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현 지음/ 판미동/ 308쪽

20년 넘게 숲속에서 살아온 농부 작가 최성현이 자연에서 배운 가르침들을 일상의 언어로 전하는 에세이 '무정설법, 자연이 쓴 경전을 읽다'가 출간됐다. 무정(無情)은 '마음을 가진 살아 있는 중생'인 불교 용어 '유정(有情)'에 반대되는 말로, 무정설법(無情說法)이란 곧 감정이 없는 산하대지를 비롯하여 하늘, 바위, 바다 등이 설법을 한다는 뜻이다. 나무, 풀, 동물, 벌레 등 천지만물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쉼 없이 일러주고 있으니, 그 말씀을 '마음의 귀'를 열고 잘 듣고 새겨야 한다는 의미다.
저자는 자연의 가르침을 따르며 생명을 해치지 않고 농사짓는 자연농법을 30년 넘게 실천해 왔다. 자연농법이란 관행농법이나 유기농법과는 달리, 논밭을 갈지 않고, 농약으로 벌레를 죽이지 않으며, 비료도 주지 않고 제초도 하지 않는, 자연 그대로 짓는 농사법이다. 이 책에는 오랜 기간 자연의 순리를 체득하여 살아온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나날의 기록이 꾸밈없이 담겨 있다. 자연에서 얻은 지혜뿐 아니라, 인간 중심에서 자연 중심으로의 생태주의적 관점 전환, 이 시대에 꼭 새겨들어야 할 인류와 자연의 공존에 대한 메시지까지 모두 담긴 책이다.
그는 "자연이 성경이나 불경, 사서삼경보다 더욱 귀한 경전"이라고 말한다. 우주가 처음이자 끝이라는 뜻에서 본래 경전이며, 노자, 석가모니, 예수, 공자, 마호메트 등이 만든 경전은 이 본래 경전을 베껴 적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인디언 전통에서도 발견되는데, "세상은 거대한 도서관이며 돌, 나뭇잎, 풀, 실개천, 새, 들짐승…… 등은 책이다."(테톤 수족 인디언 '서 있는 곰') "우리는 바람과 비와 별들의 말을 듣습니다. 우리에게 세상은 펼쳐져 있는 성경입니다. 우리는 수백만 년 동안이나 그것을 읽으며 공부하고 있습니다."(라코타족 인디언 '위대한 붉은 사람')와 같은 말들이 그것이다. 동양 전통의 '무정설법'과 같은 맥락에 있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이 책 곳곳에는 인간의 경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연의 말씀들이 보물처럼 담겨 있다. 손안의 씨앗에게서 "너는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는 희망의 말씀을 듣는가 하면, 한겨울에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보며 "괜찮다! 괜찮다!"는 위로의 말씀을 듣는다. '다 내주어도 돌려주는' 하늘의 설법과 '받아들여 살려내는' 땅의 설법을 들으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고, '세상의 장벽을 쉬지 않고 지우는' 풀의 설법과 '바람이 불면 맞서지 않다가도 멈추면 제 길을 가는' 나무의 설법을 들으며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최성현씨는 우리나라 자연농의 선구자다. 자연농법을 창시한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을 비롯해 많은 자연농 책들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했고, 그 스스로도 30년이 넘게 자연농법으로 자급자족 규모의 논밭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자연농법의 원칙은 땅을 갈지 않고(무경운), 비료를 쓰지 않으며(무비료), 농약을 쓰지 않고(무농약), 제초를 하지 않는(무제초) 것이다. 땅의 침식과 황폐화를 막고, 미생물과 벌레로 이어지는 자연의 먹이사슬과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기에 인간에게도 자연에도 이로운 농사법이다.
