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문인·출판인 등 생애 조명
1992년 '문학춘추' 창간·33년 발행
신인 발굴·한림문학상 제정 운영
"아동문학은 순수한 시심 중요"

광주·전남 지역 종합 문예지 '문학춘추'가 지난 5월26일 갑작스럽게 소천한 고(故) 박형철 시인(1937~2025)의 대담을 특집으로 한 가을호(통권 제132호)를 발간했다.
'문학과 인생 이야기'를 주제로 한 특집은 평생을 문학에 헌신한 박 시인의 삶과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문학춘추' 편집진이 생전인 4월5일에 진행했던 마지막 인터뷰 내용을 담고 있다.
시인은 1937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지만, 해방 후 아버지의 고향인 전남 무안과 광주에서 유년과 학창 시절을 보내며 광주 토박이로 살았다. 1959년 광주사범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화가로 활동하며 나주미술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지만, 이후 출판사를 운영하며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인터뷰에서 시인은 학창 시절 교회 주보 제작을 돕다가 글쓰기의 기쁨을 알게 됐고, 특히 김신철 아동문학가를 비롯한 문학청년들과의 교류가 큰 전환점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문학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기량이 아니라, 얼마나 정직하게 자기 내면을 응시하고 진솔하게 표현해 내는가의 문제"라고 강조하며, 특히 아동문학은 '순수한 시심(詩心)'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1992년 계간 '문학춘추' 창간이다. 그는 당시 지역 문인들이 작품을 발표할 지면이 극히 제한적인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열정만으로 글을 쓰는 지역 문인들에게 '사다리'를 놓아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문학춘추'는 창간 이후 33년간 결호 없이 통권 131호를 발행하며 지역 문학계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그는 신인 발굴과 함께 '지역 문인 50%, 전국 문인 50%'라는 원고 청탁 기준을 33년간 지켜왔다고 자부했다. 또한, 사단법인 한림문학재단을 설립하고, 한림문학상을 제정해 차범석 극작가, 최승범 시조시인 등 한국 문단을 빛낸 원로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

인터뷰에는 제2대 '문학춘추' 발행인이자 한림문학재단 이사장인 노남진 대표와의 30년 넘는 깊은 인연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박형철 시인은 1993년 당시 젊은 공무원이었던 노 대표를 만나 등단을 권유했고, 이후 그와 함께 국제PEN한국본부 전남지회, 광주문인협회 등 여러 단체에서 문학 활동을 펼쳤다.
박형철 시인은 문학을 꿈꾸는 젊은 세대들에게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하라"는 조언을 남겼다. 그는 "문학은 시간을 들여 자기를 들여다보고, 언어를 다듬는 인내의 예술"이라며, 성공보다 '지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호에는 박형철 시인 추모 특집 외에도 다양한 문학 작품이 실려 있다. 표인주 전 전남대학교 박물관장의 연재 기획 '문학의 원초적 근원은 문화이고, 문화는 삶의 텃밭이다'를 시작으로, 김홍식, 박길무 시인의 신작 시, 노창수, 송귀영 시조시인의 작품, 윤삼현 문학박사의 동화 등 다채로운 문학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또한 제130회 문학춘추 신인작품상 시 부문 당선자 윤혜경, 임주섭과 동시 부문 당선자 박숙희의 신선한 작품도 함께 실려 한국 문단의 새로운 얼굴을 소개한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
인간 탐욕이 망가뜨린 바다의 아우성
384
일상화된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으로 바다는 몸살을 앓고 있다.그러나 인간은 바다의 고통과 아우성을 알면서도 무관심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최근 나온 전숙 시인의 해양생태시집 '바다가 우는 방식'(시와사람刊)은 인간의 탐욕으로 훼손된 바다의 고통을 신체적·윤리적 감각으로 전이시키며, 생태윤리와 생명 공동체의 회복을 강렬하게 욕망하는 시집이다.이번 시집은 해양 오염, 특히 플라스틱 문제를 중심축으로 삼아 인류 문명 전체의 이기적이고 병리적인 본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며, 생태파괴를 미학적으로 형상화한 "생태 리얼리즘 시학"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플라스틱은 문명화된 인간의 탐식, 욕망, 무감각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하이드'나 '속도전'이라는 현대적 기호와 결합해 과학기술 문명의 잔혹한 자화상을 비판한다.시집은 총 3부로 바다가 우는 방식, 바다의 혀, 바다 경전 등 각 편마다 자연과 인간, 상처와 치유, 고통과 희망이 교차하며 시인은 고통 속에서도 생명과 존재의 아름다움과 우리 모두가 서로의 위로가 되기를 노래한다. 특히 삶의 고통과 상처, 자연의 파괴와 회복 과정,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깊이 성찰한다.언어의 섬세한 감각과 시적 상상력, 사회적 메시지가 조화를 이루면서 독자에게 환경과 삶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시인은 시를 통해 생명의 존엄과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며,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본다.시인은 바다를 어머니, 여성의 몸, 인간의 내장으로 치환하면서 생태계의 파괴를 신체적 고통으로 감각화한다. "얼굴 자리에 엉덩이가 붙어" 있는 '기형의 자화상'은 환경파괴가 인간 자신의 파괴임을 알리는 역설적 형상이다. '우아한 샥스핀', '플라스틱 아기', '십자가는 검다' 등의 제목만 보아도 윤리와 미학, 종교적 상징이 교차한다. 시인은 잔혹하고 혐오스러운 이미지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감각적으로 밀착시켜 독자에게 불쾌감과 각성을 동시에 유발한다."세수하다 거울을 보니 얼굴 자리에 엉덩이가 붙어있어요/ 엉덩이에서 하루 치의 반성이 쏟아져요/ 몇 년 전부터 해결하지 못한 플라스틱 숙변도 섞여 있어요/ 비명도 못 지르고 플라스틱에 질식한 바다/ 몸부림치던 비명이 엉덩이로 다시 태어났어요// 얼굴이 뭉그러진 바다/ 머리를 산발하고 몸을 기울인 채 앓고 있어요/ 올 풀린 스웨터처럼 잔영만 남은 포말/ 한때 철썩이며 사랑하고 번성했던 저 육체는/ 이제 거꾸로 뒤집힌 반어법/ 바람이 일없이 발길질을 해대도 비명도 못 지르는 검은 침묵/ 언로가 막힌 통증은 역주행을 택했어요/ 엉덩이로 비명을 지르기로 한 거죠"(시 '바다가 우는 방식' 중 일부)시인은 고통받는 바다를 십자가에 매달린 어머니로,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폭탄 장치로 묘사하며 구원 불가능한 시대의 아이러니를 폭로한다. 제어장치가 없는 문명의 죄, 자연의 파괴와 재생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탐구한다.김종 시인은 "전숙의 '바다가 우는 방식'은 단순한 환경생태시집이 아니라 인류의 자기학대를 고발하는 '문명서사시'다"라며 "감정의 과잉을 누르고 도덕적 통점의 날카로운 각성으로 자연을 연민하고 지구촌 공동의 고통에 침잠한다"고 평했다.전숙 시인은 장성에서 태어나 전남대 간호학과와 동신대 한국어교원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시집 '나이든 호미' '눈물에게' '이버지의 손' 등을 펴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 · '5월 광주' 알린 김준태 시인 첫 소설집 발간
- · "제2차 진주성 싸움은 호남 의병 활약의 주무대"
- · AI시대 광주 문학 발전을 위한 포럼
- · 상상력과 허구 관점으로 쓴 '창작수필문학개론' 출간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