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세상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
강렬한 시선 속 허우적대는 이야기
우리 사회의 균열 부수고 사이 응시

이화정 소설가의 작품은 우리 사회의 균열을 깨부수고 그 사이의 균열을 응시하는 것처럼 여겨진다.지난 2023년 심훈문학상 심사 당시에도 방현석 소설가 등 심사위원들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깊이 있게 자아내는 능력과 추리와 스릴러, SF 등 경계 없는 글쓰기 역시 작가의 미덕"이라고 평했다.
이화정 소설가가 첫 소설집 '야생의 시간'(아시아刊)을 펴냈4다.
이번 소설집 속에는 어떤 이유에서든 끝없는 고독에 시달리는 이들이 등장하고 그 고독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알게 모르게 조금씩 해소되기도 한다. '문'은 '문'의 집에 입주 간병인으로 들어가게 된 은영의 이야기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던 은영은 우연한 사고로 아버지가 죽게 된 후 아버지를 버려두고 무작정 집을 나와 입주 간병인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문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문은 아내를 잃고 사지가 마비되는 증상을 앓고 있는 환자였다. 문의 집에 함께 살면서 혼자서는 밥을 먹을 수도, 화장실을 갈 수도, 양치를 하거나 면도를 할 수도 없는 문의 손발이 되어주는 게 은영의 일이었다. 고통과 슬픔에 초연해진 문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돌보면서 은영은 자신의 상처도 조금씩 낫는다는 것을 느낀다. '부겐빌레아 속으로'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앞둔 연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간병인의 도움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던 연희는 과거의 사랑했던 이의 기억으로 계속 되돌아간다.
'라스베이거스 여인숙'에서는 임신 거부증으로 네 명의 영아를 살해하고 유기한 홍 할머니의 이야기와 불임으로 아이를 갖지 못한 '민'의 아내의 이야기가 겹쳐지며 진행된다. 민은 고레에다 씨의 고향 집을 찾기 위해 함께 D시를 돌아보게 되는데 D시는 일제 강점기 최대 상업 지구로 해방 직후에는 산업화 바람을 타며 전성기를 누렸던 골목을 품은 곳이다. 민은 그곳에서 리노베이션 작업을 하고 있었고 고레에다 씨가 찾는 고향이 바로 D시의 유곽이었다. D시의 리노베이션 사업은 반대파들 때문에 진척이 없다가 반대파의 핵심세력인 홍할머니의 사망 후 급물살을 타게 된다.
또 다른 수록작 '당신'은 원하는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시술이 가능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곧 여든을 바라보는 '나'는 과거 '이레이저 클리닉' 시술(아픈 기억 삭제 치료)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자신의 어린 날을 견디고 버티게 한 '당신'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어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나'가 버리고, 기억 속에서까지 지우려 한 '당신'은 '그이'의 얼굴을 하고 '나'를 찾아온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지우는 데 성공했지만 '당신'의 기억을 지우는 데는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그 기억은 '그이'의 얼굴을 하고 되살아난 것이다. '나'와 '당신', '그이'의 기억이 혼란스럽게 뒤엉키면서 독자를 매혹한다.
'야생의 시간'에 수록된 다수의 작품이 독자의 마음에 큰 파문을 일으키지만 그중에서도 '천사의 손길'의 결말은 다소 충격적이다. 아들을 잃은 화자와 엄마를 잃은 소년의 만남으로 얼핏 서로가 서로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대안 관계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였던 소설은 뜻밖의 방법으로 두 사람을 견고히 결속시킨다. 지난 201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심사 당시 "아들을 잃은 화자와 엄마를 잃은 소년의 만남을 택시호출(천사호출)로 연결하고, 화자의 남편이 소년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에 추리기법을 동원해 끝까지 긴장감을 잘 이끌었다"(심사위원 이순원·이상섭 소설가)는 평을 받았다.
이화정의 소설은 다채롭다. 강렬하게 독자의 시선을 잡아끌고 그 이야기 속에서 허우적대게 한다. 어쩌면 나쁜 놈들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선악의 구도로 세상을 납작하게 들여다보는 대신 나쁜 세상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어서 더욱 값지다.
