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에 날아든 연서같은 시들
전북 토속 언어 서정 깃든 모성
뼈아픈 세상살이 빗대 쓴 기록
사랑은 우리 모두 태어날 때부터 늘 곁에 자리해 있다.
그 사랑은 우리를 키우고 살아내게 한다.
이병초 시인이 네 번째 시집 '이별이 더 많이 적힌다'(걷는사람刊)를 펴냈다.
그가 8년 만에 낸 이 시집을 펼치면 고단한 삶의 행군은 여전하고 긴 세상살이에 따듯한 아랫목 하나 못 찾았어도 성냥불 켜 주는 마음이면, "긴 겨울잠을 털어 버린 듯/는실날실 봄바람 타는 버들가지들"('버들가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노래하는 59편의 시를 만나게 된다.
시인이 평생토록 가슴에 품은 사랑(시에서 '옥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이 누구인지 몰라도 시집을 넘기는 독자들 누구나 옥이가 되어, 옥이를 목메어 부르는 마음이 되어, 봄바람에 날아든 한 장의 연서(戀書) 같은 시를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시집에서도 그의 언어는 고향(전라북도)의 토속 언어와 서정에 크게 기대어 포근한 어머니의 품, 첫사랑의 따스함 같은 감정들을 시로 풀어내고 있는 한편, '농성일기'라는 부제를 단 3부에서는 대학 비리를 고발하는 주체로서 천막 농성을 하며 느낀 감회를 뼈아픈 세상살이에 빗대어 써 내려간 기록이 이어지기도 한다.
전라북도 방언은 부드러우며 된소리가 별로 없는 특징을 지닌다. 또한 말을 할 때 마치 노래하듯 '겁~나게', '포도~시(겨우)' 등과 같이 늘여 빼는 가락을 넣는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리듬감이 이병초의 시에서는 그리움을 증폭시키는 기저로 작용한다. 간조롱히(가지런히), 짚시랑물(낙숫물), 눈깜땡깜(얼렁뚱땅), 깜밥(누룽지), 당그래질(고무래질) 같은 말들이 되살아나 우리의 귀를 저편으로 트이게 하고, 입술을 쫑긋거리게 한다. 뿐만 아니라 시인의 맑은 눈으로 발견한 "오디별", "시냇물벼루" 같은 표현들이 그림처럼 선연히 그려지며 우리 앞에 한 자락의 시냇물을 데려다 놓기도 한다.
"오늘 밤에도 눈이 내린다/ 잠들지 말자고 잠들면 죽는다고/ 꽁꽁 언 손발 맞비비며/ 열아홉 숨결이 빨아들이던/ 그 불씨에 목숨 기댔던 밤처럼/ 송이송이 어둠살 펴 주듯 눈이 내린다/ 소주가 차갑게 빛난다/ 무덤 속 같은 헛간을 빠져나와/ 어금니 거덜나도록 떠돌았어도/ 여태 아랫목을 못 찾았다/ 그만 자자고 불을 끈다/ 보고 싶은 얼굴이 소복소복 쌓인다/('눈 내리는 밤에' 중 일부)
각각의 시를 읽으면 숨 막히게 아름다웠던 첫사랑의 기억으로부터 페이지들을 차례차례 넘기며 섬세한 언어로 빚은 사람과 풍경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김근 시인은 "느닷없는 물음에 답을 찾으려 어지러운 가슴속 서랍들을 여기저기 뒤지다 보면 어느새 알게 된다. 내게도 죄다 들켜 버리고 싶은 시절이 있었음을, "심장이 찔리고 싶은 별"('내 시간을 외등처럼 켜 놓고') 하나 아직 반짝거리고 있음을. 그리고 깨닫게 된다"고 평했다.
정재훈 평론가는 "아무리 "내 몸과 마음이 처음부터 유배지('코스모스')였다고 해도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쌀알처럼 작은 빛 때문이었다"며 "연약한 것으로부터 나오는 일용한 양식들은 하나같이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고, 이것들은 계속해서 살아 있으라는 신호가 되어 내 머리 위로 똑똑 떨어진다. 이병초의 시가 품고 있는 온기를 '사지(死地)에서 온 편지'"라고 평했다.
