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구원으로 완성한 생명 존중의 서사

입력 2026.02.03. 15:48 최민석 기자
이상문 소설집 '아수라' 출간
전쟁 극한 상황 인간 본성 천착
불교 자비 세계관 더한 중단편
생사 경계 넘어서는 구원 탐색

‘황색인’의 작가 이상문(79)씨는 넘치는 상상력과 탄탄한 문장으로 폭력적인 역사 속의 인간 존재의 비극을 그려낸 작품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리얼리즘 소설의 대가로 불린다.

소설가 이상문이 신작 소설집 ‘아수라’(인북스刊)를 출간했다. 이번 소설집에 작가가 평생에 걸쳐 천착해 온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의 인간 본성과, 이를 보듬는 ‘불교적 자비’의 세계관이 정교하게 맞물린 작품들이 실려 있다. 표제작 ‘아수라’를 비롯해 ‘손님’, ‘불호사’, ‘입술’, ‘짐’, ‘그 겨울의 사보텐’ 등 총 6편의 중·단편을 수록했다.

그는 등단 40여 년에 걸쳐 끊임 없이 비극의 역사 속에서 상처를 주고 받으며 절망하고 몰락해 버린 인간들의 화해와 치유를 모색해 온 가운데 이번 소설집에서 불교적 통찰로 생명에 대한 경외와 자비로운 구원의 서사를 형상화했다.

표제작 ‘아수라’는 반세기 전 해외 파병 전쟁(남로국)의 군수지원사령부 소속으로, 사망한 군인들의 시신을 화장하여 본국으로 보내는 영현(英顯)중대의 군법사가 머물던 불광사를 배경으로 한다. 전쟁터의 화장장에서 끊임 없이 피어오르는 회색 연기와 참혹한 시신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수라도(阿修羅道)’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작가는 이 지옥 같은 공간을 통해 전쟁의 무의미함과 파괴성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스러져 간 영혼들을 달래는 군법사 ‘상일 스님’의 고뇌를 통해 생사의 경계를 넘어서는 구원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작가는 이번 소설집 전반에 걸쳐 불교의 핵심 사상인 ‘연기법’을 서사 구조의 근간으로 삼았다. 수록작 ‘손님’에서는 수십 년 전의 인연이 예기치 못한 순간 ‘손님’으로 찾아오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역설한다. 또한 ‘불호사(佛護寺)’는 ‘부처님이 보호하는 절’이자 ‘모든 생명을 보호하는 절’이라는 의미를 담아,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생명을 보듬어 키워낸 보살 같은 인물들의 삶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역사적인 비극을 불교적 통찰로 감싸 안아 형상화하여 깊은 울림과 성찰의 시간을 선사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문학평론가 장영우(동국대 명예교수)는 “이상문 소설의 미덕은 사건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한 인간이 짊어진 기억의 무게를 끝내 독자의 내면까지 끌어들이는 데 있다”며 “전쟁 이후의 가난, 이념의 폭력, 생존을 위한 죄책감 같은 무거운 주제들이 절제된 문장과 단단한 서사 구조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만든다. 전쟁터의 화장장 굴뚝 연기와 법당의 향연(香煙)이 뒤섞인 이 숭고한 소설집은 상처 입은 현대사를 위로하는 장엄한 천도재(薦度齋)”라고 평했다.

이상문 작가는 나주 출생으로 동국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83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단편 ‘탄흔’이 당선됐고 그동안 장편 ‘황색인’과 ‘계단 없는 도시’ ‘방랑시인 김삿갓’ 등을 펴냈고 대한민국문학상과 윤동주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노근리평화문학상(문학 부문)등을 받았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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