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들에게 치유를 건네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입력 2024.12.16. 10:20 최민석 기자
첫 소설집 '화담' 낸 경번 작가
재난 통해 자식 잃은 이들에 위로 건네
내 안에서 끝나는 치유가 진정한 보약
진창에서 피어난 꽃 같은 언어 희망 줘

"이 모든 고통이 아마도 자기 자신을 통해서 달래진다는 것을 희미하게 깨달아 가고 있다."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이들 중 특히 자식을 먼저 잃은 여자들 모두가 멀쩡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없다.

이들은 일평생 가슴에 자식을 묻고 상처를 감춘 채로 순간순간을 버텨낸다.

그레서 이들에게 삶은 생존이라기보다 버팀의 연속이다. 최근 출간된 경번 작가의 첫 소설집 '화담'(다시문학刊)은 죄책감과 슬픔으로 얼룩진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희망의 작품이다.

'치유'는 그의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단어다.

각각의 작품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이번 소설들은 세월호와 이태원참사 등 재난을 통해 자식을 잃은 부모와 유가족에게 건네는 편지의 성격을 지닌다.

경번의 소설은 소금이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면 아픈 곳을 더 후벼 파듯 쓰리고 따갑다. 애써 감춰 두었던,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상처를 따갑게 한다. 상처가 난 자리가 여기라고 알려 준다. 속을 뒤집어 꺼내어 보게 만든다. 아픔을 직시하면서 한바탕 울게 만든다. 울고 나면 다시 잘 싸매어 깊은 곳에 넣어 놓을 수 있다. 쓰디쓴 칡뿌리도 계속 씹으면 단맛이 나는 것처럼 잘 넣어 둔 상처를 오래 곱씹으면 달아진다. 달아진 상처는 나를 살게 한다.

치유는 내 안에서 상처를 씹고 씹어서 달아질 때 시작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때로 우리는 타자의 공감이나 지지로 슬픔을 위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아픈 기억들은 아무도 나를 위로할 수 없다. 온전히 나만이 위로할 수 있는 슬픔이 있다. 그러므로 나로부터 출발해서 내 안에서 끝나는 치유야말로 가장 온전한 치유라고 생각한다.

소설집에는 '마침내, 서서히 빈 집'을 비롯, '사우다드', '화담', '진홍토끼밭에 밤이 내리면', '연화, 마주치다', '너를 기억한다', '굿문, 시인의 까만 이슬' 등 7작품이 수록됐다.

깊은 막장의 심연에서 채굴해 올린 그녀의 언어는 유독 꽃의 이미지를 자주 사용한다. 이는 그녀가 하릴없이 마주하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실낱같은 염원을 강렬하게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그 쓰디쓴 진창에서 피어난 꽃 같은 언어들이 여러분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겉으로는 무심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지만, 강렬한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 소설집은 강력한 최면제로 삶을 위로한다.

그의 글은 상처를 남기는 가시처럼 독자의 마음 깊숙이 박히고, 한 번 찔린 마음은 잊을 수 없다. 그녀의 글은 생생하게 아스라한 슬픔과 연민 그리고 여운의 향기를 머금고 있다.

작가인 필명인 '경번'은 허난설헌의 호이다. 작가가 광주여대 재학 시절 한문학 전공 교수가 지어줬다고 한다.

경번 작가는 대학 시절 학보사에서 활동했다. 그 때의 그 경험이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를 지도한 채희윤 교수는 "여대라는 특수성이 작동할 때 한정 없이 수렁으로 낙하하기도 했다"며 "그 과정을 통해 경번 작가의 여러 부분을 잘 볼 수 있었고 백의종군이라는 곤경에서 너끈히 이겨 내어 준 그에게 아직도 고맙다"고 말했다.

경번 작가는 "이제 익숙한 것들과 결별의 시간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서성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며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이들을 소설 속에 담아내며 그들과 함께 걸어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그는 광주여대에서 공부했다. 글쓰기와 문학·독서·영화·사진(통합매체)을 활용한 심리상담을 가르치며 상담사이자 치유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 95년 한국여성문학상, 2020년 '문학과 의식' 신인상 수상, 동인집 '신소설' 출간, 올해 김포문화재단 예술활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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