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작품 43년 만 복간해
근·현대사 희생자 위한 진혼곡

'…/빨치산이 지나가고 이 무슨 짓인가/세월이 지나가고 이 무슨 짓인가/아아, 초동리 마을은 콩을 볶은 듯이/양철판을 두드리는 듯이/그렇게 당하고 당해버리는 걸까/…'('지리산 여자' 중)
해남 출신의 김준태 시인이 시집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생명과문학)를 발간했다. 1981년 펴낸 시집을 43년 만에 복간한 것으로, 70여 편의 시가 실렸다.
김 시인에게 있어 '하느님'은 '죽은 우리를 살려주는 사람'이며, 그는 이 시대의 '하느님'을 보여주기 위해 시집을 복간하게 됐다. 시인의 작품들은 6·25 전쟁과 5·18광주 민주화운동 등 근현대사의 아픔과 상처를 특유의 애정어린 시선이 담긴 '사랑'으로 보듬는다. 그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통해서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하고 걸어가야 할 길을 찾았다"며 "그 길은 희망과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시인의 작품은 '생이지지(生而知之·나면서부터 알다)' 철학을 중심으로 한다. 그는 "개개인의 몸에 세상의 모든 종교와 4억5천만년 이상의 억겁의 세월이 체화돼있다"고 설명했다.
총 5부로 이뤄진 시집은 1부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2부 '초가', 3부 '살풀이', 4부 '지리산 여자', 5부 '보리밥'으로 구성됐다. 이 중 4부 '지리산 여자'는 식물성 장시로, 전문의 일부가 실렸다.

시인은 작시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시의 배경으로 '지리산' 대신 '무등산'을 쓰려 했다고 밝혔다. 그는 "1980년도에는 '무등산'을 넣으면 책이 출간되지 않았다"며 "언론사에 있었을 때 지리산에 취재했던 것을 떠올리며 시를 지었다"고 전했다.
'지리산 여자'는 한국전쟁 당시 한 처녀가 지리산 초동리에 사는 산신령을 만나 수많은 아이를 잉태하는 신화적인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이는 6·25 당시 희생자들을 위한 레퀴엠(진혼곡)으로, 생명력과 애정을 표현했다.
김 시인은 지난 1980년 6월2일 옛 전남매일 신문 1면에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실었다. 당시 계엄군 검열관은 105행의 시를 33행으로 축약했으며 제목 역시 ‘아아, 광주여!’로 수정했다. 이 시를 통해 김 시인은 ‘오월의 시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시인은 43년 만의 복간에 대해 "광주에서 뵈신 하느님께서 내 무너져 내리는 두 어깨를 다시 주물러주시는 것 같았다"며 "완전히 귀머거리가 된 베토벤이 '교향곡 제9번-환희의 합창' 작곡을 마치고 바로 온몸을 떨던 그 '환희의 순간'이 갈라진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스며들어가기를 기도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김치수 문학평론가는 발문에서 "사람에 대한 사랑 없이는 고향을 찾을 수 없고 '하느님'을 볼 수가 없는 것"이며 "한풀이가 사랑에 도달하게 되는 김준태의 시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시적 언어의 특수한 배열과 리듬으로 인해서 그 강력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1948년 해남에서 출생한 김준태 시인은 1969년 전남일보와 전남매일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월간 '시인'지에 '머슴' 등 5편을 통해 한국 문단에 나왔다. 시집 '참깨를 털면서', '국밥과 희망' 등 17권을 펴내고 일본어와 독일어로도 시집을 발간하며 국외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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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가난의 길을 걷는 순명의 삶
시는 때로 그리움과 회한, 눈물을 머금고 피어난다.무등일보 신춘문예 출신 함진원 시인의 시에는 살아온 시간과 삶의 불안, 우울을 이겨낸 삶의 편린이 녹아 있다.시력 30년을 맞은 함진원 시인이 네 번째 시집 '가만히 불러 보는 이름'(문학들刊)을 펴냈다. 60편의 시를 총 4부에 담았다.이번 시집은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여러 고통을 사회의식과 종교적 신앙으로 승화시키려는 의지의 산물이다.이는 시인이 얼마나 강한 의지로 이 고단한 인생의 강을 건너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그의 실존의식은 철학적인 깊이에까지 천착, 감동적 사유를 완성했고 개인의 문제를 사회문제에까지 결부시켜 삶의 고독을 이웃에 대한 연대로 극복해 내려는 안간힘을 경이로운 시적 성취로 풀어냈다."너무 오래 머물렀습니다/ 가만히 불러 보는 이름이 있어서/ 다행인 요즘/ 섬기는 일도, 사랑할 일도/ 잠깐, 쉬었다 가는 길/ 혼자면 어떻습니까// 요모조모 힘들면 힘든 대로/ 자발적 가난을 실천 중입니다// 이제 마지막 퍼즐 한 조각만/ 맞추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사람들과 인연도, 가족에게 헌신한 시간도/ 무탈하게 지나가면 감사하지요// 조금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남루하면 남루한 대로/ 홍매화 피었는데,/ 곧 사과꽃 소식 기다리는 중입니다"(시 '누구신지요' 전문)겸허하고 청빈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삶 속에서 꽃소식을 들으며 살겠다는 다짐이다.고재종 시인은 그것을 "섬기고 사랑하고 자발적 가난의 길을 가는 순명의 삶"이라고 명명했다.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실존적 불안과 우울 그리고 타나토스(그리스 로마 신화의 죽음의 신)를 사회정치학적 상상력으로 거뜬히 이겨내며 삶을 다진다. 그런데 그 다진 삶이 어떤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세속적 방식이라기보다, 섬기고 사랑하고 자발적 가난의 길을 가는 자체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인연도, 가족에게 헌신하는 시간도 힘들면 힘든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가꾸며 홍매화 피고 사과꽃 기다리는 자연의 이법을 따르고자 한다. 바로 그것이 '가만히 불러 보는 이름'의 그분에게 '섬기는 일' '사랑하는 일'이다.함진원 시인은 "오랜 겨울을 보내면서 마음은 의지할 데 없이 쓸쓸했지만, 고요가 깃들면서 캄캄한 밤은 지나고 아침이 왔다"며 "아침이 오는 길목에 꽃씨를 심으려고 한다. 힘들고 지친 순한 사람들과 환하게 웃고 싶다"고 말했다.그는 함평에서 태어나 조선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시 '그해 여름의 사투리 調'가 당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인적 드문 숲길은 시작되었네', '푸성귀 한 잎 집으로 가고 있다', '눈 맑은 낙타를 만났다'를 펴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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