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사스 지음, 윤삼호 옮김|교양인|452쪽
정신의학의 성채 폭파한 고전서
사회의 잠재적 위험을 경고하다
강제 입원과 범죄자 면제 수단 등
정신병의 언어는 '오용'되고 있다
신체병과 달리 객관적 검증 어려워
사회문화적 구성물이자 창조된 것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의하면 정신병 환자는 2017년 340만 명에서 2022년 465만 명으로 5년 사이 37% 늘어났으며, 우울증 치료를 받는 사람은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겪는 갈등과 감정을 포착하는 데 정신의학의 지식과 치료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일상을 침범하는 과잉 의료화와 정신병 환자를 양산하는 정신의학 분류 방식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반정신의학의 선구자인 저자는 책에서 '정신병은 은유'라고 선언하며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들이댔다. 그는 현대 정신의학이 정신병 개념을 이용해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근본적으로 억압하고 훼손하는 방식을 꿰뚫어 봄으로써 정신의학의 토대를 뒤흔들었다. 이 책은 격리, 방치, 잔인한 실험으로 점철된 20세기 정신의학의 비인간적 관행을 되돌아보게 하고, 결코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율성과 단지 병으로만 치환할 수 없는 인간의 고통에 주목하게 한다.
저자의 주된 관심은 '신경증', '정신분열증', '히스테리' 같은 정신병의 언어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강제 입원과 강제 치료의 대상으로 격하하고, 범죄자들을 심신 미약으로 정당화해 잘못된 행위를 면제해주는 수단으로 오용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의료화의 구조를 '치료 국가'라는 개념으로 포착해 비판하고, 일평생 정신의학의 지나친 권력 행사를 법적으로 제한하기 위한 활동을 펼쳤다.
그에 따르면 정신병은 신화이자 은유다. 다시 말해 정신병은 개념일 뿐 실체가 아니다. 근대정신의학은 과학적 방법으로 질병을 확인하는 데서 시작된 게 아니라 새로운 질병 구성 기준을 창조하는 데서 시작됐다. 신체병은 생물학적 이상을 통해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지만 정신병은 그러한 증거가 없으며 인간의 행동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진단된다. 따라서 신체병은 발견되고 증명됐지만 정신병은 발명되고 선언된 것이다.
또한 정신병은 사회문화적 구성물이다. 근대 사회 이전에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행동은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증표였지만, 근대 사회는 문화적 규범, 가치관, 사회적 기대에 따라 '비정상적' 인간 행동을 질병으로 정의했다. 하지만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과학적 기준이나 절차는 없었으며 문화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 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정신병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전통적인 병리학적 질병 정의에 의하면 정신병은 성립할 수 없다고 결론짓고, 현대의 정신의학을 연금술, 점성술 같은 '유사 과학'으로 비판한다. 생물학적 정신의학은 인간의 고통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문화적 요소에 대한 이해를 결여한 채 생물학적 환원주의에 빠져 있고, 정신분석은 무의식이라는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비과학적 관념에 기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1961년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되자 학계와 시민 사회에서 큰 논란이 일었다. 주류 정신의학계와 보건 당국은 정신의학을 부정하는 저자의 입장에 거세게 반발했고, 그를 교수직에서 해임하라는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정신병의 실체에 관한 논쟁에 불을 붙였으며, 비판적 사회 담론과 운동에 지적인 영감을 줬다. 국내에서 처음 출시되는 이번 한국어판은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명료한 옮긴이 해제가 포함돼 있다.
