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는 오늘도 진행되고 있다

입력 2024.08.22. 15:18 최소원 기자
세뇌의 역사
조엘 딤스데일 지음, 임종기 옮김|에이도스|452쪽

정신 통제·조작 위한 기술 '세뇌'
세계를 뒤흔든 세뇌의 역사 추적

한국전쟁·가짜뉴스 등의 이야기
상상 초월하는 사건들의 '오늘'은

정신 조종 위한 방법 갈수록 정교
인터넷 통한 정보 수용의 경고도


'2016년 미국 대선 캠페인 기간 동안 소셜 미디어에서 민주당 관계자들이 워싱턴 DC에 소재한 '코밋 핑퐁' 피자 가게에 근거지를 둔 아동 성매매 조직에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피자 가게는 수백 건의 협박을 받았고,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28세 남성은 소총을 소지한 채 워싱턴 DC로 찾아와 가게에 총을 난사하기도 했다. 2주 후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힐러리 클린턴 선거 캠프 당국자들이 아동 성추행과 학대를 동반한 악마 숭배에 연루됐다고 하는 소셜 미디어의 게시물을 믿느냐고 물었다. 트럼프 지지자의 46퍼센트, 심지어 클린턴 지지자의 17퍼센트가 믿는다고 대답했다.'

한 인간의 자유와 의지에 반하여 다른 생각을 갖게 하도록 강제할 수 있을까? 과연 세뇌는 가능한 것일까? 미국의 저명한 정신의학자인 저자는 중세 시대의 종교재판부터 과학적 실험을 통해 행동을 조건화하려 했던 파블로프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유령처럼 늘 따라다녔던 세뇌의 역사를 추적한다. 이단을 굴복시키기 위해, 새로운 인간(소비에트 인간)을 창조하기 위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포로와 범죄자들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때로는 신흥종교의 신도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사용된 강압적 설득의 기술을 세상을 뒤흔들었던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파헤친다.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조작하기 위한 정부기관과 과학자들과 범죄자들과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와 함께 한물간 비과학적 개념이라는 평가를 받는 '세뇌'가 현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지난 2016년 미국 뉴욕대 학생들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3차 TV토론 중계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잔혹한 고문과 심문, 수면 박탈, 행동 조건화, 사상 주입, 가짜뉴스와 소셜 미디어 등 세뇌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인류의 온갖 어두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이야기의 배후에는 정부기관의 관계자와 군대와 행동과학자, 정신과 의사, 신경과학자, 범죄자들과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이 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진행된 이른바 'MK울트라 프로젝트' 중에는 아파트 한 채를 빌려 매춘부를 고용, 고객들을 대상으로 몰래 LSD를 탄 음료를 복용하게 하거나 공중에 에어로졸 형태로 LSD를 뿌린 실험도 있었다. 원하는 정보를 캐내는 데 환각물질인 LSD가 효과가 있는지 보기 위한 실험이었다. 주동자는 놀랍게도 CIA였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과 북한에 억류된 미군 포로들 중 자유세계로 귀환하지 않은 군인들이 등장하자 공산진영의 세뇌 공작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생각한 미국 정부는 비밀리에 대규모 자금을 학계에 쏟아부으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저자는 이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들을 파헤치면서 은밀하고도 강압적인 설득의 기술이 어떻게 정교하게 다듬어져 현대의 신경과학과 가짜뉴스와 소셜 미디어까지 이어지는지를 살펴본다.

지난 2016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주립대에서 학생들이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2차 TV토론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한국전쟁 당시 중국과 북한의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사상 개조 프로그램에 대해 제2차 세계대전 때 OSS에서 심리전 전문가로 일했던 기자 에드워드 헌터는 '자유세계의 정신을 파괴하여 자유세계를 정복하려는 무시무시한 공산주의의 새로운 전략'이라며 '세뇌(brainwashing)'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한물간 데다 비과학적 용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세뇌라는 용어가 갖는 은유는 아직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21세기에 더욱 발전한 기술들로 인해 세뇌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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