이병초 시인은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1998년 '시안'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밤비' '살구꽃 피고' '까치독사』'와 시 비평집 '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와 역사소설 '노량의 바다'를 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 "제주의 사람과 풍경 글과 그림에 담았어요" 384 시인에게 시는 밥줄이자 자신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과 1권의 첫 시화집을 출간, 왕성한 창작활동과 필력으로 자신만의 시탑(詩塔)을 쌓아가고 있다.박노식 시인이 자신의 대학동문인 이민 화가와 두번째 시화집 '제주에봄'(스타북스刊)을 펴냈다.이번 시화집에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문화유적, 박물관, 카페 등을 여행하며 두 사람이 쓰고 그린 100편의 글과 100편의 그림이 실려 있다.각각의 글과 그림은 제주의 숨겨진 풍경과 매력을 새롭고 다채롭게 펼쳐냈다.지금은 국내 최고의 휴양지이지만 제주는 눈부신 풍광 속에 4·3이라 불리는 역사적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슬픔의 땅이자 사람과 자연, 바다가 치유와 행복을 건네는 '천국'이다.박노식 시인과 이민 화가는 책머리에서 책에 담고자 하는 뜻을 전한다."오직, 시만 쓰고 오직, 그림만 그리는 순한 두 사람이 만나서 세상에 하나뿐인 아름다운 책을 낳았습니다. 제주는 슬픔의 섬이고 예술적 상상력의 바다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픈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곳의 아포리즘과 그림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었다면 당신과 우리는 한 수평선에 누워서 낮의 흰 구름과 밤의 푸른 별을 함께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첫 장 이민 작가의 작품 '밤 11시30분 솔동산로'에 입힌 박노식 시인의 글을 보자."홀로 밤길을 걷는 사람은/ 가로등 아래에서 어떤 슬픔을 찾으며/ 누군가를 오래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요."익숙한 길이건 낯선 거리건 우리는 어두운 밤 홀로 걸을 때 누군가를 만났던 장면과 감정을 떠올린다.생각은 기억을 부르고 그 기억은 흘러버린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가며 그 때의 그 장면들을 되새기게 한다.그것은 때로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혹은 추억과 후회로 가슴을 후벼파기도 한다.박 시인은 이민 작가와 함께 제주 곳곳의 공간과 풍경을 포착한 순간과 그림에 담긴 모습을 오버랩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느낌과 서정, 서사를 입혔다.그는 비 내리는 서귀포 명동거리에서 먹먹한 가슴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자신과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기억의 고통을 감내한 인내로 내일을 기약하기도 한다.'신서귀포 메밀꽃밥'에서는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듯 피어난 꽃을 보며 상처도 삶의 일부임을 말한다.그의 시선은 계속 이어진다. 간밤의 고통을 이겨내고 떠오른 아침햇살을 보며 이별의 아픔도 영원하지 않음을 이야기하며 자신을 붙들지 않고 놓아주지 않는 기억 하나가 있다면 이 또한 자기의 전부였음을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임을 보여준다.이렇듯 각각의 글과 그림에는 사실적 풍경 속에 담긴 화폭에 입힌 작가의 손길과 시인의 눈으로 건져올린 그림 속 언어들이 슬픔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위로와 희망을 건네준다.박노식 시인은 "보석 같은 제주도 곳곳의 풍경과 공간들을 담백한 필치와 색채가 어우러진 이 민 작가의 그림을 매개로 그때 그때의 느낌의 단상들을 간결한 시적 언어로 고백하듯 써 냈다"며 "고단한 삶 속에서 잠시나마 하늘과 구름, 별을 보듯 쉬어가는 마음으로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박노식 시인은 어느 봄날, 꿈속의 그에게 불현듯 나타난 또 다른 그가 했던 말 "한 권 시집도 없이 위로 올라오지 마라!" 그는 이 현몽을 얻고 생업을 접었다. 독한 마음으로 화순군 한천면 가천마을에 둥지를 틀고 오직 시만 썼다. '유심'에 '화순장을 다녀와서' 외 4편으로 신인상을 받고 등단,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이민 화가는 조선대학교 미대 회화과와 일본 동경 다미미술대학 판화과 석사학위 취득 후 국립현대미술관 아카데미와 국내 여러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작가는 자신만의 '판타블로 : 판(판화)+타블로(서양화)'라는 특수한 기법을 고안, 90회가 넘는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제주도 그림만 1천점을 목표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사진=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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