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극한 상황 인간 본성 천착
불교 자비 세계관 더한 중단편
생사 경계 넘어서는 구원 탐색

‘황색인’의 작가 이상문(79)씨는 넘치는 상상력과 탄탄한 문장으로 폭력적인 역사 속의 인간 존재의 비극을 그려낸 작품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리얼리즘 소설의 대가로 불린다.
소설가 이상문이 신작 소설집 ‘아수라’(인북스刊)를 출간했다. 이번 소설집에 작가가 평생에 걸쳐 천착해 온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의 인간 본성과, 이를 보듬는 ‘불교적 자비’의 세계관이 정교하게 맞물린 작품들이 실려 있다. 표제작 ‘아수라’를 비롯해 ‘손님’, ‘불호사’, ‘입술’, ‘짐’, ‘그 겨울의 사보텐’ 등 총 6편의 중·단편을 수록했다.
그는 등단 40여 년에 걸쳐 끊임 없이 비극의 역사 속에서 상처를 주고 받으며 절망하고 몰락해 버린 인간들의 화해와 치유를 모색해 온 가운데 이번 소설집에서 불교적 통찰로 생명에 대한 경외와 자비로운 구원의 서사를 형상화했다.
표제작 ‘아수라’는 반세기 전 해외 파병 전쟁(남로국)의 군수지원사령부 소속으로, 사망한 군인들의 시신을 화장하여 본국으로 보내는 영현(英顯)중대의 군법사가 머물던 불광사를 배경으로 한다. 전쟁터의 화장장에서 끊임 없이 피어오르는 회색 연기와 참혹한 시신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수라도(阿修羅道)’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작가는 이 지옥 같은 공간을 통해 전쟁의 무의미함과 파괴성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스러져 간 영혼들을 달래는 군법사 ‘상일 스님’의 고뇌를 통해 생사의 경계를 넘어서는 구원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작가는 이번 소설집 전반에 걸쳐 불교의 핵심 사상인 ‘연기법’을 서사 구조의 근간으로 삼았다. 수록작 ‘손님’에서는 수십 년 전의 인연이 예기치 못한 순간 ‘손님’으로 찾아오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역설한다. 또한 ‘불호사(佛護寺)’는 ‘부처님이 보호하는 절’이자 ‘모든 생명을 보호하는 절’이라는 의미를 담아,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생명을 보듬어 키워낸 보살 같은 인물들의 삶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역사적인 비극을 불교적 통찰로 감싸 안아 형상화하여 깊은 울림과 성찰의 시간을 선사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문학평론가 장영우(동국대 명예교수)는 “이상문 소설의 미덕은 사건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한 인간이 짊어진 기억의 무게를 끝내 독자의 내면까지 끌어들이는 데 있다”며 “전쟁 이후의 가난, 이념의 폭력, 생존을 위한 죄책감 같은 무거운 주제들이 절제된 문장과 단단한 서사 구조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만든다. 전쟁터의 화장장 굴뚝 연기와 법당의 향연(香煙)이 뒤섞인 이 숭고한 소설집은 상처 입은 현대사를 위로하는 장엄한 천도재(薦度齋)”라고 평했다.
이상문 작가는 나주 출생으로 동국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83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단편 ‘탄흔’이 당선됐고 그동안 장편 ‘황색인’과 ‘계단 없는 도시’ ‘방랑시인 김삿갓’ 등을 펴냈고 대한민국문학상과 윤동주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노근리평화문학상(문학 부문)등을 받았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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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이 가르쳐준 삶의 철학, 소설에 담아내다
25일 만난 문순태 작가가 영산강을 바라보며 그의 신작 소설 ‘영산강 칸타타’(도서출판 오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강은 높은 곳에서 반드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낮은 곳을 지향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가르침입니다. 모든 인간은 욕망 때문에 거슬러 올라가려 하지만, 강은 수평을 이루며 평등한 세상을 보여줍니다.”전남 나주 타오르는강문학관에서 창작혼을 불태우고 있는 문순태 작가가 인생의 마지막 정류장으로 삼은 영산강가에서의 이야기를 담아낸 신간 ‘영산강 칸타타’(도서출판 오래)를 펴냈다. 여든 평생 무등산을 맴돌며 살아온 그는 이제 자신의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의 주 무대였던 나주 영산강으로 돌아와 그 물줄기를 바라보며 깨달은 삶의 궤적을 이번 작품에 오롯이 담아냈다.‘영산강 칸타타’는 시와 에세이, 소설의 경계를 허문 ‘장르 파괴’ 형식의 자전적 소설이다. 25일 나주 타오르는강문학관에서 만난 문 작가는 “외국 문학은 이미 장르의 경계가 무너져 시와 소설, 에세이가 자유롭게 넘나든다”며 “내 삶을 되돌아보며 사실과 픽션을 적절히 섞어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설명했다.문순태 작가의 신작 소설 ‘영산강 칸타타’(도서출판 오래).특히 이 소설은 무등일보 문화관광전문매거진 ‘아트플러스’에 1년여간 연재했던 ‘내 인생의 커피 이야기’ 시리즈를 토대로 하고 있다. 작가는 연재했던 시리즈에 영산강에서 마주한 새로운 삶의 깨달음을 접목하며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커피와 삶, 기억과 사유의 조각들이 강이라는 공간에서 하나의 서사로 엮였다.소설은 80여 성상의 굴곡진 인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939년 담양에서 태어나 6·25전쟁을 겪으며 고향 마을이 불타버린 유년의 기억부터, 기자 생활 중 5·18민주화운동을 겪으며 반체제 기자로 낙인찍혀 해직됐던 시간까지 작가의 실제 삶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문 작가는 이 작품을 유서 대신 세상 사람들에게 건네는 ‘마지막 편지’라고 정의하며 자신의 생애를 오롯이 쏟아부었다.작품의 핵심 매개체는 커피와 강의 만남이다. 고교 시절 스승이었던 다형 김현승 시인으로부터 전수받은 커피는 작가에게 단순한 기호품을 넘어 고독을 견디게 하는 도구이자 삶을 밀어 올리는 부스터였다. 그는 과테말라의 아픈 역사가 깃든 안티구아 원두의 쓴맛을 즐긴다. 그 씁쓸함이 곧 인생의 맛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소설 속에서 영산강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하나의 사유 주체로 기능한다. 작가는 강을 바라보며 “흐르는 것은 소멸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강물은 흘러가면서도 계절마다 꽃을 피우고 숲을 가꾸듯 노작가의 삶 역시 영산강이라는 마지막 종착역에서 또 다른 생의 환희를 맞는다. 소설은 그 환희의 순간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기록한다.80대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작가의 시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작가는 죽는 순간까지 붓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25일 나주 타오르는강문학관에서 만난 문순태 작가가 그의 신작 소설 ‘영산강 칸타타’(도서출판 오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그는 이미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 써둔 5·18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장편 소설이다.작가는 “하느님께서 2년만 더 시간을 주신다면 한 작품 더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며 “1980년 당시 서울에 머물러 광주로 내려오지 못했던 한 청년이 평생 역사적 부채감에 짓눌려 살아가다 40년 만에 광주를 다시 찾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끝으로 그는 “AI가 소설을 쓰는 시대에도 인간만이 지닌 감성만큼은 끝내 대체할 수 없다”며 “문학이 다시 빛을 보는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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