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억 5천만벌의 청바지가 만든 최악의 재난

입력 2024.05.16. 15:10 최민석 기자

지속 불가능한 패션산업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맥신 베다 지음/ 학고재/ 400쪽

"농약과 화학비료에 뒤범벅된 텍사스 목화밭부터 염료와 화학약품의 강이 흐르는 중국의 방직공장들, 밖에서 문을 잠그고 노동자를 몰아붙이는 방글라데시의 옷 공장과 로봇처럼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온라인 마켓 아마존 물류센터, 그리고 전 세계의 폐기물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르완다의 쓰레기 산까지…"

패션 기업가이자 연구자인 맥신 베다가 세계인의 아이콘인 청바지의 삶을 따라가며 우리가 입는 옷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사라지는지를 눈앞에 펼쳐 보인다. 최근 나온 '지속 불가능한 패션산업에 이의를 제기합니다'는 우리 일상에 밀착한 만큼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패션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이 실상 어떻게 통제되고 차단되는지, 유행하는 청바지 한 벌을 쇼핑한 나의 클릭 습관이 극단적으로 불투명한 프로세스를 거쳐 어떻게 지구 환경을 결딴내는지가 낱낱이 드러난다.

"나는 청바지의 삶과 죽음을 추적하고 싶었다. 농장부터 쓰레기 매립지까지, 흔하디흔하면서도 기능과 스타일로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청바지 한 벌의 일생을 따라가 보는 것. ……인정하든 안 하든, 장바구니에 옷을 골라 담는 이상 우리는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옷 뒤에 숨은 의류업계와 무역 법규를 만드는 정부에 합당한 요구를 하는 것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맥신 베다)

내 옷장에 청바지는 몇 벌이나 있을까?

전 세계에서 1년에 팔리는 청바지가 무려 12억 5천만 벌, 미국 여성들은 청바지를 평균 일곱 벌 갖고 있다고 한다. 패스트 패션의 상징인 H&M 회장은 창업자의 아들로 자산이 170억 달러가 넘으며, 몇 해째 지구상의 부자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청바지는 세계 패션업계의 큰 축이고, 패션계는 세계 경제의 주역이다.

섬유 생산 → 방적·방직 → 재단·재봉 → 유통 → 구매 → 폐기로 이어지는 것이 청바지의 삶과 죽음이다.

FILE - In this Nov. 29, 2019, file photo, Levi's jeans are displayed at a Kohl's store in Colma, Calif. Levi필셲 says it will cut 700 office jobs, or about 15% of its worldwide corporate workforce, as the jeans seller deals with a sharp drop in sales due to the coronavirus pandemic. (AP Photo/Jeff Chiu, File)

오늘 입은 청바지를 한번 살펴보자. 하루 만에 문 앞까지 가져다주는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산 청바지. 그런데 그 청바지가 실제로 어디서 왔는지, 면화 농사부터 방적, 직조, 염색, 포장, 배송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몇 천 킬로미터의 여정을 거쳐 내 손에 들어왔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다. 채 몇 번 입지도 않고 싫증난 옷가지가 분리수거함에 들어간 이후 어떻게 되는지도 알지 못한다. 더 이상 미국에서는 청바지를 만들지 않는다. 미국에서만 한 해에 청바지 4억 5천만 벌이 팔리지만 이 가운데 '미국산'은 없다. 1960년대 리바이스 청바지를 샀다면 그건 미국에서 만든 제품이다.

패션 산업은 극단적으로 불투명한 레이더 바깥세계에서 철저하게 실체를 숨긴 채 돌아가고 있다. 쇼핑이 편리해지고 선택지가 많아지는 만큼 한 땀 한 땀 켜켜이 내재된 폐해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저자는 "모든 옷이 평등하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의류 산업은 민감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외교와 똑같이 구조적으로 인종, 젠더, 계급, 지역 등 각종 차별 위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패션은 원료 생산부터 의류 제작, 제품 유통, 폐기물 처리까지 시종일관 바닥 찍기 경쟁이다.

쇼핑할 때 우리는 "나중에 중고로 팔면 돼"라고 생각하고, 중고 마켓에서 사는 사람은 "새 물건을 산 건 아니니까"라고 합리화한다. 이런 사고방식이 무한 소비를 부추긴다. 우리는 쓰던 물건을 좋은 뜻으로 기부할 때 그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 가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되길 원하며, 또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쓸모없다고 판단해서 기부하지만, 누군가 그 물건을 유용하게 쓰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부하는 엄청난 규모의 중고품, 특히 저가 의류에 대한 세계적 수요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게 진실이다. 그 결과 우리의 좋은 의도는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쓰레기와 악몽 같은 환경을 안겨주고 있다. 물론 썼던 물건을 사는 게 신상을 사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사지 않는 게 단연코 가장 좋다.

도발적인 취재, 전례 없는 데이터, 날카로운 통찰과 방대하기 이를 데 없는 연구로 완성된 이 책은 청바지 한 벌을 실마리 삼아 글로벌 경제 속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불편한 진실과 그에 따른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이야기한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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