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하며 해답을 찾아가는 젊은날의 버핏

입력 2024.04.25. 14:37 최민석 기자
버크셔 해서웨의 재탄생
제이컵 맥도너 지음·변영진 옮김/ 애프엔미디어/ 268쪽

버크셔 해서웨이는 1955년 미국 뉴잉글랜드의 주요 섬유공장 두 곳의 합병으로 탄생했다. 이후 1961년까지 누적 적자를 기록했는데도 기존 경영진은 자산을 처분해 마련한 자금으로 계속 배당을 지급하고 자사주를 매입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재탄생' 저자 제이컵 맥도너는 당시 재무제표와 연차보고서를 분석해, 자본이익률이 낮은 섬유사업에 머무는 한 이것보다 나은 자본 배분의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1962년 워런 버핏은 버크셔 주가가 저평가되었다고 판단하고 당시 운용하던 버핏파트너십을 통해 처음 버크셔 주식을 매수했다. 1965년 지분율이 50%를 넘어서며 지배권을 확보했고 버핏은 버크셔 이사회에 합류한다. 훗날 그는 이것이 '최악의 투자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특히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사례를 통해 그것이 얼마나 최악이었는지를 짚는다.

버핏이 경영에 참여한 지 불과 2년 만에 버크셔는 섬유사업에서 비용을 절감하고 투입 자본을 거둬들여 무차입기업이 된다. 저자는 1967년 보험사 '내셔널 인뎀너티'를 인수하며 섬유 외 사업으로 처음 진출한 것이 버크셔의 '재탄생'에 아주 중요했다고 판단한다. 보험금을 지급하기 전까지 보험사가 '보관'하는 '플로트'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것이 어떠한 의미였는지를 분석한다. 인수 자금을 조달한 방식까지 세세히 짚어내는 세심함이 매력이다.

1969년에는 상업은행 '일리노이 내셔널뱅크 앤드 트러스트 컴퍼니'를 인수한다. 버크셔가 더 준수한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내는 사업으로 다각화하게 된 계기다.

저자는 1968~1978년의 일리노이 내셔널뱅크 재무제표를 상세히 분석하며 "대다수 은행가는 이런 은행이 주주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생각을 웃어넘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은행은 높은 유동성과 낮은 레버리지로 경쟁사보다 높은 주주이익을 창출했다.

1972년 초에 버핏의 또 다른 복리 기계인 블루칩스탬프는 씨즈캔디를 인수한다. 버핏이 가격만 중시하는 '담배꽁초 투자'를 벗어나, '훌륭한 기업'을 찾아내어 장기간 동행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계기로 유명하다. 씨즈캔디는 인수 이후 10년간 매년 매출이 두 자릿수 성장하며 버크셔와 블루칩에 초과현금을 공급했고, 버핏과 멍거는 그 현금을 다른 곳에 재투자해서 버크셔 제국을 세운다.

많은 버핏 스토리 중 흥미로운 것은 위기의 기업에 뛰어들어 전화위복을 이룬 사례들이다. 버크셔가 그랬고 가이코가 그랬다. 1970년대 중반 파산 위기에 몰린 가이코를 버핏이 사실상 구원한 과정이 5장에 자세히 나온다.

버크셔가 투자하기 오래 전부터 버핏은 가이코에 관심을 두었다. 스무 살 때 개인 순자산의 절반 이상을 가이코에 직접 투자한 적도 있다.

그런 가이코가 1970년대 중반 망할 뻔한 위기를 만난다. 28년 연속 흑자를 뒤로하고 보험영업손실이 커지면서 1973년 58.88달러였던 주가는 1976년 2.13달러로 곤두박질친다. 바로 그해 버크셔는 가이코를 매수하기 시작해 1985년 지분율을 38%까지 높였다.

1970년대 버크셔는 섬유사업을 넘어 상당 수준의 사업 다각화를 이루었고, 1980년대에 자회사가 보험, 사탕, 의류, 가구 유통, 자동차 화학 제품 제조, 출판 산업에 걸쳐 다각화된 복합기업의 면모를 완성한다. 사업 다각화는 이익 창출력 다각화를 가져왔다. 보험 부문의 매출이 감소하더라도 씨즈캔디 등 자회사들이 이익을 냈기에 장기적인 관점과 원칙을 지킬 수 있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 연관뉴스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