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카펫·깜짝 한국어 소개···'한강'이 남긴 것

입력 2024.12.12. 10:54 최소원 기자
10일 '2024 노벨상 시상식' 열려
한강 작가, 검은 드레스 입고 등장
한국인 최초로 '블루카펫' 밟아
연회 사회자 깜짝 한국어 소개도
한강(왼쪽) 작가가 10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브 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 문학상을 받고 있다. 한강은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뉴시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한국 문학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다. 시상식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블루카펫'을 밟고 연회장에서는 한국어가 울려 퍼지는 등 한국 문학 역사에 큰 방점을 찍은 순간이었다.

지난 10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는 '2024 노벨상 시상식'과 연회가 진행됐다.

한강 작가는 한국인 최초로 '블루카펫'을 밟았다. 노벨상 시상식이 콘서트홀에서 열리기 시작한 것은 1926년으로, 한 작가는 약 한 세기 만에 처음으로 블루카펫을 밟은 한국인 수상자이다. 지난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시상식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렸다.

노벨의 유언에 따라 노벨상 수상 분야는 물리학, 화학, 생리학, 문학, 경제학 순서로 정해졌다. 각 분야 수상자들의 시상 이후 콘서트홀에는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울려 퍼졌다. 한 작가의 시상 전에는 페르 라게르크비스트 작사 '편지가 도착했다'가 소프라노의 아름다운 하모니로 공연장을 채웠다.

이날 엘렌 맛손 노벨 문학상위원회 위원은 한 작가의 수상 축하 연설을 진행했다. 당초 한국어로 호명될 예정이었던 시상식 멘트는 최종 준비 단계에서 영어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국어 번역 의뢰를 받은 박옥경 번역가는 "연설문은 전통대로 스웨덴어로 낭독하고 마지막 호명 시 수상자 출신국 모국어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까지는 대부분 서양 언어권이었다"며 "마지막까지 한국어를 연습했지만 워낙 생소해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스웨덴어로 연설을 끝낸 맛손 위원은 영어로 "디어(Dear) 한강, 한림원을 대표해 2024년도 노벨상 수상에 진심으로 따뜻한 축하를 전하게 돼 영광이다"며 "이제 국왕 폐하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검은 드레스를 입은 한 작가가 단상 중앙에 서자 객석에 있던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이 한 작가에게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건네자 서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나눴다.

스톡홀름 시청에서 이어진 '2024 노벨상 시상식' 연회장에서는 한국어가 울려 퍼졌다.

작가 한강(가운데)이 10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해 다른 부문 수상자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있다. 한강 작가는 이날 칼 구스타브 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뉴시스

이날 연회를 진행한 스웨덴 사회자는 서툰 한국어로 한강 작가를 소개했다. 그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소개하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는 언론사에 사전 배포된 프로그램 큐시트에는 없던 깜짝 소개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회는 스웨덴 국왕과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를 비롯한 1천250여 명의 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한강 작가는 스웨덴 마들렌 공주의 남편인 크리스토퍼 오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입장했다.

행사는 3코스로 이뤄진 만찬 식사와 스웨덴 대표 싱어송라이터인 랄레(Laleh)의 무대, 전문 댄스그룹의 축하 공연 등으로 이어졌다.

한 작가는 연회 끝 무렵 연회장 중앙으로 이동해 4분여 간 수상 소감을 말했다.

영어로 밝힌 수상소감에서 그는 어린 시절을 회고하기도 했다. 한 작가는 "여덟살에 갑작스러운 폭우를 피하는 사람들을 보며 각자 자신만의 '나'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고 이는 수많은 '나'라는 존재를 한꺼번에 경험하는 순간이었다"며 "가장 절실하고 시급한 질문들을 '언어의 실타래'에 맡기며 다른 존재들에게로 보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은 수천 년 동안 문학이 던져온 질문이다"며 "가장 어두운 밤에도 우리가 무엇으로 이뤄진 존재인지 묻는 언어가 있고, 지구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1인칭 시점을 상상하게 만드는 언어가 서로를 연결해준다"고 말했다.

작가 한강(왼쪽)이 10일(현지시각) 스웨덴 왕족 크리스토퍼 오닐과 함께 스톡홀름 시청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자 만찬장에 입장하고 있다. 한강 작가는 앞서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브 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뉴시스

마지막으로 그는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 작가는 다문화 학교 방문과 현지 번역가와의 대담 등을 끝으로 일주일간의 '노벨 주간' 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1970년 광주에서 소설가 한승원의 딸로 태어난 한강 작가는 초등학생 때 서울로 올라가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계간 '문학과 사회'를 통해 등단,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로 당선됐으며 1995년에는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펴냈다.

2004년 계간 '창작과 비평'에 연재한 소설을 모아 2007년 발표한 '채식주의자'는 2016년 그에게 아시아 최초 영국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자라는 영예를 안겨줬다. 이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로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2018년 '채식주의자'로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제주4·3을 다룬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한국인 최초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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