 시련 앞에 선 노작가의 고백을 38편의 시적 산문으로 풀어냈다.
한 작가는 지난해 9월부터 해남종합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으며 기록한 투병의 과정을 공개했다. 그는 2023년 6월 딸의 시상식장에서 처음으로 신체 이상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당시 왼쪽 어깨와 옆구리에 힘이 빠지며 몸이 기울어지는 증상이 있었지만 이를 단순한 노화로 여겼고, 이후 균형 감각 상실과 손떨림이 심해진 뒤에야 파킨슨병 3기 진단을 받았다.
병마는 육체를 넘어 정신까지 잠식했다. “글을 쓰는 한 살아 있고, 살아 있는 한 글을 쓴다”는 신념을 지닌 그에게 신체적 제약은 삶의 의미를 흔드는 일이었다. 그는 깊은 우울증에 시달려 가족에게 스위스에서의 안락사를 허락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환점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찾아왔다. 오줌 자루에 의지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그는 오히려 삶의 존엄을 새롭게 인식했다. 처음에는 수치심이 앞섰지만 숙면을 되찾으며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으로 모든 것이 보상된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그는 이 시련을 ‘오만한 나에게 주어진 선물’로 규정하며, 87년 삶의 껍질을 벗고 새롭게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그는 딸 한강이 작사·작곡하고 부른 노래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를 통해 큰 위안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제는 살아야 할 시간’, ‘이제 일어나 걸을 시간’이라는 가사는 절망 속에 있던 그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됐다. 그는 자신의 영결식에서 이 노래를 틀어달라고 당부할 만큼 곡에 담긴 생의 의지를 깊이 받아들였다.
현재 그는 재활 치료사의 “바늘귀만큼씩 회복된다”는 말을 붙잡고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본문에서 “딸은 한순간 자포자기하고 싶었던 삶의 처절한 이야기를 노랫말로 쓴 것일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의 연속된 절망의 삶을 예견하고 그 노랫말을 쓴 듯 싶다”며 “사랑하는 내 딸이 미망에 빠진 나를 일깨워줬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번 호는 ‘AI 시대의 글쓰기’를 특집으로 구성해 변화하는 문학 환경을 조망했다. 류인태 평론가는 인공지능이 생성한 텍스트 ‘AI-criture’의 존재론적 의미를 분석했고, 노대원 평론가는 AI 문학과 예술을 둘러싼 저작권 문제와 신춘문예 AI 금지 논란 등 최근 쟁점을 정리했다.
‘광주In문학’ 섹션에서는 지역 독립문화 활동가들의 에세이를 실었다. 광주극장 프로그램 기획자 이서영은 극장을 ‘역사와 픽션 사이에서 끊임없이 재배치되는 장소’로 정의하며 로컬리티의 갱신을 짚었다. 독립서점 ‘소년의 서’ 상주 작가였던 정재율과 ‘기역책방’ 송기역은 책방이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삶의 흔적이 교환되는 공동체의 거점임을 강조했다.
또한 ‘질문들’ 코너에서는 성혜령, 이미상, 조시현 작가가 황정은과 오에 겐자부로 등의 작품을 매개로 세대 간 연대와 성찰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강혜원 시인의 신작 시와 비평을 담은 ‘동향들’ 역시 지역 문학의 흐름을 보여준다.

송광룡 발행인은 “한승원 선생께서 자녀들에게 유언처럼 남기려고 쓰셨던 글들을 뜻이 닿아 ‘문학들’에 싣게 됐다”며 “죽음의 문턱에서 길어 올린 문장이 오히려 삶을 더 또렷하게 비추고 있어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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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근 장관 “기초예술 지원 강화하겠다”
18일 오후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전당장 김상욱)에서 진행된 ‘기획예산처 장관 지역 문화예술 현장 간담회’에서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기초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과 ACC의 지역 상생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예술인들의 목소리에 향후 정책과 예산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박 장관은 18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전당장 김상욱)을 찾아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간담회를 갖고 기초예술 지원 확대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방향성 등을 논의했다.이날 오후 ACC 회의실2에서 열린 행사에는 김원중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장을 비롯해 공연·미술 등 분야의 지역 예술인들이 참여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했다.참석자들은 지역 예술계의 구조적 어려움과 공공 지원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예술가들이 생계를 위해 여러 일을 병행하는 현실 속에서 실험적 창작 활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기초예술 분야에 대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ACC와 지역 예술계의 연계 강화 필요성도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지역 공연예술인들이 여전히 ACC 문턱을 높게 느끼고 있다”며 공동 제작 시스템과 레지던시 확대, 지역 창작물 유통 지원 등을 요구했다. 아울러 “광주 시민들이 수도권에 가지 않아도 수준 높은 공연과 콘텐츠를 접할 수 있도록 해 문화 향유 기회를 넓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18일 오후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전당장 김상욱)에서 진행된 ‘기획예산처 장관 지역 문화예술 현장 간담회’에서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청년예술인 유출 문제와 지역 예술 생태계 지속성에 대한 우려도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지역에 창작 기반과 교육 환경이 부족해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다”며 “지역 예술인들이 장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원중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장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은 광주 전역에서 함께 추진돼야 하는 사업”이라며 “광주시 권역 사업들은 매칭 예산 문제 등으로 집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시민 체감도가 낮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화사업이 지역 곳곳에 골고루 이뤄져야 예술인들도 정부 정책을 신뢰하고 안정적으로 창작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박 장관은 “기초예술과 대중예술, 공공영역과 시장영역마다 필요한 정책이 서로 다른데 지금은 너무 뭉뚱그려져 있다”며 “분야별 맞춤형 전략과 지원 체계를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18일 오후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전당장 김상욱)에서 진행된 ‘기획예산처 장관 지역 문화예술 현장 간담회’에서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그는 이어 “ACC가 현장 예술인들과 시장, 공공영역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며 “광주·전남 예술인들과 함께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화산업과 예술 생태계를 키워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한편 이날 간담회에는 류재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지원포럼회장, 김허경 광주유네스코창의도시 미디어아트플랫폼 센터장, 이정기·서영기 미술작가, 임홍석 한국연극협회 광주지회장, 김현재 안무가 등이 참여했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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