인간이 자연과 맺어 온 전통적인 관계를 반성하며 새로운 농법을 실천하는 자연농법처럼, 이 책에는 새롭고 대안적인 통찰로 가득하다. 꿀벌이 사라지는 현상을 지적하며, 쌀이 아닌 밤을 주곡식으로 삼았던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숲을 늘리는 동시에 인간의 먹거리 문제도 해결하는 '밥을 주는 숲'을 제시하기도 한다. 환경오염과 기후위기로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책에서 전하는 자연의 말씀을 읽으며 인류가 앞으로 나갈 길을 함께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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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그날··· '소년의 길'로 돌아보는 '오월문학' 지난해 광주전남작가회의가 진행한 2024 오월문학제 '오월의 숨결, 세대를 잇다' 한강 작가의 작품 '소년이 온다'의 배경인 광주가 주목을 끌고 있는 가운데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아 오월문학을 통해 그날의 참뜻을 되새기고 세계 문학에 미친 영향을 조명해보는 의미있는 행사가 열린다.광주전남작가회의(회장 김미승)는 5·18민주화운동 45주기를 기념해 오는 24일부터 25일까지 이틀간 2025 오월문학제 '오월 너머의 문학, 세계의 물결로!'를 개최한다.지난해 광주전남작가회의가 진행한 2024 오월문학제 '오월의 숨결, 세대를 잇다'이번 문학제는 ▲걸개시화전 ▲오월문학 심포지엄 ▲5·18문학상 시상식 ▲오월문학제 ▲한강 '소년이 온다' 문학투어 ▲5·18 민주묘역 참배와 추모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행사는 전일빌딩245와 국립 5·18민주묘지 일원 등 광주 시내 곳곳에서 펼쳐진다.24일 오후 2시부터는 오월문학 심포지엄, 5·18문학상 시상식, 오월문학제 본 행사가 연이어 개최된다.문학제의 포문을 여는 심포지엄은 '오월 너머의 문학, 세계의 물결로!'를 주제로 진행된다. 김영삼 평론가가 사회를 맡아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중심으로 오월 문학이 지역과 민족을 넘어 세계 문학으로 뻗어나가는 흐름을 살펴본다. 고명철·김효숙·장은영 평론가가 발제자로 나서고, 강덕환 시인, 김연 시인, 손병현 소설가, 이정훈 평론가 등이 토론자로 참여해 오월 문학의 다층적인 의미를 짚는다.이어 진행되는 5·18문학상 시상식에서는 시·소설·동화 부문 신인상과 본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당선자들의 수상 소감과 심사위원장의 심사평을 통해 오늘날 문학에서 오월이 어떻게 새겨지고 기록되는지 짚어볼 수 있다.이날 오후 5시부터는 작가회의 전국 지부가 함께하는 본 행사가 펼쳐진다. 인천·여수·제주 작가회의가 참여하는 축하공연과 시 낭독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됐으며, 마지막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마무리된다.이튿날인 25일 오전에는 한강 '소년이 온다' 문학투어가 진행된다.지난해 광주전남작가회의가 진행한 2024 오월문학제 '오월의 숨결, 세대를 잇다'이날 오전 9시부터 오전 10시30분까지 진행되는 투어는 전일빌딩245에서 출발해 상무관, 5·18민주광장(도청 분수대), 옛 광주적십자병원 등을 경유하며 걷는다. 각각의 장소는 모두 소설 속 배경이자 1980년 5월의 흔적이 생생히 남아있는 곳들이다. 전일빌딩245의 탄흔 자국과 '소년이 온다'의 동호가 있었던 상무관까지 1980년 5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들을 직접 방문하며 오월의 아픔을 되새기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간으로 마련될 예정이다.올해 문학제는 국립 5·18 민주묘지 참배와 추모식으로 마무리한다. 오는 31일까지 국립 5·18민주묘지 일원에서 진행되는 오월걸개시화전을 관람하고 5·18국립묘지와 민주열사묘역을 참배함으로써 시를 통해 오월의 가치를 되새기고 오월 영령들의 넋을 기릴 수 있다.백애송 광주전남작가회의 사무처장은 "5·18 45주년을 맞아, 한강 작가의 수상과 함께 오월 문학이 세계로 확장된 흐름을 체감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며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전했다.광주전남작가회의의 오월문학제 참여 신청 또는 자세한 사항은 광주전남작가회의(062-523-7830)를 통해 문의하면 된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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