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재판 기록으로 접근한 조선왕조史

입력 2024.04.04. 15:06 최민석 기자
왕의 수명을 줄여라
편용우·한승훈·문경득 지음/ 흐름출판사/ 276쪽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서 2024년 수문장 임명의식이 거행되고 있다.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인천국제공항, 제주목, 진주성, 강릉 대도호부와 올해 새롭게 추가된 영월 장릉까지 8곳의 수문장들이 참여한 2024년 수문장 임명의식은 『조선왕조실록』 예종 1년(1469년), 최초로 수문장 제도를 시행한 기록을 근거로 하여 극 형식으로 재현한 궁궐 문화행사이다. 궁궐과 도성문의 방비 등 궁궐 호위의 최일선을 책임졌던 수문장은 당시 추천된 관원의 명단 중에서 국왕이 가장 신뢰하는 이의 이름에 점을 찍어 선택하는 '낙점(落點)' 과정을 거쳐 임명하였다.?

조선은 봉건왕조로는 드물게 법치국가였다.

최근 나온 '왕의 수명을 줄여라'는 '추안급국안'을 바탕으로 글쓴이의 상상력과 통찰을 더해 재구성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추안급국안이란 '추안(推案) 및 국안(鞫案)'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중범죄인 재판인 추국에 대한 법정 속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속기의 특성상 한문 어법에 충실하기보다 이두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세세한 기록 속에 현장감이 살아 있다.

1부 '추국'은 역모 등 소위 대역죄를 대상으로 하여 왕의 직접적인 관여와 통제 아래 이루어진 재판이다. 이 엄중한 재판은 그 체급에 맞게 국가의 기강과 사회 질서를 뒤흔들만한 사건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처벌의 강도와 범위도 남달랐는데, 추국 대상 범죄의 특성상 애초에 범죄를 꿈도 꾸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추국 죄인이 받는 사형은 당사자의 죽음 그 자체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즉 죄인의 연고지에서 공개처형을 한다든지, 잘린 목을 높은 곳에 매달아 전시한다든지, 사지를 토막 쳐서 전국 각지에 돌려 보인다든지 하는 식으로 예비 범죄자들을 향한 경고를 담았다. 게다가 추국 대상이 되는 범죄에는 대부분 연좌가 적용되어 죄가 확정되면 본인뿐 아니라 일가친척, 때로는 그가 살던 고을까지 연대책임을 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는다고 해도 심문받은 사람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였다. 당시에는 일정한 양식을 갖춘 고문이 심문의 일부로서 허용됐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역모 등을 통해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인물, 최소한 가만히 있다가는 잃을 게 너무 많은 인물일 것이다. 즉 역모가 실패했을 때 치러야 할 희생을 생각하면 거사의 성공으로 얻을 것이 실패로 잃을 것보다는 훨씬 커야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루는 역모 죄인, 대역 죄인의 대다수는 권력의 중심부는커녕 근처에도 간 적이 없는 서민이다. 아직 당황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피지배계층이 지배계층의 횡포에 저항하는 이야기도 알고 있다.

정조 시기 일어난 역모 사건(1785, 1786년 유태수 사건)에는 '거사(居士)'라는 부류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거사'의 사전적 의미는 '속세에서 불도를 닦는 남자'지만 실상은 불도에 전념하기보다 그 핑계로 조세나 역 등의 부담에서 벗어난 계층에 가까웠다. 그들은 대개 글을 알았고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에, 역모 사건에서 술사 내지 연락책으로 참여했다. 사정은 제각각이겠으나 글을 아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양반 내지 중인의 후예일 가능성이 있다.

2부에는 얼핏 사회 시스템이 덜 발전한 전근대 이전에나 일어났을 법한 황당하고 불편한 사건들이 실려 있다.

어의 이시필은 부적절하게 치료를 거부하는 경종에 대한 실언 한 마디 내뱉었다가 추국을 받고, 경종이 수차례 판결을 번복하는 와중에 자살했다. 저자는 그가 자살 '당'했다고 표현한다. 이는 현대식으로 하면 갑질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재벌가 총수에게 인격적 모독을 당하고 직장까지 잃게 되었다는 사건, 성착취 가해자에게 역고소까지 당했다는 사건 등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어쨌든 이시필은 재판을 받았고, 절차를 밟아 처형됐다.

마지막 이야기는 영조의 친국 사례를 분석한 글이다. '친국'은 왕이 추국장에서 직접 신문에 참여하는 추국이다. 왕을 포함한 고위 관료 다수가 참석하고, 그에 걸맞는 호위가 붙는 등 규모도 크고 갖춰야 할 것도 많아서 웬만한 일이 아니고선 열리지 않는 추국 중의 추국이라고 할 수 있다. 영조는 유달리 추국을 많이 한 왕이다. 그는 추국장에서 다룰만한 일도 아닌데 추국을 열고, 그에 더해 친국을 거행하고는 했다. 이는 영조가 추국을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는 용도로 활용했다.

부록으로 국역 '추안급국안'의 권별 사건 목록을 실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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