저자는 의사-환자 관계에 내재한 권력 역학과 강압의 가능성을 의식하며 '정신의학의 윤리'를 철저히 강조했다. 그는 정신과 의사가 치료 환경에서 내담자의 자율성과 책임을 중요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봤는데, '비정상적' 행동을 기준으로 정신병을 진단하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은 병리화·낙인화돼 질병의 증거로 간주되며, 그의 자유는 제한되고 범죄 행동에 대해서도 책임이 면제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정신병 진단이 개인을 자율적인 행위자가 아니라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기 쉽다는 사실을 의사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정신병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학과 과학의 언어만으로는 부족하고 문학의 언어, 철학의 언어, 특히 '당사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 "제주의 사람과 풍경 글과 그림에 담았어요" 384 시인에게 시는 밥줄이자 자신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과 1권의 첫 시화집을 출간, 왕성한 창작활동과 필력으로 자신만의 시탑(詩塔)을 쌓아가고 있다.박노식 시인이 자신의 대학동문인 이민 화가와 두번째 시화집 '제주에봄'(스타북스刊)을 펴냈다.이번 시화집에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문화유적, 박물관, 카페 등을 여행하며 두 사람이 쓰고 그린 100편의 글과 100편의 그림이 실려 있다.각각의 글과 그림은 제주의 숨겨진 풍경과 매력을 새롭고 다채롭게 펼쳐냈다.지금은 국내 최고의 휴양지이지만 제주는 눈부신 풍광 속에 4·3이라 불리는 역사적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슬픔의 땅이자 사람과 자연, 바다가 치유와 행복을 건네는 '천국'이다.박노식 시인과 이민 화가는 책머리에서 책에 담고자 하는 뜻을 전한다."오직, 시만 쓰고 오직, 그림만 그리는 순한 두 사람이 만나서 세상에 하나뿐인 아름다운 책을 낳았습니다. 제주는 슬픔의 섬이고 예술적 상상력의 바다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픈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곳의 아포리즘과 그림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었다면 당신과 우리는 한 수평선에 누워서 낮의 흰 구름과 밤의 푸른 별을 함께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첫 장 이민 작가의 작품 '밤 11시30분 솔동산로'에 입힌 박노식 시인의 글을 보자."홀로 밤길을 걷는 사람은/ 가로등 아래에서 어떤 슬픔을 찾으며/ 누군가를 오래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요."익숙한 길이건 낯선 거리건 우리는 어두운 밤 홀로 걸을 때 누군가를 만났던 장면과 감정을 떠올린다.생각은 기억을 부르고 그 기억은 흘러버린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가며 그 때의 그 장면들을 되새기게 한다.그것은 때로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혹은 추억과 후회로 가슴을 후벼파기도 한다.박 시인은 이민 작가와 함께 제주 곳곳의 공간과 풍경을 포착한 순간과 그림에 담긴 모습을 오버랩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느낌과 서정, 서사를 입혔다.그는 비 내리는 서귀포 명동거리에서 먹먹한 가슴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자신과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기억의 고통을 감내한 인내로 내일을 기약하기도 한다.'신서귀포 메밀꽃밥'에서는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듯 피어난 꽃을 보며 상처도 삶의 일부임을 말한다.그의 시선은 계속 이어진다. 간밤의 고통을 이겨내고 떠오른 아침햇살을 보며 이별의 아픔도 영원하지 않음을 이야기하며 자신을 붙들지 않고 놓아주지 않는 기억 하나가 있다면 이 또한 자기의 전부였음을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임을 보여준다.이렇듯 각각의 글과 그림에는 사실적 풍경 속에 담긴 화폭에 입힌 작가의 손길과 시인의 눈으로 건져올린 그림 속 언어들이 슬픔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위로와 희망을 건네준다.박노식 시인은 "보석 같은 제주도 곳곳의 풍경과 공간들을 담백한 필치와 색채가 어우러진 이 민 작가의 그림을 매개로 그때 그때의 느낌의 단상들을 간결한 시적 언어로 고백하듯 써 냈다"며 "고단한 삶 속에서 잠시나마 하늘과 구름, 별을 보듯 쉬어가는 마음으로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박노식 시인은 어느 봄날, 꿈속의 그에게 불현듯 나타난 또 다른 그가 했던 말 "한 권 시집도 없이 위로 올라오지 마라!" 그는 이 현몽을 얻고 생업을 접었다. 독한 마음으로 화순군 한천면 가천마을에 둥지를 틀고 오직 시만 썼다. '유심'에 '화순장을 다녀와서' 외 4편으로 신인상을 받고 등단,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이민 화가는 조선대학교 미대 회화과와 일본 동경 다미미술대학 판화과 석사학위 취득 후 국립현대미술관 아카데미와 국내 여러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작가는 자신만의 '판타블로 : 판(판화)+타블로(서양화)'라는 특수한 기법을 고안, 90회가 넘는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제주도 그림만 1천점을 목표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사진=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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