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의 비인간적 관행을 살피다

입력 2024.11.14. 13:36 최소원 기자
정신병의 신화
토머스 사스 지음, 윤삼호 옮김|교양인|452쪽

정신의학의 성채 폭파한 고전서
사회의 잠재적 위험을 경고하다

강제 입원과 범죄자 면제 수단 등
정신병의 언어는 '오용'되고 있다

신체병과 달리 객관적 검증 어려워
사회문화적 구성물이자 창조된 것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의하면 정신병 환자는 2017년 340만 명에서 2022년 465만 명으로 5년 사이 37% 늘어났으며, 우울증 치료를 받는 사람은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겪는 갈등과 감정을 포착하는 데 정신의학의 지식과 치료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일상을 침범하는 과잉 의료화와 정신병 환자를 양산하는 정신의학 분류 방식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반정신의학의 선구자인 저자는 책에서 '정신병은 은유'라고 선언하며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들이댔다. 그는 현대 정신의학이 정신병 개념을 이용해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근본적으로 억압하고 훼손하는 방식을 꿰뚫어 봄으로써 정신의학의 토대를 뒤흔들었다. 이 책은 격리, 방치, 잔인한 실험으로 점철된 20세기 정신의학의 비인간적 관행을 되돌아보게 하고, 결코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율성과 단지 병으로만 치환할 수 없는 인간의 고통에 주목하게 한다.

책 '정신병의 신화'는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율성과 병으로만 치환할 수 없는 인간의 고통에 주목하게 한다. 완벽을 향한 욕망이 집착이 돼 광기에 사로잡히는 영화 '블랙스완' 스틸컷.

저자의 주된 관심은 '신경증', '정신분열증', '히스테리' 같은 정신병의 언어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강제 입원과 강제 치료의 대상으로 격하하고, 범죄자들을 심신 미약으로 정당화해 잘못된 행위를 면제해주는 수단으로 오용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의료화의 구조를 '치료 국가'라는 개념으로 포착해 비판하고, 일평생 정신의학의 지나친 권력 행사를 법적으로 제한하기 위한 활동을 펼쳤다.

그에 따르면 정신병은 신화이자 은유다. 다시 말해 정신병은 개념일 뿐 실체가 아니다. 근대정신의학은 과학적 방법으로 질병을 확인하는 데서 시작된 게 아니라 새로운 질병 구성 기준을 창조하는 데서 시작됐다. 신체병은 생물학적 이상을 통해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지만 정신병은 그러한 증거가 없으며 인간의 행동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진단된다. 따라서 신체병은 발견되고 증명됐지만 정신병은 발명되고 선언된 것이다.

또한 정신병은 사회문화적 구성물이다. 근대 사회 이전에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행동은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증표였지만, 근대 사회는 문화적 규범, 가치관, 사회적 기대에 따라 '비정상적' 인간 행동을 질병으로 정의했다. 하지만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과학적 기준이나 절차는 없었으며 문화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 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정신병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전통적인 병리학적 질병 정의에 의하면 정신병은 성립할 수 없다고 결론짓고, 현대의 정신의학을 연금술, 점성술 같은 '유사 과학'으로 비판한다. 생물학적 정신의학은 인간의 고통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문화적 요소에 대한 이해를 결여한 채 생물학적 환원주의에 빠져 있고, 정신분석은 무의식이라는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비과학적 관념에 기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책 '정신병의 신화'는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율성과 병으로만 치환할 수 없는 인간의 고통에 주목하게 한다. 완벽을 향한 욕망이 집착이 돼 광기에 사로잡히는 영화 '블랙스완' 스틸컷.

1961년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되자 학계와 시민 사회에서 큰 논란이 일었다. 주류 정신의학계와 보건 당국은 정신의학을 부정하는 저자의 입장에 거세게 반발했고, 그를 교수직에서 해임하라는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정신병의 실체에 관한 논쟁에 불을 붙였으며, 비판적 사회 담론과 운동에 지적인 영감을 줬다. 국내에서 처음 출시되는 이번 한국어판은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명료한 옮긴이 해제가 포함돼 있다.

저자는 의사-환자 관계에 내재한 권력 역학과 강압의 가능성을 의식하며 '정신의학의 윤리'를 철저히 강조했다. 그는 정신과 의사가 치료 환경에서 내담자의 자율성과 책임을 중요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봤는데, '비정상적' 행동을 기준으로 정신병을 진단하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은 병리화·낙인화돼 질병의 증거로 간주되며, 그의 자유는 제한되고 범죄 행동에 대해서도 책임이 면제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정신병 진단이 개인을 자율적인 행위자가 아니라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기 쉽다는 사실을 의사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정신병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학과 과학의 언어만으로는 부족하고 문학의 언어, 철학의 언어, 특히 '당사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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