이화정 작가는 지난해 심훈문학상을 받았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
오월의 아픔 넘어 '생명과 평화의 서사'로
광주전남작가회의가 지난해 진행한 2025 오월문학제 ‘오월 너머의 문학, 세계의 물결로!’.
5·18민주화운동 46주기를 맞아 오월 정신을 문학적 서사로 승화시키고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전 세계와 공유하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된다.광주전남작가회의(회장 김미승)와 한국작가회의는 오는 5월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전일빌딩245 다목적 강당과 국립 5·18민주묘지 일원에서 ‘2026 오월문학제’를 개최한다. 올해 문학제는 ‘오월, 생명과 평화의 서사로!’라는 슬로건 아래 다채로운 학술·예술 프로그램으로 채워질 예정이다.이번 행사는 ▲오월문학 심포지엄 ▲5·18문학상 시상식 ▲오월문학제 본 행사 ▲5·18 민주묘역 참배 및 추모식 ▲걸개시화전 등으로 구성됐다.광주전남작가회의가 지난해 진행한 2025 오월문학제 ‘오월 너머의 문학, 세계의 물결로!’.첫날인 23일 오후 2시부터는 전일빌딩245에서 ‘오월문학 심포지엄’이 진행된다. 김영삼 평론가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전남대 유희석 교수와 조선대 임경규 교수가 발제자로 나서 오월 문학이 지닌 생명력과 평화의 메시지를 심도 있게 짚어본다. 토론에는 김주선 평론가, 심미소 시인, 안점옥 동화작가, 김현주 소설가가 참여해 오월 서사가 현대 문학에서 갖는 위상과 미래적 가치에 대해 논의를 펼친다.이어 오후 4시부터는 ‘5·18문학상 시상식’이 거행된다. 시·소설·동화 부문 신인상 당선자들에 대한 시상과 함께 본상 수상자의 소감 발표가 이어진다.이날 오후 5시부터는 박일우 소설가의 사회로 문학제의 메인 행사인 ‘오월문학제’가 진행된다. 김미승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의 인사말과 채희윤 고문의 환영사, 강형철 한국작가회의 이사장과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의 축사가 이어지며 전국 각지의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연대의 의미를 다진다.광주전남작가회의가 지난해 진행한 2025 오월문학제 ‘오월 너머의 문학, 세계의 물결로!’.특히 이번 오월문학제 행사에서는 이상일 인천작가회의 지회장과 정덕재 대전작가회의 지회장이 연대사를 하고, 경기, 부산, 전북, 충남, 제주 등 전국 지부 작가들이 참여하는 시산문낭독이 함께 펼쳐질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 또한 광주전남작가회의와 경남작가회의가 축하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행사는 참가자 전원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며 마무리된다.이튿날인 24일 오전에는 5·18 민주묘역 참배와 추모식이 엄수된다. 참가자들은 국립 5·18민주묘지 일원에 전시된 오월걸개시화전을 관람한 뒤, 국립 5·18민주묘지와 민주열사 묘역을 차례로 참배하며 오월 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그날의 숭고한 희생을 되새기는 시간을 갖는다.광주전남작가회의가 지난해 진행한 2025 오월문학제 ‘오월 너머의 문학, 세계의 물결로!’.한편 부대행사인 오월걸개시화전은 5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간 5·18묘역 일원에서 상설 전시돼 묘역을 찾는 시민들에게 문학을 통한 추모의 기회를 제공한다.광주전남작가회의 관계자는 “이번 문학제는 5·18의 아픔을 넘어 생명과 평화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문학적 서사로 담아내기 위해 기획됐다”며 “전국의 작가들과 시민들이 함께 오월의 참뜻을 되새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 · 영산강이 가르쳐준 삶의 철학, 소설에 담아내다
- · 비극의 시어 속에 담긴 희망의 조각
- · 기억의 강에 묻힌 언어들로 그려낸 사유
- ·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찾은 삶의 등불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