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능력과 감수성을 복원하는 시인의 서정

입력 2024.04.22. 16:56 최민석 기자
황형철 시집 '그날 밤 물병자리' 출간
제주도 중심 특유 정서 반영
시의 한복판으로 일상 견인
삶의 흔적 섬새한 시선 기록

황형철 시인은 인쇄소에서 새 시집이 도착한 다음 날에도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시를 읽고 쓰기도 한다.

그는 지난 99년 등단 이후 서정의 물길을 헤쳐오며 한눈팔지 않고 유별난 착실함과 자신만의 걸음걸이로 지역 시단을 지키며, 시만을 바라보며 달려왔다.

황형철 시인이 세번째 시집 '그날 밤 물병자리'(시인의 일요일刊)를 펴냈다.

이번 시집에는 공감 능력과 감수성을 복원하는 시인의 예지와 감각의 서정, 주변의 일상과 이웃에 대한 연민으로 간절하고 뜨겁게 써낸 시편들이 담겨 있다.

이전 시집들이 식물성의 세계에 천착하며 사유의 깊이와 진정성 있는 울림, 인간의 삶과 자연의 연결 지점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었다면, 이 시집은 제주도를 중심으로 한 특유의 정서를 재치 있게 반영하면서, 세속 인간의 내면에 숨은 인간다움을 찾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이 지니고 있는 제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제주도에 별다른 연고가 없으면서도 기회가 될 때마다 일주일, 열흘, 한 달씩 제주도에서 생활하며 제주를 애정한다. 그곳의 풍광과 사람들을 어느새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 편편마다 감출 수 없는 애정이 스며있다.

그는 이미지를 애써 만들려고 하지 않고, 문체 또한 일반화된 도식을 떠나서 발생상태의 감각적 인상을 참신하게 포착하는 데 노력한다. 자신의 일상을 시의 한복판으로 끌고 나와서 일상생활 속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한편, 가장 낮은 곳으로 시의 마음을 열어놓는다. 그리고 애정으로 시에 견고한 의미의 구조를 구축한다. 황형철의 시 속 시인은 자기와 다른 존재의 근거이면서 동시에 초월의 근거가 된다. 그의 시가 맑고 순정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시집 '그날 밤 물병자리'는 오랜 기억 속에 가라앉아 있던 삶의 흔적들을 섬세한 시선과 언어로 발화한 사유와 감각의 기록이다. 시인은 차분하고도 정제된 목소리로 세련되고도 살가운 언어적 생동감과 실물감을 우리에게 건네준다. 가장 유연하고도 탄력 있는 사유와 감각은 어느새 인생론적 혜안으로 이어지고, 시의 저류(底流)에는 밝고 투명한 비애와 희망이 균형감 있게 배치되어 있다. 그렇게 그의 시는 삶의 숱한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고 있거나 사라져 간 존재자들에 대한 애잔한 사랑과 관심에서 발원하여, 사물이든 인물이나 풍경이든, 그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자리를 마련해 주는 데 집중한다. 그것이 오래된 그만의 시적 존재론인 셈이다. 이때 그의 시는 역설적 희망의 전언으로 몸을 바꾸어 간다.

사물이 거느리고 있는 모양과 소리에 대한 발견 과정을 통해 서정시는 시인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에너지에 구체화한 형태를 부여하게 된다. 진정성 있는 시인의 자기 고백을 통해 삶의 성찰적 기능을 제공하기도 한다. 어떤 순간이나 장면을 구체적 사물의 이미지로 회복하고 궁극적으로 그 질서에 자적(自適)하려 하는 황형철 시인은 아름답고 지극하고 속 깊은 서정을 이렇게 풍부하게 건네주었다. 최근 우리 시단이 거둔 일대 수확이요, 그를 언어에 대한 집념과 소리에 대한 명민한 감각의 시인으로 만들어 줄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도 그 언어와 소리에 새로운 귀를 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황형철은 남다른 기억에 대하여 반듯한 예의를 갖춘 시인이다. 우리는 그의 시를 통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순간적 존재 전환을 수행하게 되고, 일상을 벗어나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의 이동을 꾀하게 된다"며 "그 심미적 시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은, 뭇 사물로 원심적 확장을 했다가 다시 스스로에게 귀환하는 구심적 과정을 밟아 간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베르그송(H. Bergson)이 말한 '지속의 내면적 느낌'이 한없이 펼쳐지면서, 경험적 기억을 통해 현재 자아의 마음에 따라 조정된 시적 시간을 구성해 가는 과정이 담기게 된다"고 평했다.

황형철 시인은 9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6년 계간 '시평'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바람의 겨를' '사이도 좋게 딱' 등을 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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