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51개국 이민자들이 거리로 나선 까닭은

입력 2024.08.29. 13:31 최소원 기자
빵과 장미
브루스 왓슨 지음, 홍기빈 옮김|빵과장미|500쪽
민족·언어·직종·성별을 넘어
연대의 힘으로 역사 바꾼 파업
침묵 속 잠긴 100여 년 전 그날
노동자의 기록 샅샅이 파헤쳐
오늘날도 목마른 '인간다운 삶'
우리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빵과 장미'는 약 100년 전 51개국에서 '약속의 땅'을 찾아가 일하고 투쟁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복원해 21세기를 사는 우리를 치열한 삶의 현장, 투쟁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아이슬란드에서 열린 불평등한 임금과 성차별 종식 촉구를 위한 파업. 뉴시스

'이처럼 사람이 죽어가는 이야기들도 신문은 그냥 한두 줄로 처리해버렸기에, 파업 직전의 토요일 저녁 에식스 스트리트의 한 상점에 우드 공장 노동자 한 사람이 제 발로 걸어들어가 갑자기 쓰러져 죽는다 해도 가족이나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 말고는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또 다른 노동자들은 이를 주목했다.'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파업 중 하나인 '로렌스 섬유 파업'은 1912년 1월 12일 한겨울에 일어났다. 1912년 매사추세츠 주 정부는 노동시간을 주 56시간에서 54시간으로 줄였다. 공장주들은 줄어든 노동시간을 벌충하기 위해 기계의 가동 속도를 높였고 임금까지 깎아버렸다. 깎인 임금은 24센트, 빵 세 덩이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공장 여기저기에서 "임금이 적다, 임금이 줄었다"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맨 먼저 폴란드 여성 노동자들이 작업을 거부하고, 모두 함께 "나가자!"고 외치기 시작했으며 이에 동조한 노동자들이 우르르 길거리로 쏟아져나갔다. 목격자의 회상에 따르면 이 파업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전기 불꽃'처럼 시작됐다. 순식간에 1만 명으로 불어난 파업 대오는 미국인이 아니었다. 다수가 영어를 모르는 전 세계 51개국에서 온 이민자들로 각자 모국어로 소리 높여 외쳤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의미하는 빵과 풍요로운 문화를 즐기는 삶을 의미하는 장미. 노동자의 생존권과 인간다운 삶의 염원을 이보다 더 강렬하게 압축해 호소력 있게 빚어낸 말이 또 있을까? 사실 '빵과 장미'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1911년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은 '빵과 장미'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우리는 행진하고 행진한다/숨져간 무수한 여성들이 울부짖으며 함께 간다/우리는 아득한 옛날부터 그녀들이 부르던 빵의 노래를 부른다/허드렛일에 지친 그녀들의 정신은 예술도 사랑도 아름다움도 거의 알지 못했다/맞다, 우리는 빵을 얻기 위해 싸운다, 하지만 우리는 장미도 얻기 위해 싸운다'

오펜하임의 시와 여기에 곡을 붙인 주디 콜린스의 노래, 그리고 지치지 않고 노동 계급의 삶과 투쟁을 이야기하는 켄 로치의 영화에서 우리는 '빵과 장미'를 만난다. 또한 미국과 유럽에는 빵과 장미라는 이름의 사회 프로그램이 수백 개나 되고 이 사건의 본고장인 로렌스에서는 배고픈 사람에게 따뜻한 밥을 주는 음식 창고 '빵과 장미'가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로렌스 파업' 혹은 이 파업에서 여성 노동자가 "우리에게 빵을 달라, 장미를 달라"라고 쓰인 피켓을 들었다 해서 '빵과 장미 파업'이라고 불리는 이 투쟁이 어떻게 일어났고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역사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십 년 세월이 흘러 그날의 진실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하나 세상을 떠났고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다시 기록할 책임은 후손들과 역사가들에게 남겨졌다.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멋진 티셔츠처럼 유행으로 소비되며, 이미지와 실체가 빵과 장미라는 기호 뒤에 숨겨진 투쟁의 전체상을 복원하기 위해 저자는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꼼꼼히 수집해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1912년의 로렌스로 인도한다.

켄 로치가 영화 '빵과 장미'에서 주인공의 입을 통해 외치듯이 빵도 장미도 결코 거저 얻을 수는 없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난을 겪고 죽어갔음에도 지금 우리 역시 빵에, 장미에 여전히 목이 마르다. 1912년 로렌스 노동자들의 투쟁에 '빵과 장미 파업'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일하는 우리'가 모든 장벽을 넘어 연대하고 간단없이 투쟁함으로써 비로소 빵과 장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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